한국경제 3가지 모순 : 尹 정부는 '마이너스 손'인가 [마켓톡톡]
與野 금투세 등 부자감세 합의
정부는 확장적 재정지출 시사
재원 없는 재정지출 꾀하면
시장 혼란 부추길 가능성
금리인하에도 고금리 여전
블룸버그 韓 밸류업 비판
상법 개정작업도 지지부진
정부가 움직이면 오히려 손해가 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밸류업을 하겠다며 지배구조는 못 건드리겠다고 하니 우리 증시는 매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2회 연속 금리인하를 해놓고 관치로 대출금리를 조이면서 가계대출 금리는 고공행진 중이다. 확장적인 재정지출로의 전환을 추진한다더니 정작 감세 기조는 바꾸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마이너스의 손일까.
■ 모순❶ 감세와 재정지출=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월 11일, 22일 두차례나 '양극화 해소'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를 임기 후반기 정책 목표로 내세우자 지난 11월 25일 대통령실 익명의 고위 관계자가 등장해 "추경을 포함한 재정지출 확대를 고려 중"이라는 말을 여러 매체에 흘렸다. 기획재정부는 즉시 보도설명자료를 통해서 "검토한 적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기침체가 본격화한 지금 시점에서 재정지출 확대 여부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과세 정책을 보면 추경 등 재정지출 확대가 표심을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지 않았을지 의심스럽다. 정부·여당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최근 들어서 사실상 유일하게 합의에 성공한 게 감세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1월 4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월 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가상자산 과세를 2년 유예하는 데 동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재원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세수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부자 감세 규모는 얼마나 될까. 지난해 법인세 세수는 2022년 103조6000억원에서 22.4% 감소한 80조4000억원이었다. 종합부동산세는 2022년 6조8000억원에서 32.4% 줄어 지난해 4조80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전체 세수가 2022년보다 13.1% 감소한 344조1000억원에 그친 이유다.
만약 여야與野가 재원 없는 재정지출에 동의한다면, 국가의 미래라는 담보를 훼손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국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재원 없는 감세에 나서려다 낙마한 게 불과 2년 전이다.
왜 재원 없는 재정지출 증가가 문제가 될까. 정부가 국채를 대량 발행하면, 국채 가격의 폭락으로 금리(수익률)가 급등하는데, 이는 시중금리 상승과 환율 급등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계의 불신은 당연한 결과다. 프랑스가 올해 들어서 세차례나 금리인하에 나섰지만, 국채 가격이 폭락해 시중금리가 그리스 수준으로 급등한 것도 과도한 정부부채가 불러온 불안감 때문이었다.
■ 모순❷ 금리인하와 관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1월 28일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기준금리를 추가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2회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췄다. 그런데 정부가 관치를 통해서 가계대출 금리를 여전히 인위적으로 높인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금리인하가 실물경기를 살리려면, 한은이 시중은행과의 환매조건부채권(RP·금융기관이 일정기간이 지난 후 확정금리를 보태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 거래 금리를 낮춰 은행간 단기거래에 적용되는 콜금리가 낮아지면서 시중은행 여·수신 대출금리가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대놓고 관치를 통해서 가계대출 금리만 높은 상태를 유지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10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 통계를 보면 예금 등 수신금리는 연 2.57%인데, 평균 대출금리는 연 4.79%에 달한다. 은행들은 관치의 결과로 대출금리와 저축성수신금리 차가 1.30%포인트로 계속 확대되면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는 기업대출보다 상대적으로 건전한 가계대출에만 가혹한 금리를 매긴다는 비판도 있다. 기업대출 평균 금리는 10월에 전월보다 0.06%포인트 하락했지만,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0.32%포인트 상승했다. 9월 기준 기업대출 연체율은 전월보다 0.10%포인트 상승한 0.52%, 가계대출 연체율은 0.01%포인트 상승한 0.40%다.
■ 모순➌ 밸류업과 상법=블룸버그는 지난 11월 30일 '아시아 증시가 밸류업을 서두르며 트럼프 체제 방어에 나섰다'는 기사에서 "일본이 지난 10년간 증시 구조 개혁에 나서면서 한국과 인도가 증시 밸류업에 나섰다"며 "한국 정부가 주주 수익 향상을 위해서 새로운 조치를 도입했지만, 코스피 지수는 올해 7% 이상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일본과 인도가 밸류업 효과를 누렸는데, 한국만 소외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시아 밸류업 정책을 가장 먼저 추진한 일본과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자들이 올해 일본 증시에 앞다퉈 투자한 이유는 기업지배구조 개편에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3년 '기업 인수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기업 인수‧합병(M&A)을 금기시하던 문화를 바꾸고 있다. 일본 금융청은 2023년 자산운용회사 329개, 연기금 82개를 향해 '기관 투자자와 지분 소유자는 피투자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문구를 포함한 스튜어드십코드(의결권 행사 지침)에 서명하도록 했다. 도쿄증권거래소가 올해 1월부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이하인 기업에 개선을 요구하고, 저PBR이 지속되면 궁극적으로 퇴출시키기로 한 결정도 모두 지배구조와 맞물려 있다.
일본 기업들이 ROE를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금 등 과도한 사내유보금 보유를 해소하고, 그룹 산하 계열사들간 상호출자를 줄여야 한다. 사업 수익성을 높이고,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거나, 경쟁력 없는 자회사를 정리해도 ROE를 끌어올릴 수 있다. 그 결과, 오직 지배주주의 의결권 확보에나 쓰이는 일본의 상호출자는 현저하게 줄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7월 "올해 3월 결산법인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주요 계열 산하 기업들이 상호 보유한 주식을 잇달아 매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쓰비시 계열은 계열사 24곳의 지분을 매각했고, 도요타통상과 도요타방직은 상호출자한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일본에 서구권 투자가 몰린 건 과거 재벌체제의 연장선인 현행 계열 그룹 체제를 궁극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권은 지배구조 개혁은커녕 상법에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하나를 넣는 것도 꺼린다.
등기이사가 지배주주 지배 아래 있는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주주들에게도 충실하게 일하라는 게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다. 지배주주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부당한 사익을 추구할 수 없다는 '지배주주의 신인의무(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는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현실을 해결할 수 없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