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과노동 기록 사업주 손에…0.05% 산재사망 인정은 기적 같은 일
시민의 출생과 사망 기록은 국가 공동체가 관리하는 가장 기초적인 통계다. 시민의 ‘존재’를 셈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려고 들어온 외국인도 국가는 똑같은 시민으로서 대우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가장 위험한 노동을 감당하고 있는 144만명의 이주노동자 중 한해 사망자는 몇명일까?
촘촘한 기록과 행정의 나라 대한민국의 어느 문서에서도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순 없다. 한국 사회는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다치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지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기록 없이 ‘암장’된 죽음들 앞에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시행 20년을 맞아 한겨레는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과 그 이후 장례, 남겨진 사람들, 송출국의 현실을 추적했다. 위험하고 폭력적인 일터, 열악한 삶과 사회안전망의 부재, 은폐와 사기, 애도의 부재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무신경 등 눈치채지 않으려 했던 이주노동의 거대한 그림자가 타래처럼 끌려 나왔다.
미등록 노동자 즈엉반응웬(32)이 2022년 11월18일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쓰러졌다. 26분 뒤 숨졌다. 사인은 급성 심장사였다.
한해 3126명, 즈엉 또한 한국에서 기록되지 않은 이주노동자의 죽음 93.6%에 속할 가능성이 큰 처지였다.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이주노동자의 이름, 국적, 의료적 사인 등 사망자 신원을 정확히 기록하는 경우는 산재보험이나 외국인 상해보험에 보험금(보상금)을 청구한 사례에 그친다. 미등록 노동자인 채 돌연사한 죽음은 산재 신청 자체가 극히 드물다.
즈엉의 죽음은 다행히 심연에서 건져 올려졌다. 가족이 산재보험을 신청했고 법원에서 정당성을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즈엉의 죽음이 기록될 수 있었던 ‘행운’을 쫓다 보면, 이주노동자 죽음 대부분이 기록 없이 ‘암장’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실을 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인 유족이 있어서…
즈엉에게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로선 이례적으로 ‘한국인 아내’가 있었다. 즈엉의 아내 김윤정(35)은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으로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오래전 남편과 이혼한 뒤 2021년 즈엉과 만나 딸을 낳았다. 즈엉이 미등록 외국인 처지인 탓에 혼인 신고는 못 했다. 즈엉이 세상을 떠난 날 11개월이었던 딸은 올해 세살이 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어떻게 처리할 건지 혼란스러웠습니다”라고 김윤정은 서툰 한국어로 그날을 회상했다. 그래도 김윤정과 딸의 ‘존재’가 있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산재보험 ‘유족급여’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무엇보다 사망 직전, “눈앞이 빙빙 돌고 힘이 하나도 없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던 즈엉의 ‘부재’를 곧장 눈치채고 울부짖을 수 있는 존재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낸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이하 연구)는 이주노동자의 죽음 과정을 지켜본 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이주노동자 사망자의 유족을 언급한다. 대부분 유족은 본국에 있는 외국인이다. 사망 사실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 산재보험을 모르거나 절차에 거부감을 지니는 경우도 많다. 오래 떨어져 있어 정서적 거리감이 생긴 경우 또한 적잖다. 정확한 죽음의 이유와 경위를 밝힐 여력도, 이유도 크지 않은 셈이다.
김윤정은 즈엉과 진짜 가족(사실혼 관계)임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딸의 유전자 검사까지 했다. 돈이 없어 유전자 검사 비용은 친구한테 빌렸다.
분노한 동료가 있어서…
즈엉에게는 사망 정황을 증언해줄 동료도 있었다. 사고가 아닌 병사(돌연사)일 경우 ‘주 60시간 이상 노동’ 등 업무 부담 요인을 밝히는 것이 산재 인정에 필수다. 그러나 자료를 쥐고 있는 건 사업주다. 연구는 “애초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는 경우도 흔치 않지만, 그마저도 사업주가 폐기해버리면 그만인 정보들”이라고 짚었다. 실제 노동 기록 등 자료 수집이 쉽잖은 탓에 ‘대형 사업장 사고사’(중대재해)가 아닌 한 돌연사나 질병사하는 이주노동자 유족 대부분은 ‘어차피 기각될’ 산재 신청을 지레 포기한다.
즈엉 사망 이후 원청인 디엘이앤씨(DL E&C)도 “(하청 소속이지)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니다”라며 “업무시간이 길지 않았고 충분한 휴게시간이 제공됐다. 개인 질병 악화에 따른 사망”이라고 주장했다. 회사 쪽 자료만 확인한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부담 가중 요인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추가 조사 없이 산재 신청을 기각했다.
하지만 기적처럼 즈엉의 실제 노동 환경을 증언해줄 동료가 나타났다. 함께 일하고 임금을 정리해 지급한 베트남인 한(일명 한 팀장)이다. 즈엉이 실제론 주 6일 근무했고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10시간 일했다는 기록이 담긴 공수노트(일용직 노동자의 노동시간 기록)를 전했다. 법정 증언도 약속했다. “베트남 사람이 한국에서 일하다가 죽었는데, 한 사람 목숨 잃어버렸는데 개미처럼 (여기고) 아무 보상 없어서, 너무 불공평해서.” 한 팀장이 말했다.
활동가들은 1년 동안 증언해줄 동료를 찾았지만, 대부분 불안정한 처지 탓에 두려워하며 증언을 피했다. 그래서 한 팀장의 분노와 용기는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극히 드문 싸움
지난 10월31일 서울행정법원 비(B)220호. 그렇게 즈엉을 지원하기 위한 동료, 노동 전문 변호사와 활동가들이 한데 모여 법정에 들어섰다. “말을 잘 못할 것 같아서 떨린다”던 한 팀장은 증언석에서 즈엉이 쓰러진 그날을 차분히 복기했다.
“즈엉은 아침 7시 출근해 늦으면 저녁 7시까지 12시간 일했다. 휴게시간은 일정치 않았다. 그날도 점심때를 놓쳤다. 같이 컵라면을 먹었는데, 오전부터 어지럼증을 호소했던 즈엉은 그마저 제대로 먹지 못했다. 오후 작업 얼마 뒤 쓰러졌다.” 사망에 이르는 끔찍한 그날을 담은 증언이 40여분 이어졌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장은 “한국에 아내가 있고, 도와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이례적이다. 심지어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조차 돌연사가 산재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동료의 법정 증언까지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극히 드문’ 이날 법정 풍경은 한국 사회에서 미등록·돌연사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는 기적으로 이어질까.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셨어요. 이제 원하는 것은 판사님이, 저희 남편이 일 때문에 죽었으니까, 억울하지 않게, 저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주는 판결, 그거를 해줬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윤정이 말했다. 2022년 돌연사를 포함한 질병사로 산재를 인정받은 이주노동자는 17명에 그친다. 그 가운데 미등록 노동자는 단 1명이다. 한국에서 ‘병사’해 출국한 이주노동자 2152명(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자료)의 0.05%다. 즈엉의 산재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오는 19일에 나온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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