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급해서 서둘렀다…이승만 존경하는 분들 꼭 보시라”

이문영 기자 2024. 12. 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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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한국 현대 필화사’ 발간
‘이승만 대통령동상 광화문광장 건립추진위원회’ 변정일 회장이 지난 7월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이승만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화(筆禍).

“발표한 글이 법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제재를 받는 일”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은 단어의 뜻을 정의한다. 역사적으로 글이 ‘화’를 입는 사건의 인과는 단어의 정의와는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글 자체가 ‘문제’를 일으켜서라기보다 글을 대하는 권력이 글을 문제 삼을 때 대부분의 필화는 발생했다.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은 필화의 개념을 한층 넓힌다. “한국 현대사를 움직여온 것은 필화”라고 단언하는 그는 억압과 탄압의 대상을 글에 한정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은 물론 학문과 사상, 정치와 종교, 언론 등 사회 전반의 모든 형태의 발언과 행위·활동까지 필화의 영역에 포함시킨다. 그는 “붓이라는 것은 자기 의사를 나타내는 상징에 불과하다”고 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말했다. 막 출간한 책 ‘한국 현대 필화사’(소명출판)의 서문에서 그는 필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이 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막 출간한 책 ‘한국 현대 필화사’(소명출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필화란 몽매한 정치권력이나 종교권력, 재벌권력, 명예권력 등 힘을 가진 세력이 행사하는 직간접적인 광범위한 의미의 폭력이다.”

총 3권으로 준비한 책 중 첫 번째 책만 우선 꺼내놓은 이유를 그는 “여기저기서 하도 이승만 동상을 세운다고 하니까 이승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하기 위해서 서둘러서 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군정 시기와 이승만 집권기를 떼서 690쪽짜리 제1권에 묶었다. 장면 총리와 박정희 정권 시기는 2권에, 전두환 정권부터 현재까지는 3권에 쓸 계획이다.

임헌영은 “그 시대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할 때 필화가 발생한다”고 봤다. “8·15 이후 우리나라 지배 이데올로기는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 형성됐고 이승만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시행됐다”는 그의 시각이 1권의 줄기를 이룬다. 정치·사회, 지성·사상사, 문학 등 3개 분야로 당대의 필화를 살폈다.

임헌영의 새 책 ‘한국 현대 필화사’. 소명출판 제공

그는 국회 프락치 사건과 반민특위 해체, 김구 암살 등 1949년 ‘격랑의 시기’에 발생한 사건들부터 필화의 틀로 다시 봤다. 진보 정치인 조봉암의 사형도 ‘이승만 독재체제의 안전판’을 놓은 필화로 해석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며 최고 만담가로 인기가 높았던 신불출에 대한 테러사건(1946)이나 여순사건을 노래했다는 이유로 분단 후 첫 금지곡으로 낙인찍힌 가수 남인수의 ‘여수야화’도 그가 꼽은 필화의 사례들이다.

그는 잊힌 인물들도 되살렸다. 영어 소설 ‘초당’(The Grass Roof) 등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작가로 인정받았으나 해방 뒤 미군정 정보요원으로 근무하며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이승만을 비판했다가 가난과 핍박에 고립된 강용흘(1903~1972), 친일경찰 청산을 요구하며 경찰에서 축출된 뒤 이승만의 국회의원 당선을 저지하려다 정적으로 몰려 ‘이적죄’ 누명을 쓰고 총살당한 최능진(1899~1951), ‘민족의 비원’ 같은 책으로 “한국전쟁 직전까지 최고의 냉철한 지성인” 중 한명으로 통했으나 좌우로부터 동시에 비난과 위협에 시달렸던 중도파 지식인 오기영(1909∼1962) 등 권력이 지워버린 이름들을 초혼하듯 불러냈다.

임헌영은 2권과 3권도 내년 중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박정희기념관 만든다는 말도 많으니 빨리 내려고 한다”고 했다. 특히 3권에 포함될 필화 사건들은 현재 윤석열 정부 시기까지 다룬다.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동상 이전 논란과 ‘바이든 날리면’을 보도한 문화방송(MBC)에 대한 탄압 등을 최근의 필화 사례로 언급할 예정이다. 그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둘러싼 국내 극우진영의 반발이나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한 경기도교육청의 유해 도서 분류 논란도 “국제적인 필화”로 규정했다.

폭력은 음험할수록 실체를 감추고 개별 사건 뒤에 몸을 쪼개 숨는다. 책에 언급된 사건 하나하나를 따라 읽다 보면 글과 펜을 깔고 앉아 미소 짓던 시대의 폭력도 하나씩 조각을 맞춘다. 임헌영은 “누워서 읽어도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며 “이승만을 존경하는 시민들이 많은데 꼭 이 책을 보시고 다시 생각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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