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탕으로 끝난 플라스틱 협약···한국 소극적 태도에 쏟아진 비판
플라스틱계의 ‘파리 협정’이 될 수도 있었던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가 빈손으로 끝났다. 산유국과 비산유국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최종 합의문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개최국인 한국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일 환경부는 INC-5가 종료 기한을 하루 넘긴 이날 오전 3시에 종료됐다고 밝혔다.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은 전날 열린 본회의에서 “쟁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 “추후 5차 협상위를 재개해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전반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연장 토론에도 결국 성안에 실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당사국들은 내년에 일종의 ‘2차 INC-5’인 INC-5.2를 열기로 했다.
유엔환경총회(UNEP)는 플라스틱 구속력을 가지는 국제협약을 올해까지 성안하자고 2022년 합의했었다. 부산에서 열린 이번 회의는 계획됐던 5차 회기 중 마지막으로, 만약 성안에 성공했더라면 파리 협정, 몬트리올 의정서를 잇는 상징적인 ‘부산 협약’이 탄생할 수도 있었다.
당사국들은 개회 직후부터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을 놓고 갈등했다. 발비디에소 의장은 ‘전 주기에 걸쳐 지속 가능한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1차 폴리머 공급을 관리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문구를 논의의 시작점으로 삼자고 제안했으나 산유국들이 반발했다. ‘감축’이라고 직접 표현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감축을 의미해 합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폐회를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의장이 4차 제안문에서 ‘감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논의가 진전되는 듯 보였다. 중국도 예상보다 전향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축을 의미하는 문구 일체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전날 발표된 5차 제안문엔 산유국들의 입장이 담겨 ‘감축’ ‘유지’ ‘관리’ 세 단어가 일종의 선택지로 제시됐으나 당사국들은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
현장에선 개최국인 한국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은 INC-5를 앞두고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페루, 피지 등 33개국이 국제플라스틱협약과 관련해 발표한 ‘부산으로 가는 다리 : 1차 플라스틱 폴리머에 대한 선언’에 동참하지 않았다. 협상 4일 차인 지난달 28일 파나마를 주축으로 100여 개국이 참여한 글로벌 감축 목표 지지 성명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플라스틱 생산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감축하는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는 개최국 연합 성명서에만 동참했다.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한국은 개최국으로서 국제적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였으나,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협상 진행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주도적으로 명확하고 야심 찬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고, 현장서 인터넷 문제나 옵저버 자리 부족 등 기본적인 운영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에만 초점을 맞춘 소극적인 태도를 지속했다”고 했다.
교체 수석대표였던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개막 전날인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만 협상과 행사에 참여한 뒤 상경했다. 폐막을 하루 앞둔 30일까지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다가 폐막일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부산으로 가 사우디 수석대표를 면담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번 협상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개최국이자 플라스틱 협약 우호국 연합(HAC) 소속인 한국정부도 매우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였다”면서 “‘생산감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환경부 장관의 발언과는 달리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생산감축을 제안하는 제안서에는 단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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