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미팅’ 인기 끌자 ‘저출생 대책’으로 엮은 서울시

고희진 기자 2024. 12. 2. 06: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탄생 응원’ 사업 중 하나…100명 모집에 3000명 몰려
시 “예산 안 들이고 후원 진행”…‘청년 대상화’ 논란도

미혼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고 커플이 된 이들에게 상품권을 제공하는 사업이 서울시의 공식 ‘저출생 대책’이 된다.

1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열린 미혼 남녀 만남 지원 사업 ‘설렘 인(in) 한강’은 내년부터 ‘탄생 응원 서울 프로젝트 시즌 2’ 사업으로 수행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탄생 응원 프로젝트 87개 사업 중 하나로 미혼 남녀 만남 주선 사업을 넣었다”고 말했다. 탄생 응원 서울 프로젝트는 시 공식 저출생 대책을 엮은 정책 패키지다.

서울시는 당초 ‘설렘 인 한강’이 사기업인 우리카드가 비용을 전액 후원한 행사로 시의 공식 저출생 대책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지난해 저출생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지 못하는 행사라는 비판에 시 예산을 들여 기획한 ‘청년 만남, 서울팅’이 무산된 이후 1년 만에 선보이는 만남 주선 사업이었기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올해 100명을 모집한 행사에 3000명 넘게 지원하는 등 인기를 끌자 입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행사 이후 보도자료를 내 “27쌍의 커플이 성사돼, 매칭률 54%를 기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시 행사처럼 최근 기업과 종교단체, 지자체 등에서 미혼 남녀 만남 주선 행사가 잇따르는데, 정부나 지자체가 ‘출생률 제고’ 차원에서 행사를 기획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기 유무와 상관없이 저출생 대책이라는 정책의 하나로 행사가 기획된다면, 참가자는 정책의 대상자로 대상화되고 매칭률은 성과 지표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며 “젊은이들은 만남 주선 행사를 ‘플래시몹’ 같은 일종의 놀이 혹은 게임으로 가볍게 접근하는데, 지자체에서는 너무 무겁게 접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다만 내년에도 예산은 들이지 않고, 기업 후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행사를 후원하겠다는 기업들의 문의가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출생률을 높일 수 있는 혼인 관련 사업에 지원하는 것을 사회공헌과 윤리경영 활동으로 인식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 기업은 지난 8월 광화문 인근 기업·기관의 3040 미혼 남녀 만남 행사를 열고, 이를 봉사하고 새로운 인연도 찾을 수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이라고 홍보한 바 있다. 연애를 넘어서, 영농철에 지역 일손을 돕는 활동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미혼 남녀 만남 행사를 ESG 활동으로 묶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저출생이 심각하다 보니 기업이 이런 행사를 후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를 ESG와 연결하면, 기업이 정말 필요한 활동은 하지 않는 등 ESG 활동에 왜곡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