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ing] 세종 백경증류소 "와인, 위스키에 필적할 우리 전통주를 만들겠습니다!"
[IT동아]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국내 주류 시장과 음주 문화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현 사회의 트렌드를 이끄는 MZ세대의 음주 문화는 기성 세대와 달리, 자신의 성향과 취향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그에 맞는 맛과 향의 술을 음식과 함께 가볍게 즐긴다. 이에 위스키 같은 알코올 고도수 주류보다는, 거부감은 덜하면서 가벼운 취기를 느낄 수 있는 전통주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
국내 전통주 업계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전국 각 지역의 여러 양조장, 증류소에서 다양한 맛과 향의 약주, 청주, 탁주 등의 전통주가 생산되고 있으며, 전통주를 매월 정기 구독할 수 있는 플랫폼도 등장했다. 이 분야 스타트업 창업도 이어지고 있다. 양조/증류 시설을 갖추고 술을 직접 빚는 젊은 창업자 중에 '백경증류소' 정창윤 대표도 포함돼 있다. 그의 우리술 이야기를 들어본다.
여러 창업 분야 중, 특히 전통주 분야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아버님께서 오랫동안 양조장을 운영하셨는데, 어찌 보면 나의 첫 직장이 아버님의 양조장이다. 아버님은 술에 관련한 당신의 철학과 고집, 각오가 워낙 분명한 분이라, 그 안에서 다양한 증류 또는 숙성 방식을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내 자신도 어릴 때부터 몸으로 겪은 게 술 빚는 기술이니, 아버님 방식과 다르게 우리 술을 빚어보고 싶어 과감히 독립했다. 전통주 분야가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아버님으로부터 증류소 관련 DNA를 물려 받은 덕인지, 우리나라 전통주, 발효주에 관심도 많아, 이 업계 관련 지식과 정보, 경험을 많이 쌓게 됐다. 지금도 꾸준히 공부하고 체험하고 있는데, 그 덕에 전통주 관련 강의, 강연도 종종 맡아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증류소 설립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아버님 증류소를 나와 제주도에 나만의 증류소를 첫 개설했다. 다만 이때는 투자자의 술 제조 방향과 나 자신만의 제조 의지가 상호 조율되기가 쉽지 않았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잘 팔리는 술을 원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아버님 증류소를 떠난 이유도 내가 빚고 싶은 술을 만들기 위함이었기에, 제주 증류소는 3년 정도 운영하다가 세종시에서 다시 독립하게 됐다.
증류소 운영에 있어 제주도의 지리적 한계도 있던 터라, 단독 증류소인 '백경증류소' 개설을 계획하며 전국 여러 지역을 고민했다. 그중 세종시는 특히 소상공인 지원 사업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다양한 혜택 등도 제공되어 최종 결정하고 2023년 창업했다. 기본 자금의 절반을 세종시, 세종창조경제혁신센터(세종창경) 등을 통해 지원 받았다. 세종창경의 경우 신사업창업사관학교 관련해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지원 사업을 맡아 운영하고 있어서, 사업 운영/경영 관련 컨설팅이나 조언, 코을 자주 받고 있다.
증류소 규모와 생산량은 어느 정도이고, 판매 현황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세종시 소재 약 100평 규모의 증류소를 운영하고 있고, 월 생산량은 청주 기준 약 2만 병 정도다. 아무래도 알코올 함량이 낮은 술이 인기라 최근에는 청주 판매가 증가하는 추세다. 전국의 주류 전문 매장이나 백화점, 김포/인천공항 등을 비롯해, 레스토랑/주점에 주로 공급되고, 자사몰과 포털사이트 오픈몰 등에서도 판매되고 있다(지역 전통주라 온라인 구매, 배송이 가능하다). 작년 10월에 첫 제품을 출시했고, 소주 4종, 약주 6종, 탁주 3종 등 13가지 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현재 손익분기점을 넘을 만큼 긍정적인 판매 성과도 나오고 있다.
국내 주류박람회 등에는 전국 다양한 증류소에서 많은 지역 전통주가 소개되고 있다. 이들과 경쟁하는 백경증류소 만의 차별점이나 특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우리와 비슷한 생산량을 보유한 증류소는 대부분, 누룩 제조공장에서 구매한 누룩(밀로 만든 발효제)으로 술을 빚는다. 이런 경우 생산 단가는 줄일 수 있지만, 밀 누룩 고유의 맛만 날 수 밖에 없다. 이에 비해 우리는 누룩을 직접 빚어 술을 발효하고 있어서, 누룩 재료(밀, 녹두, 수수, 팥, 토종쌀 등) 또는 누룩 배합에 따라 서로 다른 풍미를 연출할 수 있다. 토종쌀 누룩은 우리가 직접 농사를 지어 만들고 있다. 추가로, 백경증류소는 집안 가업으로 내려온 전통 증류 기법을 통해 술을 빚고 있어서, 다른 곳과는 차별화된 술의 맛과 향을 낼 수 있다.
최근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주 소비가 늘고 있다. 국내 전통주 시장 상황은 어떤가?
코로나19 시기를 겪은 이후 주류 소비 문화가 변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그저 무작정 술 마시고 취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좋은 맛과 향의 술을 음식과 함께 즐기면서, 자신의 음주 취향과 선호 주류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분위기다. 와인이나 위스키보다는 진입 장벽이 낮고 알코올 부담도 덜해서 전통주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국내 전통주 시장도 이 같은 '개인화'에 초점을 두고 성장하고 있어서 확장 가능성은 점차 커지리라 기대한다.
주류 분야가 제조나 유통 관련해서 기업 운영에 여러 어려움이 있을 듯하다.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지역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배송이 가능하지만, 이러저러한 법 제도 제약이나 조건이 까다로운 건 사실이다. 이를 테면, 할인 판매나 온라인 라이브 판매는 현재 불가하다. 전통주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니 이따금씩 그런 제약에 발목이 잡히곤 한다. 특히 지역 특산주로 승인 받으려면(그래서 제도적 혜택이나 지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작물을 활용해야 하는 제한 때문에, 다른 지역의 농산물을 술 제조 과정에서 적용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제주도의 천혜향이나 레드향 등을 첨가해 새로운 풍미의 전통주를 개발하고 싶어도, 지역 특산주로 승인될 수 없으니 유통, 판매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 전국의 모든 전통주 증류소가 같은 생각일 텐데, 다른 지역의 우수한 농산물을 활용해 독특하고 개성 있는 술을 빚고 싶어도 이런 규제 때문에 시도하기가 힘들다. 이런 제약은 조금 완화되면 우리 같은 전통주 스타트업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우리 전통주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도 궁금하다. 해외 시장 진출은 어떠한가?
백경증류소 전통주를 접한 외국인들 대부분은 맛이나 향에서 좋은 평가를 한다. 다만 밀 누룩의 특성상 젖산균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외국인의 어색함은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밀 누룩 대신 쌀 누룩이나 녹두 누룩을 제조해, 외국인들도 거부감 없이 한국 전통주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
해외시장은 우리가 직접 수출하는 건 아니고, 국내외 주류 유통사가 일부 품목을 해외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해외시장 시음 이벤트를 이따금씩 진행하며 평가와 피드백도 받고 있다. 올해 말에 일본 최대 주류 유통사와 협업 미팅이 진행될 예정이다. 일본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기회인데, 일본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태국(탁주 제조 기술 이전) 등 아시아 시장을 먼저 공략할 계획이다. 미국 뉴욕시 한 레스토랑에서도 팝업 시음 초청을 받아서 진행할 생각이다.
병 라벨이나 박스 디자인이 독특하고 개성 있어서 눈에 띈다. 디자인에 신경 쓰는 이유가 있는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술을 맛보게 하려면 우선 시선을 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병, 라벨, 박스 등의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20~30대 젊은 소비자 층을 겨냥해서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우리 전통 민화 스타일로 백경(흰 고래) 꼬리를 형상화했다. 이들은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병 디자인도 일반 주류 병과는 다른 모양이나 형태를 적용했다(일본이나 이탈리아 등에서 제조, 수입). 참고로 '백경' 글씨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직접 써 준 도안이다.
전통주 분야 외에 다른 영역으로 사업 확장은 고려하고 있는가?
전통주 제조 기법을 활용한 전통차 제품을 내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전통차 역시 우리 가업으로 내려오는 품목이다. 누룩을 직접 만드는 만큼, 일반 소비자도 누룩으로 전통주를 빚을 수 있도록 고급 누룩을 상품화해 시장에 선보이려 한다.
백경증류소의 현재 목표와 바람은 무엇인가?
창업 1년 만인 올해 2024년에 1.5억 원 매출을 기록했는데, 내년까지 10억 원 매출 달성이 현재 목표다. 달성하리라는 장담은 없지만,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세계 유명 위스키나 와인에 필적할 수 있는 한국 전통주를 개발하는 게 개인적인 희망이자 사업적인 바람이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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