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탈성매매 여성 쉼터 ‘막달레나의 집’ 세운 문 요안나 수녀 별세

임석규 기자 2024. 12. 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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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이 진 멀로니인 문 수녀는 지난해 7월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70년 동안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며 '문애현'이란 한국 이름으로 살았다.

그와 13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며 동고동락했던 이옥정 대표는 "지난해 '또 만납시다'란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가셨는데, 다시 보지 못할 곳으로 떠나셨다"며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신 수녀님,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기쁘게 사신 수녀님이셨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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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부터 70년 동안 한국서 사역
병원 문 앞서 환자들 챙기며 문씨 성 얻어
‘막달레나의 집’을 1985년 함께 설립한 문애현(왼쪽) 수녀와 이옥정 대표가 2018년 찍은 사진. 막달레나 공동체 제공

탈성매매 여성들의 쉼터 ‘막달레나의 집’(현재 막달레나 공동체)’을 설립해 운영한 문 요안나 수녀가 지난달 28일 오후 9시(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메리놀수녀회 본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4.

본명이 진 멀로니인 문 수녀는 지난해 7월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70년 동안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며 ‘문애현’이란 한국 이름으로 살았다. 요안나는 세례명이다. 고인은 원래 한국땅에 묻히길 희망했으나, 주변에 폐가 될 것 같다며 지난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 쌍둥이 동생이 살고 있었지만, 그 전에 세상을 떴다. 영결식은 미국 현지에서 열리며, 한국에서는 오는 7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전진상센터에서 추모 미사가 진행된다.

미국 시러큐스 출신인 문 수녀는 고교를 졸업하고 간호학교에 입학했다가 메리놀수녀회에 입교했다. 1953년 10월, 스물셋의 젊은 나이에 이역만리 한국땅에 도착한 파란 눈의 수녀가 처음 일한 곳은 부산 메리놀병원. 한국전쟁 상흔이 아물지 않아 하루 2천명씩 환자가 몰려들던 시기여서 그가 처음 맡은 일은 문 앞에서 환자 줄을 세우고, 대기 번호표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하루 13시간씩 일하던 그를 환자들은 ‘문 수녀’라고 불렀고, 결국 그의 성씨가 됐다. 문 수녀는 이후 충북 증평 메리놀 병원과 인천 강화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등지에서 환자들,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강화도에서 ‘사랑과 지혜’란 뜻을 지닌 ‘애현’이란 이름도 얻었다.

그의 삶을 바꾼 것은 1984년 서울 용산역 앞에 살면서 성매매 여성들을 상담하던 이옥정(77)씨와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85년 7월22일 용산역 부근의 건물 2층에 방을 얻고 ‘막달레나의 집’을 연다. 전국 최초이자 유일했던 성매매 피해 여성 쉼터의 출범이었다. 화장실이 없어서 매일 아침이면 용산역에 있는 공동 화장실까지 휴지를 들고 달려가야 했지만, 그는 냉대받고 의지할 곳 없는 성매매 여성들을 스스럼없이 대하며 정성스럽게 돌봤다. 이후 30년 넘게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밥상공동체이자 야전병원, 친정이 되어준 막달레나의 집은 2018년부터 성매매 위기에 노출된 가출청소년들을 위한 무료진료소 운영과 성매매 예방사업에 집중한다.

문애현 수녀(왼쪽에서 두 번째)가 운영한 성매매 피해 여성 쉼터 ‘막달레나의 집’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오른쪽에서 두 번째). 메리놀 수녀회 제공

문 수녀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삶이 어떤 것이었냐고 묻자, “사랑”이라고 답했다. 그와 13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며 동고동락했던 이옥정 대표는 “지난해 ‘또 만납시다’란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가셨는데, 다시 보지 못할 곳으로 떠나셨다”며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신 수녀님,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기쁘게 사신 수녀님이셨다”고 떠올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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