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학생들은 왜 그리 화가 났을까

‘우리 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바뀐다고?’ 11월7일 동덕여대 학생들 사이에 일순 혼란이 번졌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동덕여대는 광주·덕성·동덕·서울·성신·숙명·이화여대 등 전국에 7개 남은 4년제 여자대학 중 하나다. 이틀 전인 11월5일 동덕여대 대학비전혁신추진단은 ‘남녀공학 전환’이 포함된 2개 단과대(공연예술대학, 디자인대학)의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각 부처 처장단, 단과대 학장단 등으로 구성된 이 회의에서 별다른 이견은 나오지 않았다. 논의 결과를 11월12일 교무위원회에 보고하고, 이후 추진사항과 의견수렴 절차 등을 정하기로 했다.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출발한 회의였다. “우리가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미달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학에서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건 어떻게 하면 우수한 학생들을 더 많이 선발할 수 있을지다.” 배경재 동덕여대 디지털혁신기획처장의 말이다. 동덕여대 자체 평가 결과, 특성화 분야인 두 단과대(공연예술대학, 디자인대학)에서도 지원율, 인지도, 이탈률 등 경쟁력이 높지 않았다는 지표가 확인됐다.
이민주 동덕여대 비상대책위원장(교무처장)은 “공학이 되면 경쟁력도, 교육의 질도 높아지지 않겠느냐, 그리고 학생들도 굳이 나빠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두 단과대에서) 안이 나왔다. 다만 경쟁력 있는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전반적인 대학 구조 개편, 우수한 교원 유치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공학 전환 건은 그중 아주 일부다”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대학비전혁신추진단 단장이자 공학 전환의 대상으로 거론됐던 공연예술대학의 교수(방송연예과)이기도 하다.
1908년 설립 이후 줄곧 여성교육기관이었던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가능성이 논의되자,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소문이 퍼졌다. 동덕여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공학으로 전환된다’는 이야기가 확정적인 것처럼 떠도는데, 총학생회에선 관련해 들은 게 하나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총학생회는 곧장 상황 파악에 나섰다. 11월7일 최현아 총학생회장은 배경재 처장에게 ‘공학 전환 소문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배 처장은 11월12일 예정된 교무위원회가 진행된 뒤에 총학생회와 면담을 약속했다. 만약 공학 전환이 교무위원회의를 거쳐 의제화되면, 총학생회 면담과 전체 학생 공청회 등 의견수렴 절차가 진행될 계획이라고도 설명했다. “(교무위원회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게 또 와전되고 오해의 소지를 부를 수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충분히 상황을 설명했다는 대학 본부의 입장과 달리, 총학생회는 공학 전환이 ‘공식 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지만, 논의된 건 사실’이라고 받아들였다. 이 논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제됐다고도 판단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밀실 회의’ ‘비민주적 공학 전환’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총학생회는 11월7일 입장문을 발표했다. “대학 본부는 빠른 시일 내 공식적으로 총학생회와 면담을 진행해 현 사태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라. (···) 총학생회는 동덕여대의 근간인 여성을 위협하는 공학 전환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 (총학생회를) 믿고 기다려주길 부탁한다.”

다음 날인 11월8일부터 총학생회는 ‘공학 전환 철회’를 요구하는 행동에 나섰다. 대자보 부착·서명·필리버스터·피케팅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당초 공학 전환의 대상으로 지목된 2개 단과대 학생회(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반대 성명문이 나왔다.
대학 본부는 학생들의 ‘공학 전환 철회’ 요구에 의문을 표한다.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거나 공식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입장을 ‘철회’부터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민주 위원장은 “대학 본부가 모두를 대변하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 교수, 직원, 동문 등 네 그룹으로 나뉜다. 의견수렴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 본부가 ‘공학 전환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겠다’라는 권한 없는 약속을 할 순 없다”라고 말했다.
총학생회는 교무위원회가 예정된 11월12일 전, 처장단과의 면담을 수차례 요구했다. 11월11일 오후 5시로 면담 약속이 잡혔다. 그사이 학교엔 ‘학생 몰래 추진한 공학 전환 결사 반대’ ‘재학생 의견 반영하라’고 적힌 근조화환이 들어섰다. 총학생회의 대응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민주 위원장은 “근조화환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공학 전환에 대한 교무위원회의 결정을) 막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약속 시간을 2시간여 앞둔 11월11일 오후 2시50분, 대학 본부는 총학생회장에게 처장단 일정 등을 이유로 회의 취소를 통지했다. 본부 측은 바쁜 일정 탓에 어쩔 수 없었고, 총학생회에 양해를 구했다고 설명했다. 총학생회의 판단은 달랐다. 학교가 학생들과 소통할 의지가 없다고 봤다. 강경 대응을 선언한 뒤 내부 논의에 들어갔다. 그사이 몇몇 학생들이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백주년기념관 1층 취업박람회장과 본관 등을 점거했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총학생회에서 논의가 길어지다 보니, 학생들은 총학생회가 느리게 움직인다고 느꼈을 것 같다. 그런데 총학생회는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많다. 내부적으로 조심스럽게 논의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먼저 본관 점거를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저녁 중앙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각 단과대 학생회 등이 모여 ‘총력대응위원회(총대위)’가 꾸려졌다. 공학 전환 완전 철회, 총장직선제 도입, (올해 초 한국어문화전공에 외국인 남학생 6명이 입학한 데 대한 설명과 사과 등) 남자 유학생·학부생에 대한 협의 등 3가지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행동을 멈추지 않겠다”라고 했다.
“대학 본부에 불신이 쌓였다”
이후 총투쟁 양상이 빠르게 전개됐다. 학생들은 본관을 비롯해 대부분의 건물을 점거하고, 수업을 거부했다. 전례없던 일이다. 학생 외 학내 다른 구성원들은 일제히 학생들의 행동에 비판을 쏟아냈다. 김명애 총장(11월12일)·총동문회(11월15일)·비상대책위원회(11월18일)·학장단(11월18일)·전 직원(11월19일)·교수 251명(11월20일)이 입장문을 내고, ‘폭력 사태’ ‘불법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대학본부는 동시에 취업박람회 진행을 맡은 용역업체가 청구한 3억여 원의 보상 청구서를 총학생회에 전달했다. 대학 자체 피해 금액은 24억여 원에서 최대 54억여 원으로 추산했다.
점거하는 학생들은 ‘오죽하면 이랬겠냐’고 했다. 총학생회는 그 이유로 대학 본부를 향한 ‘불신’을 꼽았다. “불신이 쌓였다. 작년에 숭인관 건물 옆 가파른 언덕에서 트럭에 치여 학생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거기는 학생들이 끊임없이 위험하다고 얘기했던 곳이다. 학교는 그걸 듣지 않다가, 사고가 난 뒤에야 펜스를 설치했다. 올해 3월 학사제도 개편 역시 학생들이 반대하는데도, 학생 의견수렴 절차 없이 강행됐다. 이번에도 학생들 의견을 듣지 않고, 공학 전환을 추진할 거라는 불신이 크다.” 반면 이민주 위원장은 “학생들은 소통 부재와 불신을 말하지만 학교는 이전부터 학생들이 요구하는 사안에 관해 최선을 다해 후속 조치를 취했다”라고 말했다.

총대위는 대학비전혁신추진단 회의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대학 본부의 주장대로 공학 전환이 아이디어나 브레인스토밍 차원에 그쳤는지, 회의록을 통해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경재 처장은 “회의록 공개는 논의가 시작될 때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지금 학생들이 공개하라는 건 논의가 아니라 검증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록이 조금이라도 공개되면 오해의 불씨가 일어나고, 감정 악화만 일으킨다.”
1971명. 11월20일 열린 학생총회에서 ‘공학 전환 반대’에 손을 든 학생 수다. 찬성은 없었고 기권은 2표가 나왔다. 학생총회는 동덕여대 최고 학생 의결기구다. 재학생 6500여 명 중 10분의 1 이상이 참석해야 회의가 열리는데, 이날 3분의 1에 가까운 학생들이 참여했다.
반대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공학 전환 시 싸구려 대학이 된다. 망한 학교에 지원하려는 학생은 없다” “공학 전환은 입시 사기”와 같은 ‘입결(입시 결과) 하락’에 대한 우려도 래커 낙서나 자보 속 내용에 섞여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 대다수는 “여성을 위한 교육 공간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다. 1886년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이화여대 전신)을 시작으로 여대가 탄생한 배경에는 열악한 여성의 교육권이 놓여 있었다. 여성의 교육 기회는 1948년 제헌 헌법에 성평등을 명시하고 1950년 초등교육이 의무화되면서 비로소 법적으로 보장됐다.
‘공간의 안전’과 ‘해방감’
2005년을 기점으로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줄곧 남학생을 앞섰다(2023년 기준 여학생은 76%, 남학생은 69.8%). 여전히 여대가 필요할까. 〈시사IN〉이 만난 동덕여대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공간의 안전’과 ‘해방감’을 이야기했다. 서울대 동문 딥페이크 등 학내에서 벌어진 범죄 사례들이 자주 거론됐다. 여학생들에게 여대는 ‘아무 데서나 자고 있어도 안전하다는 확신이 드는 공간’이라고 했다. 동시에 여성을 향한 차별이나 억압에서 보다 자유롭게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공부할 수 있는 ‘해방의 장소’이기도 하다.
11월15일 동덕여대 정문에서 열린 공학 전환 반대 집회는 외부인 출입금지 방침 아래, 재학생과 졸업생만 참여가 가능했다. 정문 너머엔 동덕여대 구성원은 아니지만 이들을 지지하는 여성 50여 명이 함께했다. 수능을 마친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에서 온 홍 아무개씨(18)와 경기 고양시에서 온 조 아무개씨(18)는 “페미니즘을 얘기한다는 이유로 실제 목숨의 위협까지도 느낀다. 여성들끼리의 공론장이 사라지는 게 옳지 않고, 그 과정도 비민주적이라 연대하고 싶어서 왔다”라고 말했다. 반여성주의 단체 ‘신남성연대’는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학생들을 ‘폭도’라고 규정하고, 신상을 특정하겠다고 협박에 나선 상태다. 이민주 위원장은 “학교는 이들이 학교 내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경찰에 요청하는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1월14일 총학생회와 대학 본부 처장단 간 면담은 공전을 반복했다. 처장단은 ‘공식적으로 공학 전환과 관련해 어떤 논의도 없었다. 학교를 정상화한 뒤, 논의를 시작해보자’고 말했다. 총학생회는 공학 전환 철회와 사과 없이는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대학 본부에 끊임없이 ‘여대의 역할’을 물었지만, 이민주 위원장은 “지금은 이와 관련해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일주일 뒤인 11월21일 양측은 3시간 의 면담 끝에 공학 전환 논의를 잠정 중단하고 향후 논의 재개 시 학생들과 협의를 통해 진행하는 대신, 강의실 봉쇄를 해제하고 수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홍원식 동덕여대 홍보실장은 “공학 전환 전면 철회가 아니라 잠정 중단이다. 이후 논의가 재개될 가능성을 완전히 닫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법적 책임 등에 대한 문제가 남은 탓에, 총대위는 본관 점거는 이어가기로 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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