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예산정국 속 고심 깊어지는 대통령실
野 감액예산 강행 시 추경 편성 압박 커질 듯
내각·대통령실 인사 개편도 순연 불가피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야당이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 처리를 압박하는 가운데 대통령실이 고심에 빠졌다. 여야가 10일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야당이 다음 주 감액 예산을 강행 처리한다고 해도 마땅한 대응수가 없기 때문이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2일 “대통령실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며 “야당이 단독 처리한 감액 예산안 철회 없이는 증액 협상도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야당이 감액 예산안을 단독 처리할 시 대통령실의 대응에 대해 “아직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지난주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원안(677조 4000억 원)에서 4조 1000억 원 감액만 반영한 예산안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했다. 특히 대통령실과 검찰·경찰 특수활동비, 동해 유전·가스전 개발 예산가 대거 삭감됐다. 우원식 국회의장 중재로 오는 10일 이후로 본회의 의결은 늦춰졌지만, 그 사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야당이 감액 예산을 강행할 여지가 크다.
문제는 대통령실이나 여당에 이를 저지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에 맞서 정부·여당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방패로 삼아 왔다. 하지만 법률이 아닌 예산안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 공포를 거쳐야 효력이 생기는 일반 법률과 달리 예산안은 국회를 통과하면 바로 확정된다.
대통령실 일각에선 준예산(새해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않을 때 전년에 준해 편성하는 예산) 편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성은 크지 않다. 헌법상 준예산은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했을 때 편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감액 예산을 강행 처리한다면 준예산 편성 여지마저 사라진다. 예비비 사용이나 예산 전용에도 한계가 있다. 야당이 예비비를 정부안의 절반으로 삭감한 데다 예산 전용은 성격이 비슷한 사업 간에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이한 사업에 예산을 전용했다간 야당에 또 다른 공격 거리를 줄 수 있다.
추경 압박 더욱 거세지나
이 때문에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야당이 감액 예산을 강행 처리한다면 정부는 추경 편성 압박을 전보다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정부는 경기 둔화와 4대 개혁(의료·연금·교육·노동개혁), 양극화 타개 정책 추진 등에 따른 재정 소요 증가 등으로 추경 편성 압력을 받고 있던 차였다. 야당도 감액에 이의가 있다면 추경을 편성하라며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그동안에도 건전 재정 기조를 완화하는 추경 편성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관측되던 중에 감액 예산으로 추경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예산 감액으로 국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정부에서도 추경 편성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 취임 직후를 제외하곤 추경을 편성하지 않으며 건전 재정 기조를 견지해 왔던 대통령실로선 이런 원칙을 무너뜨리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현재로선 재난이나 경기 침체 등 추경 편성 요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야당은 추경 편성을 압박하기에 앞서 내년도 예산안 합의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앞서도 내년도 확장적 재정 정책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추경 편성 가능성에 관해선 선을 그은 바 있다.
예산 정국을 맞는 대통령실의 또 다른 고민은 예산안 대치로 인해 개각 등 정치 일정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애초 대통령실은 이달 중 예산안이 처리되는대로 대통령실·내각을 개편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새로운 인사를 앞세워 양극화 정책 등을 통해 지지율 부진에 시달리는 국정을 쇄신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예산안을 두고 여야 대치가 계속된다면 예산 정국이 일단락되는 내년 초에야 기존 대통령실 참모·각료를 교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종화 (bel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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