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무산된 ‘국제 플라스틱 합의’…생산 감축 반대한 국가는 어디?

박기용 기자 2024. 12. 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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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의장(오른쪽)이 지난 1일 부산에서 열린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정부간협상위원회 제5차 회의 본회의 시작에 앞서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집행이사와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만들기 위한 유엔 정부간협상위원회 5차 회의(INC-5)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무산됐다. 산유국들의 거센 반대와 석유화학업계의 로비, 주최국인 한국을 비롯해 플라스틱 세계 1·2위 생산국인 중국과 미국의 모호한 태도가 낳은 결과란 지적이 나온다.

전 지구적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한다는 목적으로 2022년 3월 시작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회의는 애초 다섯 차례로 계획했으며, 마지막 회의인 이번 부산 회의에서 협약을 성안한다는 계획이었다.

마지막 회의라, 핵심 쟁점인 1차 폴리머(플라스틱의 원료) 생산 감축 여부를 둘러싼 대결 구도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히 드러났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쿠웨이트, 이란 등의 산유국들은 회의 내내 반대와 방해를 일삼아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한 주된 원인을 제공했다. 통상 국제회의의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생산 감축’을 지지한 나라가 100여개로 전체 참여국의 절반을 넘겼는데도 이들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산유국들은 ‘생산이 아니라 오염이 문제’이며, ‘해결책은 기술에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1차 폴리머 생산 규제 조항을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정해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프랑스 대표는 가디언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속한 그룹이 “계속 회의를 방해하고 있다”고 했고, 르완대 대표는 “소수의 국가들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필요한 조치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을 지켜본 그린피스 관계자는 한겨레에 산유국들이 “이미 합의가 다 된 부분에 문제제기를 하고, 각국 의견을 절충해 만든 의장의 새로운 제안서가 아닌 이전의 초안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등 끊임없이 회의를 지연시켰다”고 전했다.

이번 회의엔 또 플라스틱 산업계 로비스트가 유럽연합이나 개최국인 한국 대표단 수보다도 많아, 회의 전반에 이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국제환경법센터(CIEL) 분석을 보면, 이번 회의엔 220명의 화석연료·석유화학 업계 로비스트가 참석했는데, 이는 지난 4월 캐나다에서 열린 4차 회의의 196명보다 12%나 늘어난 것이다. 이는 유럽연합(191명)이나 한국(140명)보다 많은 규모로, 태평양 소규모 섬 개발도상국(PSID)의 대표 89명을 압도했다.

회의 개최국인 우리나라 정부는 소극적인 구실로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는 우호국연합’(HAC)에 속해있으면서도 지난 회의 때 플라스틱의 생산 감축을 촉구한 ‘부산으로 가는 다리’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번 회의 때에도 파나마가 주도해 100여개국이 참여한 ‘생산 감축 지지’ 성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회의 초반 지지부진한 협상을 타개하기 위해 개최국으로서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리 주목 받지 못했다. 생산감축 등 규제에 대한 기준과 지침을 마련하되 관련 정책은 당사국들이 자율적으로 하자는 것을 뼈대로 삼은, 타협적인 제안이었다. 우리 정부는 또 개최국으로서 충분한 회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환경단체 등 참관인들이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만드는 등 진행상의 문제를 노출하기도 했다.

세계 플라스틱 사용량 추이(왼쪽)와 플라스틱 수명주기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비중.

협상 초반 유화적 태도를 보였던 중국도 정작 회의 기간 중엔 별다른 구실을 하지 않았다. 각각 세계 1위, 3위의 1차 폴리머 생산국인 중국과 인도는 ‘1차 폴리머 생산 관리’ 내용이 담긴 안으로 회의를 시작하는 데 동의했지만, 끝내 생산 감축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는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일부 개발도상국들이 1차 폴리머 생산을 억제하는데 반대하며 폐기물 관리에 집중하고자 했다”며 “폴리머 생산을 규제하는 어떤 조치도 지원할 수 없다. 이는 더 큰 개발 권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인도 대표단의 전체회의 발언을 소개했다. 이란 대표 역시 “플라스틱 오염이란 이름으로 개도국에 대한 처벌적 접근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2위의 1차 폴리머 생산국인 미국 역시 시종일관 모호한 태도였다. 회의에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는 더 광범위한 목표를 지지하지만, 의무적 생산 제한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워싱턴포스트는 익명을 요구한 한 아프리카 정부 대표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하면 워싱턴(미국 정부)이 플라스틱 협약에 더 적대적이 될 것을 미국 대표단이 우려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은 4억5천만톤가량으로 이중 3억5천만톤이 폐기물로 배출된다. 폐기물은 9%만 재활용될 뿐 91%는 소각되거나 매립장으로 보내져 환경을 오염시킨다. 유엔환경계획은 플라스틱에 사용되는 1만6천종이 넘는 화학물질 중 4분의 1이 인류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되는 물질로 본다. 플라스틱의 원료인 1차 폴리머의 주요 5대 생산국은 중국, 미국, 인도, 한국, 사우디아라비아다.

부산 회의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종료된 뒤인 2일, 파나마 수석대표인 후안 카를로스 몬테레이 고메스는 “우리는 여기서 (생산 감축을 포함하지 않는) ‘약한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회담이 “도덕적으로 실패했다. 역사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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