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작은 거인' 신지애, 진정한 '골프의 전설'이 되다!
[골프한국] '작은 거인' 신지애(36)가 65승 고지에 올라섰다.
신지애는 1일 호주 멜버른 킹스턴히스GC(파73)에서 열린 ISPS 한다 호주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3언더파 70타를 쳐 최종 합계 17언더파 274타로 디펜딩 챔피언 애슐리 부하이(남아공·35)에 2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은 28만9000 호주달러(약 2억6000만원).
강풍 속에 진행된 최종 라운드에서 신지애는 이글 2개, 버디 4개, 보기 3개, 더블보기 1개를 묶어 3언더파를 쳐 애슐리 부하이의 추격을 뿌리쳤다.
2023년 6월 JLPGA투어 어스몬다민컵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의 우승이자 프로 개인 통산 65승째다. 이 대회에선 2013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이다.
DP월드투어(옛 유럽투어)와 호주여자프로골프(WPGA)투어가 공동 주관하는 이 대회는 남자부와 여자부 경기가 각각 열렸다.
대회 이름 앞에 붙은 'ISPS Handa'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본의 기업가이자 만능 예술가인 한다 하루이사(73·半田晴久)가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 국제스포츠진흥회(International Sports Promotion Society)가 후원하는 대회다.
ISPS는 호주 여자골프투어 대회는 물론 자주 LPGA투어,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 남아공의 션사인투어도 후원한다.
신지애의 프로 통산 65승 소식을 접하고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카일라스산이 떠올랐다.
카일라스산은 티베트고원 서부에 있는 해발 6,714m의 산. 아직 아무도 정상에 오르지 못해 산 높이는 자료마다 약간씩 차이가 난다.
산스크리트어의 수정을 뜻하는 카일라샤 빠르와따에서 카일라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불교에서는 이 산을 수미산(須彌山)이라 부르는데, 우주의 중심에 있는 산으로 인식된다.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는 이 산을 성지로 여겨 많은 순례객들이 산 둘레 52km를 오체투지로 순례한다.
11~12세기 수행승이자 음유시인인 밀라레파가 유일하게 정상에 올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중국이 이 산의 등정을 허가하지 않아 카일라스는 영원히 전인미답의 성산(聖山)으로 남을 것 같다.
신지애가 달성한 프로 통산 65승은 한국 골프 사상 누구도 오르지 못할 성스러운 고지다. 산으로 치면 아직 아무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카일라스산이나 다름없다.
물론 LPGA투어나 PGA투어에선 신지애를 능가하는 기록들이 많다. 케이트 휘트워시(1939~2022)는 LPGA투어에서 무려 88승을 올렸다. 아니카 소렌스탐이 72승, 캐리 웹이 41승을 기록했다. 박세리는 KLPGA투어에서 8승, LPGA투어에서 25승을 거두었다. PGA투어에선 샘 스니드(1912~2002)와 타이거 우즈(48)가 82승으로 타이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골프 역사로 보면 그의 기록은 전인미답이다.
KLPGA투어에서 21승, JLPGA투어에서 30승, LPGA투어에서 11승, LET 등에서 3승을 거두었다. 2008년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미국으로 진출, 2009년 LPGA투어 상금왕에 오르고 2010년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2014년부터 JLPGA투어와 LPGA투어를 함께 뛰고 있다.
골프선수 나이 36세면 현역에서 은퇴할 나이다. 올해만 해도 김인경(36) 유소연(34) 렉시 톰슨(32) 앨리 유잉(29) 마리나 알렉스(34) 등 비슷한 또래들이 은퇴했다.
무엇이 은퇴할 나이에 있는 신지애에게 불퇴전의 파이팅을 불어넣을까 생각해봤다.
그의 가슴 속엔 빚과 한과 꿈이 뭉쳐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그의 골프 훈련을 뒷바라지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빚을 갚고 한을 푸는 것은 골프선수로서 대성하는 길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선을 끌지 못하는 외모를 오로지 실력으로 커버해야 했다. 어쩌면 그로 하여금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게 한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골프 기량으로 채우겠다는 각오와 의지가 아니었을까.
지난해 8월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그가 원하는 골프 인생의 정점을 찍을 절호의 기회였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맞은 신지애는 후반에 많은 보기를 기록하며 2타를 잃고 리디아 고의 2타 차 우승을 지켜보아야 했다. 넬리 코다, 릴리아 부, 인 뤄닝과 함께 공동 2위에 머물러 브리티시 여자오픈 3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강풍 속에서 ISPS 한다 호주오픈 우승컵을 받아들고 "우승 트로피에 다시 내 이름을 새기고 싶었다."고 한 신지애의 우승 소감은 내년에 열릴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염두에 둔 것처럼 들렸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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