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하나면 창업 '뚝딱'인데…AC 좌절 키운 "한국선 안 돼"
[편집자주] 2016년 11월 국내에 도입한 액셀러레이터(AC, 창업기획자)는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고 마중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창업생태계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지만 투자 실적이 없는 영세한 AC가 적지 않고 투자 및 보육사업 확장에도 걸림돌이 있다. AC 업계가 안고 있는 문제와 함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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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셀러레이터(AC)의 일종인 '벤처스튜디오'가 주목받고 있다. 창업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본과 인적 자원이 부족한 이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컴퍼니빌딩' 방식이다. 글로벌 창업대국인 미국에서는 이미 또 하나의 벤처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벤처스튜디오는 최근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급감한 상황에서 창업 열기를 되살릴 수 있는 해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AC가 벤처스튜디오 역할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 '뚝딱'…후속투자·IPO도 빨라
국내 대표적인 벤처스튜디오는 컴패노이드랩스와 패스트트랙아시아다. 최근 김봉진 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설립한 그란데클립 역시 벤처스튜디오를 지향하고 있다.
벤처스튜디오의 특징은 컴퍼니빌딩이다. 혁신 아이디어가 있는 이들에게 창업에 필요한 자본금과 전문인력을 지원한다. 기존 AC 투자와 가장 큰 차이는 경영참여 여부다. 벤처스튜디오가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면 AC는 멘토링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경영을 지원한다. 책임경영의 의미에서 벤처스튜디오가 취득하는 지분율도 최소 10% 이상으로 일반 AC 투자와 비교해 크다.
장진규 컴패노이드랩스 의장은 "벤처스튜디오가 취득하는 지분율은 일률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투자 대상의 아이디어 실현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그러나 미국처럼 차등의결권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후속투자 등을 고려해 많은 지분을 취득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투자를 진행하고 나면 창업 초기 필요한 인력들을 지원한다. 일반적으로 한 팀당 회계, 법무, 마케팅 등 3~4명이 전문인력이 전담으로 밀착지원을 진행한다. 장 의장은 "벤처캐피탈(VC)에서 제공하는 초빙 기업가(EIR)와 달리 하나의 팀으로 오너십을 갖고 지원한다"고 말했다.
벤처스튜디오의 투자 전략은 기본적으로 장기 투자다. 기업공개(IPO) 혹은 인수합병(M&A)까지 기업과 함께 가는 것이다. 다만, 기업이 빠르게 성장해 컴퍼니빌딩 수요가 사라졌거나 신규 투자자가 구주 매입을 원할 경우 구주 매각을 통해 투자 회수하는 방법도 열려있다.
벤처스튜디오의 장점은 속도다. 창업 아이디어만 있으면 빠르게 자본금과 필요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후속투자와 투자 회수까지 걸리는 기간도 짧은 편이다. 'GSSN 데이터 보고서 2022'에 따르면 벤처스튜디오 출신 스타트업은 일반 스타트업과 비교해 시리즈A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2.75년으로 41%, IPO까지 걸리는 시간도 7.5년으로 31%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 "급감한 초기 투자…벤처스튜디오 재도전 기회 왔다"
퓨처플레이,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스파크랩 등 국내 주요 AC 역시 벤처스튜디오 모델을 시도해왔다. 스파크랩의 공유 오피스 스파크플러스와 반려동물 온·오프라인 통합 플랫폼 스파크펫, 퓨처플레이의 공유 미용실 퓨처뷰티, 조리공정 자동화 솔루션 퓨처키친 등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최근 AC들의 컴퍼니빌딩 사례가 뚝 끊겼다. 싱가포르 소재 벤처스튜디오 윌트벤처빌더의 원대로 대표는 "2022년 말 벤처투자 혹한기 직전까지 넘치는 유동성에 창업 아이디어만 있으면 충분히 자본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굳이 지분을 크게 내줘야 하는 컴퍼니빌딩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최근 상황은 다르다.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덧붙였다.
원 대표가 주목한 부분은 최근 급격하게 줄어든 초기 투자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벤처투자 규모는 8조5808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1.3% 증가했다. 반면, 업력 3년 이하 초기기업 투자는 1조5606억원으로 같은 기간 24.8% 급감했다. 그만큼 창업이 어려워졌다.
원 대표는 "벤처스튜디오는 넉넉한 자본금과 다양한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며 "지원사업 중심의 대부분 AC들은 어렵겠지만, 주요 대형 AC들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AC가 벤처스튜디오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풀어야할 숙제가 있다. 우선 AC 자회사 보유 규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벤처투자법)에 따르면 AC는 경영지배를 목적으로 한 투자는 기본적으로 제한된다. 다만 AC가 직접 선발 혹은 보육한 초기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가 가능하다. 그러마 이마저도 7년 이내 지분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컴패노이드랩스나 패스트트랙아시아 등 국내 주요 벤처스튜디오들도 AC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대신 일반 지주회사 형태를 띄고 있다. 한 AC 관계자는 "컴퍼니빌딩을 통해 의미 있는 투자 회수를 하려면 장기 투자는 필수"라며 "현 구조에서는 컴퍼니빌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올해 씨엔티테크 등 국내 AC(액셀러레이터) 업계 대표주자들의 증시 입성 도전이 잇따라 무산된 가운데, 내년에는 '1호 AC 상장사' 탄생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초기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AC의 상장은 안정적인 자본 조달을 통해 생태계를 보다 활성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공모를 통해 모집된 자금은 스타트업 창업과 도전을 촉진하는 원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AC 상장은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화에도 용이하다. AC가 해외 투자사와 공동 펀드를 조성하거나 현지 법인을 만들 때 IPO(기업공개)는 신뢰도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과 해외 투자유치에도 도움이 된다.
◆ 상장으로 자본금 규모 키우고 더욱 공격적인 투자 집행
1일 AC 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을 추진한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씨엔티테크 외에도 와이앤아처와 퓨처플레이 등 AC 업계 대표주자들이 상장 문턱을 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다듬는 중이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지난해 상장 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했으나 금융감독원의 거듭된 정정 요구에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 2020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두 차례나 IPO 도전에 고배를 마셨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관계자는 "AC 상장은 초기 스타트업 시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가져올 수 있고 더 많은 이들이 초기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를 활성화한다. 공모를 통한 대규모 자금 유입으로 성장을 가속화하고 액셀러레이팅 시스템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AC 기능을 하는 기관과 개인이 많지만 한국은 이 층이 너무 얇다. AC가 상장을 통해 초기투자를 체계화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적정한 시점에 다시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씨엔티테크도 지난 4월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 지난해 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하면서 기존에 운영해 오던 푸드테크(외식 주문중개 플랫폼) 사업에서 발생하는 안정적인 캐시플로우를 강조했으나 오히려 독이 됐다. 이에 비해 AC 사업 관련 매출 비중이 적었기 때문이다.
씨엔티테크는 2003년부터 외식 주문중개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해 성과를 냈다. AC 사업은 2012년부터 시작했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 방식을 선택했고 업계에서도 상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기대가 높았지만 결국 무산됐다.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는 "올해는 AC 기반 매출이 푸드테크 매출을 앞섰기 때문에 AC 1호 상장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AC도 투자유치를 통해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들의 엑싯(투자금 회수)은 결국 상장이기에 AC 업계에 1호 상장은 절실하다"고 했다.
◆ 'AC 사업모델의 지속가능성' 입증이 최대 과제
와이앤아처는 지난해 7월 삼성증권과 IPO를 위한 주관사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씨엔티테크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AC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증명해 상장에 성공한다는 목표다.
신진오 와이앤아처 대표는 "AC의 BM(비즈니스모델)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동안 상장이 이뤄지지 못했다. VC(벤처캐피탈)의 경우 펀드 비즈니스다. 관리 보수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상장 사례가 많다"고 했다.
신진오 대표는 "안정적인 BM을 만들어내는 것이 AC 상장을 위한 정답이지만 기존에 노출된 BM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와이앤아처는 내년에 새로운 BM을 보여줄 예정이고 이를 통해 상장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퓨처플레이는 2022년 대신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IPO 추진 신호탄을 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상장 절차를 밟고 있지 않다. 예비심사를 청구할 계획이었으나 IPO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퓨처플레이는 지난해 말 창업투자회사(VC) 라이선스를 취득한 바 있다. AC와 VC라는 듀얼 라이센스를 기반으로 트랙레코드(투자실적)를 쌓으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상장을 추진할 전망이다.
퓨처플레이 관계자는 "AC와 VC의 업(業)을 재정의하고 빠른 성장성을 보여주며 상장 시장에 진입할 것"이라며 "투자업은 포트폴리오사들의 성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특히 글로벌에서 시장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포트폴리오사들의 성과를 만들어 내겠다"고 했다.
AC의 상장을 위해선 넘어야 할 허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AC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라는 차원에서 AC 상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잣대가 엄격하다. AC 사업모델에 대한 충분한 설득이 선행되고 지속 성장 가능성을 입증해야 상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김태현 기자 thkim124@mt.co.kr 최태범 기자 bum_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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