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약한 협약은 실패한 협약이다
지난 주말, 다양한 국적의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액티비스트 4명이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 플라스틱 원료를 운반하는 탱커선에 올라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12시간 동안 벌였다. 부산에서 진행 중인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대표단에게 강력한 협약 성안을 바라는 세계 시민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INC-5가 막을 내렸다. 앞서 발비디에소 INC-5 의장은 개막식에서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부산 논의는 특히 단 1분도 낭비할 수 없다”며 이번 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세계 시민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협상 회의의 화두인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언급되긴 했지만 구체적인 목표 연도나 수치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 회의와 마찬가지로 산유국 등 일부 국가는 재활용 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국제환경법센터(CIEL)에 따르면 이번 부산 회의에는 220명의 석유화학업계 로비스트가 등록했다. 한국 정부 대표단 140명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다. 이들은 지난 INC-4에도 유럽연합(EU) 대표단보다도 많은 196명의 로비스트를 파견했다. 협약에 생산 감축이 포함되지 않도록 온갖 힘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 생산이 지금 수준으로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한 결과를 이미 겪은 바 있다. 2019년 필리핀에서 1400여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한국으로 되돌아온 일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불법으로 수출된 폐플라스틱 5100여t의 일부가 반송된 것이다. 앞서 2017년에는 재활용 수거업체들이 플라스틱과 비닐 수거를 거부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쓰레기 대란이 발생했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시민들은 플라스틱 오염을 체감했고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해보려는 행동이 이어졌다. 꼼꼼하게 분리배출을 하고 텀블러와 다회용 용기를 사용하는 등 일상에서 갖가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쏟아지는 플라스틱 일회용품 속에서 이런 노력은 빛을 발하기 어렵다.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지 않는다면 쓰레기 대란은 더 자주, 더 많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 시민들은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INC-5 개막을 앞두고 부산에서 진행된 행진에는 1000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했고, 강력한 협약이 만들어지기를 원하는 180여개국 약 289만명의 서명이 협상단에 전달됐다. 또 그린피스가 부산 상공에 띄운 초대형 눈 깃발 ‘WeAreWatching’(전 세계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에는 세계 시민 6472명이 본인의 초상을 제공했다.
이전의 회의에서 보았듯이 모호한 약속과 자발적인 조치로는 플라스틱 오염을 막을 수 없다. 약한 협약은 곧 실패한 협약이며, 법적 구속력 있는 강력한 협약만이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끝낼 수 있다. 아직 희망은 있다. 지난달 29일 기준 175개국 중 100여개 국가가 생산 감축 조치를 지지하는 결의안에 동참했다고 한다. 플라스틱 오염을 멈출 수 있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논의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김미경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프로젝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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