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 건 ‘유상증자 폭탄’…“이래서 한국 증시를 떠난다”

정남구 기자 2024. 12. 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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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시 50곳 중 49곳 평균 18% 주가 ↓
2024년 11월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48.76(1.95%) 내린 2,455.91에, 코스닥은 16.20(2.33%) 내린 678.19에 장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지난 4월5일 금요일 주식시장 거래가 끝난 뒤, 코스닥 상장사인 에스지(SG)·한주라이트메탈·인성정보 등 3개 회사가 유상증자를 한다고 공시했다. 유상증자는 회사가 신주를 발행해 팔아 자본금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 불길한 예감에,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주주들은 속을 태웠다. 아니나 다를까. 월요일인 8일 개장과 동시에 주가는 폭락했다. 이날 에스지가 26.12%, 한주라이트메달이 25.04%, 인성정보가 16.58% 떨어져 거래를 마쳤다.

투자자들은 ‘유상증자 폭탄’이 터졌다고 했다. 회사의 ‘합법적인 유상증자’를 ‘폭탄’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앞서 유상증가를 공시한 유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공시일 1월12일), 윈팩(2월28일)은 공시 뒤 첫 거래에서 주가가 하한가로 떨어졌다. 디엑스브이엑스(DXVX, 5월29일), 이오플로우(8월21일), 디에이치(DH)오토웨어(8월22일), 큐로홀딩스(9월27일)도 하한가로 떨어졌다. 이오클로우는 다음날에도 13.09% 추가 하락했다.

유상증자 공시가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대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 8일 금요일, 인쇄회로기판 제조업체인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이수페타시스가 5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다고 공시했다. 3만1750원이던 주가는 월요일인 11일 2만4550원으로 22.68% 폭락했다.

이에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26일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주식시장 생리를 잘 아는 현대차증권이 장 마감 뒤 2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다. 다음날 주가는 13.07%(1150원) 떨어진 7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52주(최근 1년) 신저가였다.

1일 한겨레가 올들어 유상증자를 공시한 50개 상장사의 공시 뒤 첫거래일 주가를 분석해보니, 에스티큐브(9월3일 공시, +3.99%)를 제외한 49곳의 주가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하락률은 17.6%에 이른다. 10% 이상 급락한 상장사가 36곳(73.5%)으로 넷 중 셋이었다. 하한가 6곳을 포함해 20% 이상 폭락한 상장사도 20개다.

증자를 공시한 50개사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가 8곳, 나머지 42곳은 코스닥 상장사다. 자금조달 목표 규모는 총 3조원이다. 전체 평균 조달 목표액은 600억원이다. 자금조달 목적은 유상증자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불만을 짐작하게 한다. 코스닥 기업의 경우 절반 남짓(50.5%)이 운영자금 마련, 20%가 차입금 상환 목적이었다. 수익성 높은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회사가 굴러가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단 얘기다. 이런 형태의 유상증자는 기존 주식의 가치 희석만 남긴다. 그래서 할인가에 발행하는 신주를 인수할 권리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투어 주식을 팔아버린다. 이사회가 결의한 증자 계획을 주주총회에서 부결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상증자 공시 직후 주가가 급락한 배경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경우 자금조달 목적으로 시설자금 비율이 57.8%로 상대적으로 컸다. 하지만 설비를 확대하거나 인수합병(M&A) 자금을 유상증자로 조달하려는 경우에도 소액주주들의 기대를 얻기보다 불만을 살 때가 흔하다.

이달초 유상증자를 공시해 주가가 급락한 이수페타시스는 증자로 조달하는 5500억원 가운데 2500억원을 시설자금으로, 3천억원은 2차전지 소재기업인 제이오 인수를 위해 쓸 계획이다. 공시 직후 2만4550원으로 폭락한 주가는 27일 2만1600원까지 더 떨어졌다. 증자 공시 전에 견줘 32%나 떨어진 것이다. 케이비(KB)증권 권태우 분석가는 지난달 28일 낸 보고서에서 “제이오 인수와 관련된 자금 조달이 주당순이익 희석을 초래하며 투자 리스크를 유발했다”며 목표주가를 기존 6만원에서 3만1천원으로 절반 가까이 낮췄다.

매주 한 건 꼴로 떨어지는 ‘유상증자 폭탄’에 개미들의 분노가 포털사이트 주식 토론방을 채우고 있다. ‘이러니 국장(한국 증시)을 떠난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상법을 개정하라’는 내용의 글이 수없이 쌓여간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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