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家’처럼 트럼프家도 정치 가문으로…트럼피즘 장기화 토대 된다
충성파 내각 인선 속 주목받는 트럼프 컨트롤 ‘얼음여인’ 수지 와일스
(시사저널=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SNS에 '일론 머스크가 인간 본성을 알아보는 법'이라는 짧은 동영상이 있다. 이 동영상에서 머스크는 "사람의 인품을 판단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그 친구나 동료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그의 적을 봐도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머스크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할 때 과연 그의 동료를 보았을까, 아니면 그의 적인 민주당 사람들을 보았을까?
그간의 정황을 보면 후자 쪽에 가까워 보인다. 머스크는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었고, 테슬라 본사도 그곳에 있었다. 민주당과도 관계가 원만했다. 그러던 머스크에게 2017년 전환점이 되는 일이 닥친다. 머스크가 공화당 중진 의원인 케빈 매카시에게 5만 달러 후원금을 냈는데 민주당에서 이를 배신 행위라고 비난한 것이다. 머스크는 이 일 이후 민주당에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업가로서 정치자금을 적절히 민주당과 공화당에 조금씩 내는 정도였는데 생트집을 잡는다는 것이었다. 이 시기 테슬라와 머스크의 회사들이 성장하면서 세금과 규제 문제로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갈등을 빚게 된 점도 그가 민주당과 멀어진 이유로 꼽힌다. 머스크는 2020년 급기야 텍사스로 이주했고, 2021년 말에는 테슬라 본사도 텍사스로 옮겼다. 올해 7월엔 스페이스X와 X(옛 트위터)의 본사 이전을 발표했다.
이 정도면 트럼프나 그의 동료들을 보고 트럼프를 지지했다기보다는 반대로 그의 적들을 보고 트럼프와 뜻을 같이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 선거 승리 후 머스크는 트럼프와 그의 동료들에게 만족하고 있을까? 트럼프 내각 인선을 둘러싼 불협화음 보도를 보면 만족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11월13일 트럼프 당선인의 플로리다주 자택 마러라고에서 열린 만찬 도중 머스크는 트럼프의 오랜 측근인 엡스타인과 인사 추천을 둘러싸고 격한 논쟁을 벌였다. 내각 인선 과정에서 신구 권력 갈등 파열음이 나온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파격적인 인선 결과를 보고 많은 이가 놀라기도 했다. 중량감 있고 유능한 사람들이 장관직에 지명됐다기보다 전반적으로 '트럼프 충성파'로 점철된 인사가 발표된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 3주도 되지 않아 장관 15명을 포함한 행정부와 백악관 주요 인선을 마무리했다. 트럼프 1기 당시 내각 구성 완료에 72일, 바이든 행정부 출범 당시 77일이 걸린 것에 비하면 초고속 인선이다. 내용도 파격적이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을 추종하는 충성파 위주로 인선이 단행됐다. 키워드는 대중 강경파, 기득권 청산, 플로리다 출신이다. 핵심 관전 포인트는 '트럼프 패밀리'가 '정치 가문'으로 변모할 수 있는가다.
충성파 내각…'슈퍼 트럼피즘' 온다
대중 강경파는 외교안보 라인과 보호주의 색채가 강한 경제 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국무장관에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국가안보보좌관에 마이크 월츠 하원의원, 국방장관에 피트 헤그세스 전 폭스뉴스 진행자가 지명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중 강경노선과 '힘을 통한 평화'다. 이들은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중국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고 기술 규제는 물론 군사적 압박도 불사하려는 입장이다. 중국 봉쇄를 위한 대북 정책 전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교안보 라인 지명자들은 대체로 북한 비핵화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고 협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하지만 보스인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그 입장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충성파들이다. 트럼프가 대중국 포위망 구축을 위해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고 이와 함께 러·우 전쟁 종식, 중동전쟁 종결을 성과로 내세우며 노벨평화상을 노린다면 충성파 외교안보 라인은 보스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할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는 어려워도 북한의 핵 동결과 제재 완화로 임기를 보내고자 한다면 1기 때 존 볼턴처럼 특별히 호불호를 보일 이유도 이들에게는 딱히 없어 보인다.
트럼프는 11월22일 국가안보부보좌관에 알렉스 웡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부대표를 임명했는데, 이를 두고 트럼프가 북한과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11월27일 로이터가 트럼프 당선인 인수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 추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해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 측은 이런 내부 논의는 유동적이라고 전했다. 소식통들은 트럼프의 초기 목표가 김정은과의 관계 복원이기는 하지만 추가적인 정책 목표나 정확한 시간표는 정해지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직접 대화를 시도한다면 획기적인 뉴스겠지만, 1기 때 해봤던 방식을 재검토하고 대북정책 방안 중 옵션 하나를 논의하는 것이라 현 단계에서 크게 의미를 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러·우 전쟁의 종결 방식과 트럼프가 푸틴보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김정은에게 제시할 수 있느냐에 따라 북·미 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언제든지 요동칠 수 있어 항시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트럼프, 김정은과 직접 대화 검토"
대중 강경노선은 경제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가 경제 라인 투톱인데 이들은 트럼프식 보호주의 정책을 철저히 실행할 인물들이다. 중국에는 고율 관세, 동맹국들에도 보편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전반적인 관세 인상이 미국 내 물가를 필연적으로 자극할 수밖에 없고 지금보다 인플레이션이 더 촉발되면 금리 인하 기조에도 영향을 미쳐 경기 회복이 더딜 수 있다.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보조금 정책에도 부정적인 트럼프 경제팀은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치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기득권 청산은 사회 분야 인선에서 두드러진다. 기득권 정치를 비판해온 정치권 아웃사이더가 대거 발탁됐다. 백신 의무접종을 반대하는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장관 지명자,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 지명자, 기업가 출신 억만장자 더그 버검 내무장관 지명자, 미식축구 선수 출신 스콧 터너 주택도시개발장관 지명자 등이 대표적이다.
15명의 장관 중 10명이 40~50대로 상대적으로 젊은 인사들이며, 다수가 폭스뉴스 진행자와 패널리스트 출신이라는 점도 기존의 인사 문법과는 다른 점이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 지명자가 대표적인 폭스뉴스 진행자와 패널리스트 출신 장관이다.
플로리다 출신 중에는 플로리다가 지역구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 전 플로리다주 법무장관 출신 팸 본디 법무장관 지명자, 플로리다가 고향인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지명자가 눈에 띈다. 이 중 수지 와일스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와일스는 연방정부 고위직이나 연방 의원 경력 없이 주로 플로리다 선거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인데, 이번에 트럼프 캠프를 질서 있게 꾸리면서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했다. 트럼프 2기의 성공 여부가 와일스가 얼마나 실권을 쥘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워싱턴 현지의 평가도 나오고 있어 와일스의 주가는 연일 상종가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와일스가 트럼프 당선인이 최악으로 가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고 보도할 정도다.
플로리다 출신의 장관 지명으로 인해 트럼프 패밀리가 정치 가문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루비오가 국무장관 지명자가 되면서 공석이 된 플로리다 연방 상원의원 자리에 트럼프의 둘째 며느리 라라 트럼프가 거론되고 있다. 루비오 지명자가 국무장관으로 정식 임명되면 상원의원 자리는 공석이 되고 다음 선거가 있는 2026년까지 이를 누가 승계할지를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정한다. 트럼프 측 인사들은 이 자리에 라라를 임명하라고 분위기를 잡고 있다. 라라는 올해 공화당 전국위원회 공동의장을 맡아 트럼프 대선 캠프의 돈주머니는 물론 캠프 전반을 관리했다. 또 '여성을 위한 트럼프' 캠페인을 이끄는 등 여성 표 확보에도 큰 공을 세웠다. 라라는 폭스뉴스에 나와 "가능하면 플로리다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 뜻을 숨기지 않았다. 뉴스위크는 라라가 임명되면 "부시 가문이나 클린턴 가문 같은 진정한 '트럼프 정치 왕조'의 시작을 알릴 것"이라고 보았다.
이대남 공략 일등공신, 18세 막내아들 배런
트럼프 정치 가문과 관련해선 마가 운동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미 군불이 지펴지고 있다. 온라인상에선 트럼프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배런 트럼프 대통령 2044' 슬로건이 적힌 배지 등이 팔리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 출마 연령은 만 35세인데 트럼프의 막내아들 배런이 출마할 수 있는 2044년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다.
트럼프 1기가 출범한 2017년 11세 소년이었던 배런은 올해 뉴욕대 신입생으로서 젊은 남성 유권자 표를 모으는 데 기여했다. 트럼프는 캠페인 기간에 유명 게임 방송 진행자인 아딘 로스와 만나면서 젊은 남성층을 공략했는데 이를 배런이 조언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미국 18~28세 남성 유권자 중 56%가 트럼프를 지지했는데 이는 2020년의 41%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가 정계를 거의 떠난 상태이고,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대선 후 예상을 깨고 벤처캐피털 회사 합류를 선언해 배런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기대는 한층 높아진 분위기다.
파격적인 4050 충성파 기용이 두드러졌던 이번 트럼프 내각 인선은 앞으로도 십여 년 혹은 20~30년 이상 마가운동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이들 충성파와 트럼프 가족이 정치 결사체로 향후 계속해서 함께 간다면 트럼피즘의 흔적은 생각보다 길고도 깊게 미국 사회에 드리울 것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