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PC방 들어가보니… 불법 성인 게임장
지난달 27일 오후 7시 50분쯤 충북 청주시 흥덕구의 한 PC방. 간판에 포커 카드가 그려진 것을 빼곤 여느 PC방과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보였다. 충북경찰청 풍속수사팀 관계자는 “불법 성인 게임장”이라고 했다. 경찰 7명이 들이닥치자 손님 3명이 켜둔 화면에서 슬롯 게임의 형형색색 문자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본지는 이날 경찰 단속에 동행했다.
“에이, 이제 막 재미 좀 보려는데 오늘 참 재수가 없으려니까….” 슬롯 게임에 30만원을 베팅한 손님은 자리를 떴다. 이 PC방 업주 윤모(52)씨는 심의 기관에서 정식으로 연령 등급을 부여하지 않은 불법 게임을 제공한 혐의(게임산업진흥법 위반)로 입건됐다. 윤씨는 “사업장을 양도받고 문을 연 지 5일밖에 되지 않았다”며 “잘못했다”고 했다.
오후 10시쯤 찾은 서원구의 한 업소는 ‘보드 카페’라는 문구를 내걸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이 앉은 컴퓨터 화면엔 불법 슬롯 게임이 돌아가고 있었다. 경찰이 업소의 장부를 확인해봤다. 지난달 5~27일 순수익은 900만원. 경찰 조사 결과 손님이 내는 판돈의 4% 수수료는 업주가 챙기고 나머지 96%는 온라인으로 불법 슬롯 게임을 제공하는 본사로 흘러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런 업체들은 보통 외국에 서버를 두고 있다”며 “게임을 제공하는 조직에 대해서도 추적·수사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성인 게임장이 농어촌 지역에서 최근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중엔 등급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슬롯 게임을 제공할 뿐 아니라 얻은 점수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불법 환전을 해주는 곳도 적잖다. 모두 게임산업진흥법 위반이다.
경찰 관계자는 “문화 시설이 열악한 지방에서 외국인 노동자나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이런 게임장이 성업 중”이라고 했다. 최근 행정안전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성인 게임장 영업 허가는 전국에서 278건이었다. 2020년 신규 허가 156건보다 78% 늘었다. 도시·농촌 복합 지역이 넓은 경기도가 52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북 30건, 광주광역시 29건, 서울 25건, 충남 24건, 부산·전북 각18건, 전남 14건 등이었다.
경찰은 청소년도 출입 가능한 PC방 허가를 받고 사실상 슬롯 게임·도박업을 하는 업소도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개업을 허가받은 PC방은 2383곳으로 2022년의 1546곳보다 훨씬 늘었다. 경기(689곳), 울산(278곳) 충남(268곳), 경북(174곳) 순이었다.
이런 업소들은 주로 ‘○○게임랜드’ ‘◇◇게임장’ 같은 간판을 내걸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겉으로는 심의를 받은 성인 게임을 제공하면서 실제로는 불법 환전을 해주는 업소가 적잖다”며 “고령의 농민 등이 농한기에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없는 이런 게임에 빠졌다가 최대 수억원까지 날리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고 했다. 지난 9월엔 전남 영암군의 한 성인 게임장에서 한 60대 중국 국적 남성이 불을 질러 4명이 다치고 본인이 사망한 사건도 발생했다. 중국·러시아 국적 업주들이 본국 국적자를 대상으로 ‘회원제’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경찰이 단속을 해도 영업 정지·영업 폐쇄 정도 처분에 그칠 때가 많다. 농촌 등 지역의 임대료는 저렴한데 불법 영업 수익은 높으니 업주 명의를 바꿔가며 계속 영업을 강행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업소 등록 시 면적, PC 대수 등의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없는데도 딜러가 없어 현행 도박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법률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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