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전시 없었다"…이틀간 6000명 돌파 '오픈런'
개막 첫 주말부터 '흥행 돌풍'
모바일 안내 서비스 한때 마비
"박물관 개관 이후 처음 있는 일"
빈 분리파 걸작 191점 총출동
"중앙박물관 큐레이션도 최고"
쾌적한 관람 위한 장치도 호평
“이 전시를 보려고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울산에서 올라왔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너무 만족스러워서 한 번 더 오려고 합니다.”
1일 오전 11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을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인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관람한 중년 남성 관람객에게 소감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날 기획전시실 매표소 앞에는 박물관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인터넷 예매 가능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되자 현장 판매 표를 구하려는 이들이었다.
개막일인 전날(30일) 관람객은 3000명을 넘어섰다. 아침부터 야간 개장 시간인 밤 9시까지 시간별로 수용 가능한 최대 인원을 한도까지 꽉 채운 것이다. 이틀간 관람객은 6000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관람객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작품 해설을 볼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모바일 전시 안내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자 수 과다로 마비 사태까지 겪었다. 양승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는 “박물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했는데, 즉시 서버 용량을 늘려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비엔나전이 어떤 매력을 가졌길래 이렇게 열기가 뜨거울까. 미술 전문가들이 분석한 흥행 비결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미술계도 놀란 ‘걸작 라인업’
음식의 맛은 재료가 좌우하듯이, 미술 전시회의 만족도는 작품으로 결정된다. 이번 전시 출품작은 양과 질 모두 역대 국내 전시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양미술 역사를 바꾼 빈 분리파 거장들의 대표 걸작이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1점에 달하는 출품작 중 원화만 해도 100점 이상이다. 대표작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해 실레의 유화만 해도 20점 가까이 걸렸다.
최고 수준의 전시를 숱하게 경험해 온 미술계 관계자들도 전시장을 둘러본 뒤 “어떻게 한 거냐”고 감탄을 연발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오스트리아 빈 레오폴트미술관을 최근 다녀왔는데 거기서 봤던 좋은 작품이 다 와 있다”며 “어떻게 이런 작품들을 모두 한국으로 가져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에곤 실레의 작품 몇 점만 가져오는 전시일 줄 알았는데, 잘 몰랐던 초창기 작품부터 대표작까지 아우르는 구성에 놀랐다”고 찬사를 보냈다.
가볍게 훑어보고 건너뛸 만한 습작 수준의 소품은 이번 전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관람객이 전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다른 전시에 비해 훨씬 긴 이유다. “3시간 넘게 관람했다”는 관람평도 있었다. 이날 전시장에서는 아기를 안은 아버지,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 젊은 연인 등 다양한 관람객이 작품과 설명은 물론 관련 정보를 담은 동영상과 기획 의도까지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큐레이션과 디자인도 최고 수준
국내 최고 수준인 국립중앙박물관의 큐레이션과 전시 디자인 능력이 이번 전시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뿐 아니라 전시장 전경을 함께 촬영하는 관람객이 많았다. 아름답게 꾸민 전시장 디자인까지 ‘작품’으로 본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 공방의 공예품이 전시된 3부에 들어서며 작게 탄성을 내지르는 관객도 보였다. 회화뿐 아니라 공예품, 가구 등을 두루 소개한 점도 호평받았다. 한 관람객은 “1900년 오스트리아 빈에 잠깐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라고 평가했다.
전시장 초입에 있는 빈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와 마지막 영상을 통해 빈 분리파의 두 거장 클림트와 실레의 아름다운 우정을 조명한 ‘수미상관 구성’에 감동받았다는 관람객도 많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베아트리체 갈릴리 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큐레이터는 “단순한 명화전을 넘어 짜임새 있고 아름다운 큐레이션”이라고 평가했다.
작품을 제공한 레오폴트미술관의 한스 페터 비플링거 관장은 “일본에서도 비슷한 전시를 했는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가 단연 압도적으로 뛰어나다”고 귀띔했다.
‘국가대표 박물관’다운 관람객 배려
‘블록버스터 명화전’을 볼 때 관람객이 가장 아쉬워하는 게 전시장이 너무 붐빈다는 점이다. 입장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리는데, 막상 전시장에서는 뒷사람에게 떠밀려 작품을 제대로 못 봤다는 아우성이 쏟아질 때가 많다. 전 세계 모든 인기 미술관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날 만난 관람객들은 “사람이 많았지만 미리 각오한 것에 비해 감상이 훨씬 쾌적했다”고 했다. 실제로 입구인 1부 초입 전시장은 다소 붐볐지만, 각자의 속도로 관람이 진행되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관람에 여유가 생겼다.
역대 최대 수준의 관람객을 예상한 국립중앙박물관이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한 덕분이다. 먼저 티켓을 예매할 때부터 30분 단위로 관람 인원을 제한했다. 인터넷으로 티켓을 예매한 경우 할인 대상이 아니라면 매표소에서 줄을 서지 않고 즉시 전시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현장 발권 티켓은 관객들이 헛걸음하는 일을 막기 위해 잔여 수량을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인파에 가려 설명을 못 보고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모바일 전시 안내 홈페이지도 마련했다. 전시장에 있는 모든 설명과 글귀를 볼 수 있고, 글자 크기를 관람객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노년 관람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QR코드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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