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 예찬 [관조하는 삶: 무위에 대하여]
무위하는 삶이 주는
창조적인 힘
우리는 매일 경쟁 속에 살아간다. 남보다 우위를 차지하려고, 남에게 뒤처질세라, 더 열심히 일하고 소비한다. 치열함이 몸에 밴 사람들은 여가마저 무언가로 빼곡히 채우려 한다. 성과주의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더 많은 노동과 성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간 「관조하는 삶: 무위에 대하여」는 성취 욕망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진정 필요한 삶의 태도는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 사회에서 잊힌 덕목인 무위無爲와 관조觀照의 삶을 내세워 "무언가를 더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의도와 목적'을 띤 활동을 멈추고(무위), 그 순간 '마법'처럼 드러나는 세계의 참모습을 바라봐야 한다(관조)"고 주장한다.
경쟁이 팽배한 오늘날 '무위하는 삶' '관조적인 쉼'을 가지라니, 단지 일상에 지쳐 한껏 쉬고 싶은 이들을 위로하는 책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게으름에 찬사를 보내거나 관조적 명상을 위한 실천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상업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창조적인 무위' '인간적인 것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의 무위'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으로서의 무위' 등에 주목하며, "무위로 삶을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무위는 일종의 창조적인 세계로 넘어가는 '문턱'"이라고 말한다. '행위(행위 하는 삶)'는 주어진 목적과 목표에 따라 똑같은 것들을 반복·재생할 뿐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며, 발명하는 인간에게는 목적 없고 규칙 없는 행위를 하기 위한 무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서술한다.
그러면서 "그 무위의 시간 속에서 '전혀 다른 무언가, 있었던 적 없는 무언가의 발생'이 가능해지고, 무위는 목적과 효용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 삶을 위한 창조력의 원천이 된다"고 강조한다.
'무위'가 인간적인 것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한다. "쉼이 없으면 새로운 야만이 발생한다. 침묵은 말을 심화한다. 고요가 없으면 음악은 없고 단지 소음과 잡음만 있다. 놀이는 아름다움의 정수다."
만약 우리에게 망설임과 멈춤의 순간이 없다면, 우리의 행위는 맹목적인 능동과 반응으로 변질할 것이라며, '자극-반응, 욕구-충족, 목표-행위'의 패턴이 지배할 때 우리의 삶은 생존으로, 이를테면 "벌거벗은 동물적 삶으로 쪼그라든다"고 덧붙인다.
"무위는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이라고도 단언한다. 저자는 "행위는 무위에 이르러 완성된다"며, '역사'는 행위를 통해 이뤄지지만 "행위하기가 완전히 밀려나고 바라보기(관조)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무위의 안식일"에야 비로소 '역사'가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무위의 풍경들', '장자에게 붙이는 사족', '행위에서 존재로' 등 총 6편의 에세이로 구성됐다. 플라톤, 노발리스, 한나 아렌트, 니체, 발터 베냐민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초기 낭만주의자, 현대 철학자까지 주요 사상가들의 글과 주요 개념들을 인용하고 비평하면서 '무위'의 숨겨진 역할과 가치, 창조적 힘에 관해 날카로운 통찰을 선보인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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