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50년, '메모리 1위' 흔들…우려 반전시킬 카드는

▲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삼성전자가 1993년부터 30여 년간 굳건히 지켜온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지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 이끌 호황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 AI 메모리로써 수요가 폭증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시장 주도권을 놓친 탓입니다.

위기 반전을 위해 삼성전자는 HBM을 포함한 다양한 AI 메모리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쓰는 한편 인사를 통해서도 분위기 쇄신에 한창입니다.

오늘(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인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의 메모리 사업은 D램과 낸드 모두 세계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해왔습니다.

1992년 D램 시장 1위, 이듬해인 1993년 메모리 전체 1위에 오르고서 2002년 낸드도 1위에 등극한 후 지금까지 왕좌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생성형 AI가 촉발한 AI 열풍을 기폭제로 메모리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메모리 수요가 AI로 쏠리고 레거시(범용) 메모리를 쓰는 기존 IT 기기의 수요 침체는 깊어졌습니다.

그러면서 HBM에서 주도권을 잡은 SK하이닉스가 급부상하고, 범용 D램이 주력인 삼성전자가 뒤처지는 양상이 펼쳐졌습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트렌드가 범용 D램에서 고객 맞춤형 칩으로 바뀌는 흐름을 읽지 못해 경쟁사보다 HBM 투자에 소홀했습니다.

뒤늦게 HBM 시장에 뛰어들어 후발주자로서 추격에 나섰지만, D램 사업에서 아직 HBM 비중이 크지 않아 유의미한 실적 반등을 이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반면 HBM에 적극적으로 '베팅'한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을 독식하는 엔비디아에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면서 시장 최강자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올해 3분기 삼성전자의 D램 시장 점유율은 D램 41.1%로 1위는 유지했습니다.

다만 HBM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전인 2022년 말의 45.1% 대비 다소 하락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2위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HBM의 선전에 힘입어 27.7%에서 34.4%까지 치고 올라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올해기 3분 잠정 실적 발표와 함께 반도체 사업 수장인 전영현 부회장이 직접 부진한 실적에 대한 사과 메시지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HBM에서 드러난 삼성의 경쟁력 약화로 인해 '기술의 삼성' 이미지가 훼손됐다"며 "근원적 경쟁력 회복은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지만, 문제를 숨기기보다 공론화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삼성 위기론' 촉발한 메모리 사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 삼성전자는 기술 개발, 양산 전략, 인적 쇄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선 시급한 과제는 엔비디아에 5세대 HBM인 HBM3E를 납품하기 위한 품질 테스트 통과입니다.

엔비디아의 최종 승인이 이뤄지면 본격적인 납품이 가능할 전망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최대한 빨리 작업 중"이라고 밝히면서 삼성전자도 납품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공급망에 진입하면 AI 반도체 랠리에 본격적으로 올라타서 실적 개선에 물꼬를 트고 메모리 1위 위상 회복에도 힘이 실릴 수 있습니다.

또 삼성전자는 6세대인 HBM4 개발을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계획대로 진행하는 등 차세대 HBM의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 개발에 한창입니다.

특히 맞춤형(커스텀) HBM 사업화에 파운드리 경쟁사인 TSMC와의 협력 가능성도 열어뒀습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적과 동침'도 불사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삼성전자 CXL 제품

HBM 이외에 시장 개화를 앞둔 AI 메모리의 기술 개발과 시장 선점에도 적극적입니다.

HBM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빼앗긴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를 위해 집중하는 AI 메모리로는 '넥스트 HBM'으로 주목받는 컴퓨터 익스프레스 링크(CLX), 지능형반도체(PIM) 등의 메모리 설루션, AI 서버용 저장장치로 쓰이는 기업용 SSD(eSSD)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기 임원 인사에서 DS부문의 인적 쇄신과 기술력 강화에 집중하면서 '초격차' 반도체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메모리 경쟁력 확보를 위해 DS부문장인 전영현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내정하면서 메모리사업부장도 맡겨 메모리 사업을 총괄하게 했습니다.

또 적자를 지속하는 파운드리사업의 수장을 교체하고, 파운드리사업부에 기술력 제고를 이끌 사장급 최고기술책임자(CTO) 보직을 신설했습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메모리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 체제로 강화한 것은 책임지고 조직을 좀 더 체계적이고 집중력 있게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파운드리사업부장 교체는 새로운 인물로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각오를 각각 보여준다"고 풀이했습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