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상술에 지친 축제... '록페'의 정석 보고 배우길
[김상목 기자]
록밴드 '오아시스' 내한공연 티켓 예매로 온라인이 불타오른다. 공연이 11개월이나 남았음에도 말이다. 온갖 제약을 뚫고 티켓 획득에 성공한 이들에겐 만만하지 않은 가격이 절대 낭비로 인식되지 않는다. 고단한 일상에서 단 하루 현실을 잊고 즐길 수 있는 초월 체험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 영화 <리바이벌 69'> 스틸 이미지 |
ⓒ 스튜디오 에이드 |
요즘과 다른 차이도 발견된다. 초창기 페스티벌을 주도한 건 지금처럼 거대 기업과 이벤트 회사가 아니라, 소규모 모험적인 기획자와 음악인들의 의기투합이라는 점이다. 이는 음반회사의 통제에서 일탈해 자유로운 공연과 퍼포먼스를 누리고 싶던 가수, 수익만 노리는 게 아니라 당시 청년세대 문화 운동에 동참하려는 기획자의 의도, 자신들이 느끼고 공유하던 지향과 답답한 현실 초월을 기대하는 관객의 삼위일체가 이뤄낸 위업에 가까웠다. 물론 수익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돈벌이보다는 자신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거대한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데 가까운 비전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반전 평화운동과 기성세대와의 갈등을 시대정신으로 품던 1960년대 후반의 기운이 응집된 것처럼 분출한 여러 페스티벌은 수익성과 시대정신 구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으며 '전설'로 남았다. 재빠르게 이 급진적 기획이 돈이 된다는 걸 간파한 음악산업이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마치 텔레비전과 경쟁하던 영화산업이 '블록버스터'라는 장르를 탄생시키듯 페스티벌로 상징되는 볼거리 충만한 대형 공연을 유행시켜 현재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급격히 상업화된 록 페스티벌 명암은 확연히 나뉜다. 비싼 가격에도 압도적인 볼거리와 공연에 참여해야만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다양한 이벤트(한정판 굿즈, 미발표곡 공개, 특별 게스트와 협연 등) 등으로 얻을 수 있는 만족감과 바가지 상술, 불편한 편의시설과 종종 일어나는 안전사고 등의 위험, 감당하기 만만찮은 비용 사이 줄타기는 여전히 진행 도상에 있다. 그런 비교사례는 허다하다.
전 세계 록 페스티벌 효시이자 대명사라 할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사례는 대표적인 반면교사다. 1969년 행사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반열에 올랐고, 그 기억을 활용해 25주년 이벤트로 개최된 1994년 공연도 크게 성공했지만, 30주년 기념 1999년 페스티벌은 무수한 사고 발생과 바가지 상술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끝에 명성에 먹칠하며 후속의 대를 끊어버렸다.
이후로도 일부 페스티벌은 공연 사기 혹은 부실한 진행 등으로 무수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물론 관객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려면 들어가야 할 막대한 비용 탓에 상업적 스폰서가 붙어야 하는 등 애로가 많지만, 상업적 이익이 우선시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진실일 테다. 그럴수록 과거 페스티벌의 낭만적 순수성은 희구의 대상으로 더욱 전설이 될 수밖에 없다.
▲ 영화 <리바이벌 69'> 스틸 이미지 |
ⓒ 스튜디오 에이드 |
캐나다 토론토의 청년 기획자 존 브라우어는 1969년 여름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가을 공연도 내친김에 궁리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어릴 적 보고 듣던 1950년대 록의 선조들을 한 무대에서 보면 근사하리라 생각한 브라우어는 누구나 명성은 익히 들었고 음악은 알지만, 공연으로 접하기 힘들던 이미 '전설' 급 음악인들을 섭외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척 베리와 리틀 리처드, 제리 리 루이스, 보 디들리, 진 빈센트가 한데 모이는 꿈의 조합을 기획한다. 여기에 당시엔 신인에 불과했지만, 훗날 또 다른 전설이 된 그룹 시카고와 앨리스 쿠퍼가 오프닝과 백밴드로 가세한다. 여기에 '헤드라이너'라 불리는 마지막 클라이맥스 담당은 도어즈가 맡았다. 이 정도면 망할 일 없는 구성이라 기획자들은 자신만만할 법하다.
하지만 티켓 판매가 폭망 수준이다. 1950년대 주역이던 베테랑 음악인들은 이제 유명하긴 해도 굳이 라이브로 선택하긴 애매한 이름들이었고, 당대의 인기 그룹 도어즈는 직전에 공연장에서 제대로 사고를 쳐서 스캔들의 중심이 돼 있었다.
모험적인 기획으로 여기저기에서 투자를 받아 공연을 준비하던 존 브라우어와 동료들에겐 악몽 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같으면 공연 중단이나 연기를 통보하고, 뒷수습에 매진해야 당연할 테지만, 이 시절은 아직 주먹구구식 운영과 즉흥적 발상이 통하던 시기다. 다른 빅네임을 투입하면 된다는 마지막 승부수가 이들의 머리를 잠식한다. 그 결과는... 존 레논을 섭외하자!
말도 안 되는 우격다짐과 실오라기 같은 요행을 염원하며 어렵게 연락한 존 레논은 심사숙고 끝에 불과 며칠 후에 열릴 토론토 록 페스티벌 공연에 참여할 것을 수락한다. 흥분한 기획팀은 곳곳에 연락해 홍보를 요청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공연 표를 팔기 위해 사기를 친다고 사람 잘못 봤다며 내쫓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 촌극 속에 공연일이 다가온다. 경비인력을 구하기엔 자금이 모자라 토론토 최대의 폭주족 그룹에 에스코트를 부탁하고, 라디오 DJ들에게 공연 홍보를 청탁하며 숨 가쁘게 마지막 며칠이 쏜살같이 흐른다. 애니메이션과 실제 당시 관계자들의 인터뷰 증언을 재치있게 삽입해 마치 얼마 전 일처럼 화면에 재현해나간다. 이제 곧 후대에 전설이 될 토론토 리바이벌 페스티벌이 본격 출발한다!
▲ 영화 <리바이벌 69'> 스틸 이미지 |
ⓒ 스튜디오 에이드 |
명성 높은 음악인들의 향연이 이어졌지만, 존 레논과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첫 공연으로 토론토 리바이벌 페스티벌은 후대에 역사로 남는다.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결혼 이후 정치와 사회운동에 관심을 쏟고 당대 최고의 인기 그룹의 명성 대신에 예술가로 두 번째 획을 그으려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비틀즈 후기부터 공연을 거의 나서지 않던 터라 사색과 성찰에만 침잠해 있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런 무거움을 떨치고 자신이 추구하던 음악과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대중과 만나는 돌파구로 토론토가 약속의 땅처럼 나타난 것이다.
앞선 출연진이 자신들의 평소 활약을 100% 재현한 것과 달리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메시지와 급진 실험을 표방하며 모험적 퍼포먼스를 가미해 신곡 위주로 공연한다. 관객들은 다른 공연과는 달리 앞에 보이는 걸 이해하고자 골몰하며 홀리듯 무대를 응시한다. 박수소리나 환호는 오히려 이전 무대들보다 덜하지만, 다들 그날의 공연을 비틀즈 세 글자를 어깨에서 내릴 수 있게 된 존 레논의 태동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만큼 뭐라 형언하기 힘든 독창적이고 낯선 공연이다. 눈으로 봐야만 확인할 수 있다.
존 레논 본인도 토론토 리바이벌 공연 덕분에 비틀즈라는 거대한 이름에 짓눌려 있던 자신이 용기를 얻어 새로운 독자적 음악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고 여러 차례 술회할 정도로 중요한 공연이었다. 사실상 활동중단 상태이던 비틀즈는 이듬해 공식적으로 해산하고, 토론토에서 처음 공연된 신곡이 더해진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전설적인 1집 앨범 역시 그해에 발매된다.
50여 년 전 록 페스티벌의 감흥이 부활하다
그런 무대의 감흥은 동료 뮤지션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염되듯 전달된다. 헤드라이너 역할을 맡은 도어즈는 즉석에서 공연곡 리스트를 수정한다. 베트남 전쟁을 비롯 세계 곳곳의 내전과 분쟁의 종식을 희구하며 연주한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공연 색깔을 그대로 물려받으려는 것이다.
<지옥의 묵시록> 사운드트랙으로 잘 알려진 'The End'가 예정에 없던 첫 곡으로 선정되고 인상적인 도입부가 깔리기 시작한다. 도어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 공연이 온전히 위대한 록 음악의 선구자들과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것이라 판단한 도어즈는 자신들의 공연 모습은 녹화하지 않기를 요청한 것이다. 그렇게 도어즈는 오직 음악으로만 남았다.
▲ 영화 <리바이벌 69'> 포스터 이미지 |
ⓒ 스튜디오 에이드 |
리바이벌 69'
Revival69: The Concert That Rocked the World
2024|미국|다큐멘터리
2024.12.04. 개봉|98분|15세 관람가
감독 론 채프먼
출연 존 레논, 오노 요코, 리틀 리처드, 더 도어즈, 척 베리, 보 디들리,
제리 리 루이스, 진 빈센트,앨리스 쿠퍼
수입 ㈜억만장자픽처스
배급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빅브라더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주도만의 결혼 문화, '부신랑 부신부' 아시나요
- 브라질 이민에 로마·베를린까지... '글로벌 친일파'의 실체
- 파킨슨 병 엄마와 보낸 7년, 그후의 이야기
- 19살 연세대 1학년생이 강제로 군대에 끌려간 사연
- "윤석열 심판하라", "우리가 나서자" 우중 속 촛불 행진
- 이러다가 서울·인천도 영향권... 해수면 상승 어쩌나
- 출가한 아빠, 연애하는 엄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 신안군 임자도 어선에서 선원 3명 바다로 추락…2명 사망
- '자전거+여행' 베트남의 '노막 패스'를 아시나요?
- [오마이포토2024] 2주 연속 '윤석열 거부' 시민행진 나선 이재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