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겪어 본 상대? 하지만 속내 편치 않은 중국
[주간경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첫 포격을 날렸고 중국은 차분했다. 동맹국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중국은 오래 준비해 온 ‘판다 댄스’와 ‘회복 탄력성’으로 돌파할 채비를 마쳤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1월 25일 ‘취임 첫날인 내년 1월 20일 멕시코·캐나다 제품에 25%, 중국산 제품에는 추가로 10%를 더한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나라가 마약과 불법 이민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중국은 “무역전쟁의 승자는 없다”고 받아쳤다.
이틀 뒤인 11월 27일 중국은 미·중 수감자 맞교환 조치에 따라 중국에서 간첩·마약 혐의로 구금된 미국인 3명을 석방했다. 미·중 긴장을 완화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공적을 만들어 주면서 중국은 대화에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줬다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와 정면 대결 부담스러워
트럼프 2기 시대를 맞는 중국의 속내는 편치 않다고 여겨진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미 겪어 본 상대’라고는 하지만, 중국의 사정 역시 트럼프 1기 집권 시절(2017~2021)과 사뭇 달라졌다. 정면 대결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경제적으로는 모든 여건이 악화했다.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8년만 하더라도 중국 경제는 성장세였다. 활황 상태인 부동산시장이 성장의 4분의 1을 이끌며 무역전쟁 효과를 상쇄했다. 그러나 중국 부동산시장은 코로나19 시절인 2021년부터 꺾여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택시장은 공급 초과 상태에 들어서 성장을 견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계·기업·지방정부 모두 빚에 짓눌려 있다는 것도 중국 경제의 위험 요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정부 부문 부채가 147조위안에 달하며, 국제결제은행(BIS)은 가계·기업부채를 합하면 중국 국내총생산(GDP) 규모의 3배인 350조위안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발 관세전쟁은 이전보다 훨씬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금융계 일각에서는 중국에 생산 거점을 둔 해외 제조업체 60% 이상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수출 부진이 기업 도산, 실업, 사회안정 악화로 이어지는 것이 중국 지도부에게 가장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중국은 이 모든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준비해 왔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우군을 계속 만들어 미국을 포위하고, 내부적으로는 사회안정을 위한 ‘방화벽’을 두텁게 쌓고 지역의 ‘회복 탄력성’에 집중해 중국 안팎에서 쏟아지는 압력을 견딘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올해 들어 몇 년 동안 마찰을 빚어온 호주, 인도, 한국, 일본과 잇따라 관계 개선에 나섰다. 지난 9월 브릭스(BRICS) 정상회담을 계기로 5년 만의 공식 중국·인도 정상회담을 열었으며 국경분쟁 완화를 선언했다. 미·중 긴장이 더 첨예해지는 시대에 갈등 전선을 줄인 것이다.
한국과 일본엔 일방적 무비자 입국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도 일방적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등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중국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때문에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설치한 부표도 제거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은 동북아시아에서는 한·미·일 추가 밀착을 막고 무역·경제 문제에 공동 대응을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발도상국에는 대대적 투자를 약속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9월 모든 아프리카 수교국과의 양자관계를 전략적 관계로 격상하고 3년간 3600억위안(67조원) 투자를 약속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과는 자유무역협정(FTA) 3.0 협약을 맺었다. 페루에 13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항만 투자를 비롯해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칠레 등 남미 국가에도 대대적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남미와 아세안을 상대로 중국 농산물 시장 개방도 약속했다.
미국 시장에서 잃어버릴 몫을 다른 지역에서 최대한 벌충하고, 군사·외교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미국 우선주의 시대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는 지도국가의 위상을 확립한다면 전화위복이 된다. 당장 지난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COP29)에서부터 기후위기 시대 중국이 새로운 리더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간접 지원하는 것은 ‘판다 댄스’의 스텝을 엉키게 만드는 요소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자유무역과 평화를 옹호한다는 목소리로 우군을 확보하려 하고 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11월 1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시진핑 주석과 양자회담에서 중국이 러시아와 관계를 지속하는 한 협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의 제조업 생산 능력은 개발도상국에서도 경계를 사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브라질이 테무 등 중국 저가 쇼핑몰의 진입에 제한을 두거나 조사를 시작했다. 미국 시장을 잃은 중국산 제품들의 개도국 진출은 중국의 우호적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 처지에서 대외 전략보다 어려운 것은 내부 안정화다. 중국의 안정 조치는 양면성이 있다. 민심이 흔들리지 않고 트럼프 시대의 고통을 함께 견뎌낼 수 있도록 충성심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안전망 확보와 통제 조치 강화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낙후된 농촌·지방 도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려는 여러 조치가 올해 입법돼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농촌집체경제법 등이 대표적이다. 도농 이동을 제한해 농민공 차별을 정당화한 중국식 호적 제도인 ‘후커우 제도’ 정비를 비롯해 굵직한 개혁에도 매달리고 있다. 1600만명에 달하는 플랫폼 배달원 집단에 공산당 지부도 건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가안보와 애국도 강조된다. 지난해 반간첩법에 이어 올해는 기밀보호법이 강화돼 경찰의 노트북, 휴대전화 불심검문이 가능해졌다. 현재는 대학생만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군사훈련을 중학생까지 의무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상하이에서는 핼러윈 축제를 금지하는 등 중국 정부는 군중이 모이는 이벤트에 점점 민감해지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가 인터넷의 여러 사이트에 올린 글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상 주민번호제도(왕하오)’ 도입을 두고 의견을 수렴 중이다.
이런 조치들이 중국 내부의 불만 여론을 누르고 있지만, 유예된 갈등이 더욱 크게 폭발할 여지도 있다. 오히려 회복 탄력성이 약화하는 것이다. 다만 미국의 대중 압박책이 강경해지면 내부 불만이 미국을 향할 가능성도 있다.
인권 문제는 우크라이나 문제와 더불어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대내정책이 대외정책에 영향을 주는 악순환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국은 여러모로 트럼프 2기 시대 갈림길에 서게 됐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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