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기후 침묵’이 더 문제다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기자 2024. 12. 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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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저먼워치 등 국제 기후단체 관계자들이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산유국을 빼면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국내 대다수 언론은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윤연정 기자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기후총회’란 위상에 걸맞지 않게 성과는 초라했다. 새로운 기후재원 조성이 핵심 의제였는데, 선진국들이 꽁무니를 빼면서 ‘반쪽 합의’에 그쳤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 대응 동력이 약화해온 상황이니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무기력을 드러낸 현 기후체제의 한계 못지않게 실망스러웠던 건 국내 언론의 ‘과소 보도’다. COP29 회의 기간 내내 국내 언론의 주요 지면에선 총회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총회 현장에 취재 인력을 보낸 언론사가 한겨레와 세계일보 단 두곳에 불과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국내 언론의 ‘기후 침묵’은 작년, 재작년 총회 때와 견줘도 더욱 심해진 것 같다.

국내 언론계에서 기후위기 보도는 가성비 떨어지는 아이템으로 여겨진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하다. 우선 기후변화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진다. 미래에 우리에게 다가올 운명을 다루는 ‘가능성의 영역’이기도 하다.(기후 과학자들은 어떤 조건일 경우 몇 년 안에 몇 퍼센트의 확률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식으로 기후위기를 예측한다.) 이러니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라 ‘강 건너 불’로 취급되기 쉽다.

여러 문제가 얽힌 기후위기 이슈를 온전히 이해해서 정확하게 대중에게 전달하려면 과학 지식도 필요하다. 당연히 기삿거리를 찾기도 기사를 쓰기도 어렵다. ‘새로운 게 뭐냐’를 따지는 ‘정통’ 언론 문법으로는, 기사 가치를 후하게 쳐주기 어렵다. 기후 측면에선 중요한 사안도 ‘기사가 안 되는’ 일이 흔하다.

더욱이 한국은 따끈따끈한 정치·사회 이슈가 넘치는 나라다. ‘다이내믹 코리아’ 아닌가. 특히 여의도와 용산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새로운 기삿거리를 쏟아낸다. 대중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그러니 복잡하기만 하고 주목도 받지 못하는 기후 이슈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 국외에서 열리는 기후총회에 취재 인력을 보낼 유인이 생길 리가 없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독자들이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다는 통념은 정말 맞는 걸까? 혹시 기후위기 이슈를 외면하려는 핑계는 아닐까? 2년 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시민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위기 및 기후위기 보도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는 자못 흥미롭다.

시민들은 일반 시사 이슈(87.1%)보다 기후변화 이슈(89.7%)에 관심이 더 많았다. 전체의 76.6%가 기후변화 관련 뉴스나 정보에 주목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기후변화 보도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60.6%나 됐다. 기후변화 보도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절반 이상(51.8%)이 ‘기후변화 보도가 눈에 띄지 않아서’를 꼽았다. 전체의 60.6%가 기후변화 관련 보도량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문제는 독자의 무관심이 아니라 언론의 ‘과소 보도’라는 얘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민들의 수용성이다.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접한 뒤 관심도와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54.1%나 됐다. 이들 가운데 76.2%는 ‘일상적인 습관을 개선하게 됐다’고 답했다. 언론이 기후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도하면 시민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조사 결과는 언론의 본령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중요한 사안인데도 외면을 받는다면 그건 독자를 탓할 일이 아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쉽고 친절하게 전달해 ‘읽히는 아이템’으로 만드는 것은 언론의 책무다. 기후위기처럼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언론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 기후위기·미디어 전문가들은 시민의 일상 차원에서 기후위기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와 이웃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언론재단의 인식 조사에서도 시민들은 가장 필요한 보도로 ‘기후변화에 개인이 일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다룬 기사’ ‘기후변화 문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기사’ 등을 꼽았다.

기후 전문 국제언론단체인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가 지난해 2월 발표한 ‘기후저널리즘 가이드라인’은 ‘독자를 파악하라’는 조언으로 시작한다.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기사를 쓰려면 독자가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언론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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