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애가 일깨운 테니스에 있고, 골프에 없는 것-ISPS 호주오픈 관전기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 〈20〉

연제호 기자 2024. 12. 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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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가 1일(현지시간) 호주 멜버른의 킹스턴 히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호주여자프로골프 ISPS 호주오픈 정상에 올라 트로피에 입 맞추고 있다. 신지애는 최종 합계 17언더파 274타로 우승하며 개인 통산 65승째를 기록했다. 멜버른(호주) ㅣAP 뉴시스
골프와 테니스는 여러모로 닮았다. 잔디 스포츠, 클럽 중심의 운동, 신사들의 스포츠, 스포츠가 부흥한 시기, 대회가 만들어지고 전통이 세워지는 방식, 초급자가 좋은 공을 고집하는 이상한 경향 등등.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닮았다. 코로나19 시기에 골프에 몰렸던 인스타그램 감성의 젊은이들이 테니스로 이동한다는 기사도 있었는데, 이런 현상도 골프와 테니스가 가진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골퍼들은 골프는 테니스보다 오래되었고, 시장이 크며, 어쩌면 더 좋은 스포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골퍼들이 어떤 지점에 이르면 입을 다물게 되는데, 남녀간 상금격차가 그 지점이다.

디오픈 우승상금은 51억 원, 위민스오픈 우승상금은 18억 원이다. US오픈 우승상금은 57억 원, US여자오픈 우승상금은 32억 원이다. 이에 반해 윔블던 우승상금은 47억 원, US오픈 우승 상금은 49억 원으로 남녀가 같다.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남자는 5세트, 여자는 3세트를 경기하지만, 상금은 동일하다. 골프는 똑같이 4라운드를 경기하지만, 상금에서 큰 격차가 난다.

테니스대회는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개최되고, 남자부와 여자부 구분만 있다. 대회 흥행수입도 남자부와 여자부를 따지지 않을 수도 있다. 골프대회는 다른 시기에 다른 장소에서 개최된다. 두 대회 상금 규모는 대회 수익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상금 격차가 정당화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에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테니스에 있고 골프에는 없는 동등한 남녀상금은 골프대회가 테니스대회처럼 통합된다면 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전통이 다른 두 대회를 통합하기는 어렵고 복잡하다. 이에 대한 실험이 호주오픈에서 진행되고 있다. 호주오픈은 2022년부터 남녀대회를 동시에 개최하며 같은 상금을 내걸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으로 판명되어 메이저 대회에 도입된다면 골프가 테니스에 가지는 열등감 하나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12월 1일 호주 멜버른 킹스턴 히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호주여자프로골프 ISPS 호주오픈 여자 대회에서 신지애가 우승했다. 신지애는 마지막 라운드 4번 홀 모래땅에서 친 102m 샷을 홀컵에 집어넣어 이글을 기록했다. 10번 홀에서도 2온 1퍼팅으로 이글을 추가하며 애슐리 부하이(남아프리카공화국)에 7타까지 앞서갔다.

신지애가 2012년 로열 리버풀에서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압도적으로 우승하던 때가 떠올랐다. 신지애의 9타차 우승은 링크스 코스에서 개최된 디오픈과 위민스오픈을 통틀어 가장 큰 차이였다. (파크랜드에서 개최된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는 그보다 큰 차이가 난 적이 있고,디오픈은 파크랜드 코스 대회는 없다.)

신지애가 1일(현지시간) 호주 멜버른의 킹스턴 히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호주여자프로골프 ISPS 호주오픈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뒤 환호하고 있다. 멜버른(호주) AP 뉴시스
호주오픈이 진행된 킹스턴 히스 골프클럽은 링크스 코스가 아니지만, 신지애의 압도적 경기력이 12년 만에 호주에서 재현될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골프는 싱겁게 끝나는 법이 좀처럼 없다.

2위를 달리던 애슐리 부하이가 버디를 꾸역꾸역하며 따라왔고, 신지애가 17번 홀에서 짧은 파퍼팅에 실패하여 두 선수의 차이는 2타 차로 좁혀졌다. 18번 홀에서 신지애는 티샷을 페어웨이 중앙으로 보냈지만, 부하이는 좋지 않은 위치로 보냈다. 부하이가 하이브리드로 친 샷은 명백한 탑핑이었지만, 공은 구르고 굴러 핀 3.5m 거리에서 멈췄다.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신지애의 세컨샷은 그린에 미치지 못했다. 신지애는 부담되는 어프로치를 날카롭게 처리했지만, 핀까지의 1.5m가 남아 파가 보장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부하이가 3.5m 버디퍼팅에 성공하고 신지애가 파퍼팅에 실패하면 7타 차이가 지워지고 연장전으로 갈 수 있었다. 부하이는 2022년 뮤어필드에서 개최된 위민스오픈에서 전인지를 연장에서 물리치고 우승한 적이 있는 선수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부하이의 버디퍼팅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지만 아주 살짝 빗나갔다. 신지애는 1.5m 퍼팅을 두 번에 넣으면 되는 여유가 생겼다. 다른 동반자인 한나 그린(오스트레일리아)이 신지애보다 짧은 퍼팅을 남겨 놓았지만 먼저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나 그린의 퍼팅 스탠스가 신지애의 퍼팅라인에 있었지만, 여유가 생긴 신지애는 퍼팅라인 밟는 것을 허용했다.

신지애는 특유의 웃음을 선보이며 프로 통산 65승을 호주에서 달성했다. 그녀가 65승을 하는 동안 남녀 골퍼의 상금 격차는 컸다. 신지애로 인해 볼 만한 대회가 된 호주오픈이 성공을 이어간다면, USGA(미국골프협회)와 R&A(영국 왕립골프협회)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남녀 상금이 같아지는 날도 올 수 있다.

아직은 두 대회가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산만했다. 윔블던 남자 결승과 여자 결승이 센터코트와 넘버1 코트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것 같았다. 풀어야 할 숙제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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