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 장면 뒤, 관음의 진짜 얼굴을 찾아서 《히든페이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2024. 12. 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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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권력·관음에 대한 신선한 물음과 새로운 해석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갇혔다. 지켜봤다. 벗겨졌다." 11월20일 개봉한 《히든페이스》가 내건 홍보 문구다. 자극적인 표현들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보다 알맞춤한 함축은 없다. 《음란서생》(2006), 《방자전》(2010), 《인간중독》(2014)을 연출한 김대우 감독의 신작 《히든페이스》는 안드레아 바이즈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콜롬비아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밀실에 갇힌 채 약혼자의 비밀스러운 행각을 지켜보게 되는 여성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히든페이스》는 제목처럼 인물들 뒤에 '숨겨진 얼굴'을 발가벗기는 원작의 주요 골자를 그대로 가져오되 그보다 파격적으로 더 나아간 각색의 방향을 택했다. 주연배우들의 수위 높은 노출 연기로 먼저 화제가 됐지만, 정작 영화가 꽁꽁 숨겼던 히든카드는 따로 있다.

영화 《히든페이스》 포스터 왼쪽부터 조여정, 송승헌, 박지현 ⓒ(주)NEW 제공

인간의 민낯은 욕망을 타고

오케스트라 지휘자 성진(송승헌)은 첼리스트인 약혼자 수연(조여정)이 남기고 간 영상을 들여다본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였다. 함께 살던 집에 홀로 남은 성진은 망연자실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연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은 기약 없이 길어진다. 그사이 수연을 대신해 첼리스트 미주(박지현)가 오케스트라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부정해 보지만 결국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다는 것을 확인한 성진과 미주는 기어이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슬픈 점은 이 모습을 수연이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치정극에 그칠 수 있던 《히든페이스》를 색다른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공간, 즉 밀실이다. 이 공간의 존재감이 영화 전체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커플의 집에는 두 사람이 살기 전부터 존재한 의뭉스러운 밀실이 있다. 밖에서는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밀실 안에서는 집 안 곳곳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다. 여자는 연인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밀실에 들어선다. 잠시의 짓궂은 장난으로 끝내려던 의도는 예기치 않게 밀실의 문이 굳게 잠기면서 의외의 상황으로 굴러간다. 원작의 남자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히든페이스》에서도 성진은 이 공간의 존재 여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인물들의 민낯은 욕망을 타고 나온다. 연인이 사라진 사이 죄책감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한다. 성진은 미주를 향한 육체적 열망에 기어이 잠식된다. 애초에 그를 움직이는 거의 모든 동기가 욕망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은 늘 그의 콤플렉스다.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기보다 수연의 연인이기에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마에스트로의 위치 역시 마찬가지다. 오케스트라의 단장이자 수연 엄마(박지영)의 노골적 멸시를 비롯한 굴욕을 참아내고 있는 건, 그의 말마따나 "노력도 없이 꿈을 이루는"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고아로 자랐고, 수연과 달리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게 읽어내는 듯한 미주는 어쩐지 자신과 닮은 사람인 것만 같다. 성진이 미주에게 빠르게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다.

《히든페이스》가 진정 흥미로워지는 것은 욕망을 권력의 문제로 치환하는 순간부터다. 영화의 시간은 수연이 사라지고 성진과 미주가 새롭게 관계를 맺게 된 현재로부터 3개월 전, 이후 그보다 더 먼 과거로 점점 시계를 돌린다. 그러면서 수연과 성진, 수연과 미주의 감춰졌던 관계성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성 주인공과 새로운 파트너가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원작과는 달리 《히든페이스》는 수연과 미주를 예상치 못했던 관계성으로 엮어둔다. 이 둘 역시 일종의 권력 관계로 단단히 접합해 있고, 그 사연을 알게 된 뒤 우리가 마주하는 미주의 욕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영화에서 성진의 직업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것은 그의 직업을 설명하기 위한 표면적 설정에 그치지 않는다. 성진은 수연에게 그러지 못했던 자신의 권력을 미주에게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 세 사람의 관계 안에서 그가 지휘봉을 잡고 있을 때는 단 한순간도 없다. 가두고 갇히는 것. 이는 그저 밀실의 공간성에 부합하는 표현이 아니라, 어느새 세 인물의 권력 관계를 설명하는 행위가 된다.

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 ⓒ(주)NEW 제공

파괴되지 않는 사람들

이 영화의 에로티시즘은 단순한 화제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본능에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가장 적확한 장치로 느껴진다. 성진과 미주가 육체적 관계를 맺는 순간의 묘사는 그 자체로 수위가 높고 자극적이긴 하지만, 지켜보고 있는 수연의 관점으로 바꿔 같은 장면이 다시 한번 제시될 때의 감흥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영화에서 같은 장면을 두고 '관점이 바뀐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관음의 성격을 지녔음을 생각할 때, 배우들의 육체적 행위를 바라보았던 관객들 역시 이 상황의 공모자가 된다. 관음은 과연 쾌락인가. 수연의 입장에서 다시 보는 성진과 미주의 장면은 고통 그 자체다. 은밀히 지켜보는 자가 흥분과 쾌락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워지는 경험. 《히든페이스》는 관음을 둘러싼 기존의 시각을 전복하며 기분 좋게 뒤통수를 치는 구석이 있다.

공간에 별다른 역사적 전사를 부여하지는 않았던 원작과 달리 《히든페이스》는 밀실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 육군 소속 부대인 731부대의 사연을 부여한다. 특정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대사를 통해 간단히 처리되긴 하지만, 애초에 밀실의 존재를 만들었던 이가 731부대 출신으로 이 안에 자신을 종종 감금했다는 설정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체실험을 감행한 잔혹한 역사. 밀실을 만들어 숨어든 자는 그 안에서 잔혹했던 과거를 반성하기도 하지만, 은밀한 쾌락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김대우 감독은 밀실의 문을 "죄악과 쾌락의 경계선"이라고 설명한다.

욕망을 둘러싼 관점에서도 신선한 결말에 도달하는 영화다. 인물의 쾌락과 부정한 욕망은 보통 죄의식과 결부된다. 그들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이전과 다른 삶의 진창으로 끌어내려진다. 그것이 욕망의 대가다. 그러나 《히든페이스》의 엔딩은 욕망 때문에 파괴되지 않은 채 멀쩡하게 살아남은 인물들을 비춘다. 일련의 상황 끝에, 세 사람은 그들 나름대로 '각자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그들의 자발적 선택이다.

기묘한 감흥의 엔딩에 도달하면,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목격했던 《히든페이스》의 모든 시각적 파격은 어느덧 지워진다. 그 자리에는 욕망과 권력, 관음에 대한 신선한 물음과 새로운 해석만이 남는다. 은밀한 궁금증을 안고 이 영화를 목격하려던 관객 각자가, 극장 문을 들어설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의 얼굴로 일어서게 되는 경험. 《히든페이스》가 감춰두었던 '진짜 충격'은 우리가 일어선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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