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실규명 취소 위기’ 백락정 유족, 군법회의 사형판결 재심 청구

고경태 기자 2024. 12. 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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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위엔 ‘진실규명 취소’ 집행정지 요구
지난 2월14일 한국전쟁기 충남 남부지역 희생자 유족 백남식·백남선(왼쪽 둘째, 셋째)씨와 이명춘 변호사(왼쪽서 넷째)가 서울경찰청에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장에 대한 형사고소장을 접수하기 직전 기자들에게 고소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군법회의 사형판결문 등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진실 규명(피해 확인) 취소 위기에 놓인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백락정(1919년생)의 유족들이 군법회의 판결에 대한 형사재심을 청구했다. 판결문에 적힌 백락정의 혐의는 ‘국방경비법 32조(이적행위죄)’로, 유족은 국방경비법에 대한 위헌법률제청신청도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2001년 헌법재판소는 국방경비법 공포 절차에 대해 ‘합헌’ 결정한 바 있으나 △단심제 △40일 이내 집행 △민간인 재판 등 다른 쟁점에 대해선 위헌 여부를 다룬 적이 한 번도 없다.

백락정의 아들 백남선(78)씨와 조카 백남식(75)씨를 대리하는 이명춘 변호사(법무법인 정도)는 1일 한겨레에 “고등군법회의가 1951년 1월6일 선고한 피고인 망 백락정에 대한 국방경비법 위반죄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구하는 내용의 재심청구서를 대전지법 홍성지원에 28일 우편으로 접수했다”고 밝혔다. 재심청구 소송은 청구자의 최종 거주지 관할법원에 신청해야 한다. 홍성지원은 백락정이 미군정기인 1947년 시위에 참여했다가 검거돼 1948년 2월 포고 제2호 위반,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은 곳이기도 하다.

고 백락정의 젊은 시절 모습. 유족 제공

현재 미국 시민권을 얻어 필라델피아에 사는 아들 백남선씨는 재심청구서에서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위법한 재판부의 구성 △국방경비법의 위헌 요소 등을 재심사유로 꼽았다. 백씨가 낸 청구서를 보면 “백낙정은 1950년 6월 말경에 행방불명돼 얼마 후 시초 지서에서 고문을 당한 모습이 목격됐으며, 이후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내는 동네에서 좌익의 가족으로 폭행을 당했다”며 “1951년 1월6일 군법회의 재판이 있었다면 수십일간 영장 없이 구속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1951년경 군법회의는 헌법상 근거가 없는 것이었고, 1954년 헌법개정에서 비로소 헌법에 근거가 있게 되었다”며 “백락정에게 사형 판결한 군법회의는 헌법적 근거가 없는 행정기관에서 사형판결의 형식을 한 것으로써 위법한 재판이었다”고 했다. 더불어 “백락정에게 사형판결을 한 근거법령은 국방경비법 제32조인데 이는 위헌적 법률조항”이라며 “국방경비법 제32조(적에 대한 구원·통신·연락 또는 방조)를 비롯한 국방경비법의 해당조항에 대한 위헌법률 제청신청 및 헌법소원을 하여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위헌결정이 있다면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4항에 따른 재심사유가 발생하게 된다”고 밝혔다. 백남선씨 등 유족은 국방경비법이 단심제였고, 증거 설명을 생략해도 됐으며, 판결을 40일 이내에 집행하도록 했다는 이유 등으로 위헌을 주장하고 있다.

고 백락정의 조카 백남식씨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낸 백락정의 육군본부 고등군법회의 사형판결문 뒷장. 판결 이유가 공란으로 비어 있다. 백남식씨 제공

유족은 재심 신청과 함께 진실화해위에 “형사재심 확정판결 전까지 진실규명 재조사, 처분, 결정 등의 진행을 중지해달라”는 집행정지 요구서를 보냈다. 진실해화위는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 등을 근거로 3일 오후 전체위에서 ‘백락정의 진실규명 결정에 대한 취소 및 신청 각하 심의·의결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백락정의 조카 백남식씨는 “진실화해위의 과도한 행정처분으로 기존의 이익과 권리를 침해당한다면 그 피해자인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손해에 대한 책임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국민보도연맹에 연루돼 1950년 7월 대전 골령골에서 희생된 것으로 진실규명됐던 백락정은 국방경비법에 따라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받은 판결문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지난 9월 재조사 의결됐다. 하지만 사형판결의 근거가 미군정 시기 군인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국방경비법이고 판결 이유조차 없어, 재판을 거쳤어도 ‘사법적 학살에 다름없다’라는 문제 제기가 지속해서 나왔다.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희생자들의 재심에서 국방경비법에 따른 재판은 적법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1기 진실화해위도 군법회의 판결을 사실상 집단학살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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