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메모리 수입하던 중국 자립… 곧 한국이 중국산 칩 쓸 것”
“10여 년 전만 해도 중국은 한국 회사가 만든 메모리를 수입해 썼죠. 지금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현지 공장뿐 아니라,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같은 중국 회사가 필요한 반도체를 직접 생산합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한국이 중국산 칩을 사게 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직면한 문제죠.”
‘칩 워(Chip War·반도체 전쟁) 저자인 크리스 밀러(Miller)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의 부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압도적 투자, 풍부한 내수, 강력한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미국의 제재를 뚫고 반도체 기술 리더십을 확보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밀러 교수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을 통시적으로 고찰한 ‘칩 워’에서 후반부 약 3분의 1을 중국에 할애했다. 그는 “과연 한국과 미국, 대만, 일본은 중국이 세계의 반도체 공급망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밀러 교수는 “현재 이 국가들은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그것이 현재 미국 주도로 진행 중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한국 반도체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 같다.
“한국은 메모리 중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메모리에서도 별 경쟁력이 없었다. 하지만 막대한 돈을 투자해 지금은 D램과 낸드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실제 한국 기업들은 예전 ‘캐시 카우’ 역할을 하던 레거시 반도체에서 중국에 시장을 빼앗겨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반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는 중국이 TSMC보다 여전히 5년 정도 뒤처져 있다. 중국이 공개한 정보를 보면, 파운드리에선 수입 제조 설비와 미국 기술에 여전히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들이 이 모든 것을 내재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5년 후에도 최첨단 인공지능(AI) 칩을 주도하는 나라가 어디냐 묻는다면, 여전히 대만일 것이라고 답하겠다.”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 반도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석유화학이든 디스플레이든 중국은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제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중국은 한국산 제품을 구매하는 대신, 한국 기업들의 생산법을 빠르게 배우고 있다. 예전 한국 기업들이 미국·일본 기업을 모방하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중국은 일부 최첨단 반도체, 항공기 엔진 등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거의 자립에 성공했다. 중국으로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부상을 지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인다.”
-중국이 빠르게 자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은 2000년 전후 전자 상거래와 인터넷 검색 등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데 그런 정보들은 외국산 반도체에 저장됐다. 2010년대 중국이 가장 많이 수입한 것은 석유가 아니라 반도체였다. 언제든지 미국에 유출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됐다.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IBM과 AMD, 암 같은 반도체 회사는 중국 업체와 컨소시엄을 꾸리는 등의 방식으로 중국의 기술 자립에 협조했다. 또 화웨이는 매출의 23%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데, 이 비율은 미국 빅테크의 거의 2배 수준이다.”
-한국이 경쟁력을 회복할 방법은?
“기술적 차별화가 없는 기업은 치열한 경쟁과 수익 하락을 피할 수 없다. 이런 기업들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잃을 것이다. 반도체는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차별화 실패에 따른 리스크도 그에 비례해 빠르고 강하게 나타난다. 기술 혁신에 끊임없이 집중하는 게 리스크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국은 AI처럼 다음 시대의 혁신에 올라탈 수 있는 핵심 부품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SK하이닉스가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는데, 다른 기업들도 사업 모델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술 변화에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역사의 교훈이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은 성공할까?
“미국의 대중 제재가 없었다면 중국의 기술 자립 속도는 우리가 지금 보는 것보다 훨씬 빨랐을 것이고, 미국·한국 등에 더 큰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어느 정도 의도한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다시 글로벌 첨단 반도체 생산 거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나 TSMC가 미국에 가장 진보된 2나노 생산 시설을 짓긴 어렵겠지만, 바로 아래 단계인 3나노 공정은 적용할 것이다. 수많은 AI 반도체가 3나노 공정에서 생산되고 있다.”
-최첨단 칩이 TSMC에 집중되는 것도 한국엔 위기인데.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90%가 대만에 있는 구조는 분명 문제가 있다. 대만은 중국의 침략이라는 안보 문제가 걸려 있다. TSMC가 대만의 안보를 보장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중국 시진핑 주석은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다. 제조 기반을 보다 다양화하려는 미국의 목표를 고려하면, 삼성전자는 잠재적으로 매우 중요한 플레이어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크리스 밀러와 칩 워
미국의 유명 경제사학자이자 국제 정치 전문가. 터프츠대학교 국제관계학 대학인 플레처스쿨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대 기술과 국제 정치의 관계를 통찰한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작이 2022년 10월 출간한 ‘칩 워(Chip War)’다.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산업이 아니라 정치·경제·국제 관계적 측면에서 세계 반도체 70년 역사를 분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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