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안 하는 친구들에겐 최고의 학교”…정치권 막말에 상처받는 학생들

김찬호 기자 2024. 12.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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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지 서울시의원이 되살린 혁신학교 흔들기…그 오해와 진실
“고정관념으로 판단 말라” 학생·학부모 항의에 김 의원은 침묵
서울 강동구에 있는 선사고 학생들이 주간경향에 적어 보낸 학교에 대한 생각/정지윤 선임기자

[주간경향] 정치권의 무책임한 한마디에 또 다시 아이들이 상처받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진행된 시정 질의에서 김혜지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쏟아낸 발언이 문제가 됐다. 이날 김 의원은 서울 강동구에 있는 혁신학교인 ‘선사고’를 콕 집어서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학교”, “졸업할 때 가장 (대학) 잘 간 친구가 누구냐고 했더니 ‘경희대’라고 하더라”, “혁신학교가 정치적 배경 없는 중립적인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을 실시간 중계, 언론 기사, 유튜브 동영상 등으로 확인한 학부모들이 김 의원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한 선사고 학부모는 “(김 의원이) 너무 바빠서 종일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럼 시간 나실 때 찾아가겠다고 하니 아직 돌이 안 된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안 된다고 하더라”며 “남의 아이가 받은 상처는 무시하고, 본인 아이는 돌봐야겠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김 의원이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메시지로 면담과 사과를 요구했다. 역시나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답도 오지 않았다.

2009년 경기도에서 시작한 혁신학교는 2011년부터 각 시도교육청이 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도입하며 전국으로 확대됐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혁신학교 도입을 주도했고, 이 때문에 정쟁 대상이 됐다. 2022년 전국 교육감선거 때도 진보는 자율형 사립고 폐지, 보수는 혁신학교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해당 학교 학생들은 모교가 ‘사회적 병폐’로 지목되는 상황을 지켜봤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났다.

지난 11월 18일 김 의원의 선사고 관련 발언 역시 특별한 교육 현안이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날 시정 질의 답변자가 진보진영 단일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정근식 교육감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선사고에 다니는 학생들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다. 선사고 학생회는 지난 11월 26일 “저희의 입장은 정치적 신념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학생들이 주체가 돼 작성한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로 시작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학생회는 입장문 곳곳에서 “저희 학생들과 문제가 없던 학교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 점이 유감스럽다”거나 “저희 재학생들은 선사고가 더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김 의원) 발언으로 학교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당부를 전했다.

지난 11월 26일 방문한 서울 강동구 선사고등학교 전경./정지윤 선임기자
혁신학교를 가면 대학을 못 간다?

혁신학교를 둘러싼 모든 오해의 중심에는 ‘대학 진학률’이 있다. “혁신학교에 다니면 대학에 못 간다”는 말이 마치 진실처럼 통용된다. 학생·학부모보다 주로 입시와는 큰 관계도 없는 정치인 등의 입으로 소문이 만들어지고 퍼진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느낌적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서울시교육청은 고등학교별 대학 진학률을 공개하지 않는다. 대입 결과는 학교의 위치, 입학생의 특성과 같은 종합적 요소와 관련되기 때문에 교육청은 자료 자체를 수집하지 않는다. 또 ‘대학 진학률’은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는 경우, 등록만 하고 재수를 하는 경우, 한 학생이 복수의 대학에 합격하는 경우 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진학률이라며 공개된 자료마다 수치가 다르고, 학생·학부모의 체감과도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혁신학교는 대학 진학률을 기준으로 ‘수준이 낮다’며 공격받는다. 그렇다면 혁신학교의 대학 진학률은 실제로 어떨까. 대학 진학률을 공개하고 있는 대표 사이트로 ‘학교알리미’가 있다. 이곳에서 학교별 ‘졸업생 진로 현황’ 확인이 가능하다. 가장 최근 연도 공시인 2023년 11월 자료를 기준으로 이른바 강남 8학군 학교들의 ‘대학 진학률’을 보면 서울고 37.4%, 개포고 36.4%, 서초고 37.5%, 양재고 37.4%, 반포고 36.7%다. 같은 기준으로 선사고의 대학 진학률은 44.1%다.

이를 두고 대학 진학률과 ‘명문대 진학률’은 다르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김 의원은 시정 질의에서 선사고 면학 분위기를 비판하는 익명의 졸업생 인터뷰를 띄워두고 “너희 졸업할 때 가장 (대학) 잘 간 친구가 누구냐고 했더니 ‘경희대’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선사고의 최근 3개년 입시 통계(2022~2024)를 살펴봤다. 매해 수시·정시를 포함해서 이른바 스카이 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생이 있었다. 또 재수생을 제외한 대학 합격자의 20% 이상이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등 이른바 ‘인 서울’ 대학교로 진학했다.

선사고가 있는 강동구에는 선사고보다 대학 진학률이 낮은 학교도 있지만, 학력에 대한 비판은 오로지 선사고에만 쏟아진다. 정연정 선사고 교장은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아이들이 너무나 자랑스럽지만, 그 아이들을 내세워 학교 홍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다만 혁신학교 역시 대학 진학률이나 상위권 대학 입학 비율이 다른 일반 학교와 유의미한 차이가 있지 않다는 점만큼은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6일 서울 강동구 선사고등학교 정연정 교장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정지윤 선임기자
혁신학교는 어쩔 수 없이 다닌다?

혁신학교를 둘러싼 또 하나의 오해는 ‘학생들이 강제로 배정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닌다’는 것이다. 선사고를 포함한 혁신학교는 매해 학기 말이면 구성원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한다. 5점 만점을 기준으로 통계를 내는데 올해 결과는 학생 4점, 학부모 4.1점, 교직원 4.8점이다. 최근 3년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모든 구성원의 만족도가 한차례도 4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학부모 만족도는 매해 학생보다 조금씩 높게 나온다. 혁신학교에 비판적인 시선대로면 학부모들이 불안에 떨어야 할 것 같지만, 지표는 오히려 반대다. 김 의원은 구성원 만족도가 높은 것을 두고 “공부 안 하는 친구들은 너무 좋아한다니까요, 이 학교를”이라고 말했다.

선사고에는 지난 11월 28일 기준, 총 658명(1학년 214명·2학년 232명·3학년 212명)이 재학 중이다. 한 해 동안 이사(7명) 및 학업중단(9명)을 제외한 순수 학교 간 전학은 총 5명이 있었다. 이중 2명이 특성화고(마이스터고)로 전학을 갔다. 나머지 3명은 인근 자사고로 전학했다. 종합하면 각종 사유로 총 21명 전출이 발생했다. 해당 수치를 역시 강남 8학군 내 공립학교와 비교해봤다. 2023년 한 해 기준, 전출 및 학업 중단은 서울고 60명, 개포고 53명, 서초고 47명, 양재고 34명, 반포고 46명이었다. 인근 학교와도 비교해봤다. 강동고 16명, 강일고 20명, 광문고 27명, 동북고 31명, 둔촌고 21명 등이다. 선사고에 배정된 것이 불만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전학을 선택한다고 볼 만한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주목할 점은 선사고는 전입이 없다는 것이다. 혁신학교인 선사고는 이미 학급별 인원이 교육감 지침으로 정한 24명을 초과해 전학을 받을 수 없다. 정 교장은 “만약 전입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자사고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오는 학생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사고에서 운영 중인 학문 간 융합 수업 목록/선사고 제공

마지막 오해는 ‘혁신학교는 일반고와 달리 대입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신학교도 공립학교다. 이에 따라 수업은 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한 ‘국가수준교육과정’을 벗어날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과정 운영 측면에서 혁신학교에 부여되는 별도의 자율성은 없다. 다만 교사들이 동료 교사들과 함께 국가수준교육과정 틀 안에서 교육과정 및 수업혁신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것”이라며 “오히려 혁신학교에서 이뤄진 노력이 이미 2022 개정교육과정 등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됐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수업 역시 법에 근거한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해서 만든 수업 몇 가지가 더해진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26일 방문한 선사고에서는 1학년 3반의 연극 수업이 한창이었다. 학생들은 연기뿐만 아니라 작가, 연출 등의 스태프로도 참여해 연극 한 편을 함께 만들고 있었다. 게시판에는 학교에서 열리는 수업 홍보물도 있었다. 제목을 보면, ‘언어와 사회 현상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까?’, ‘나와 세계는 어떻게 연결될까?’, ‘수학은 우리 삶에 왜 필요하고, 어떤 도움이 될까’, ‘우리 고장 암사동의 생물 다양성은 얼마나 풍부할까’ 등이었다. 대부분 학문 간 융합을 통한 다면사고를 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를 위해 수학·국어 교사가 협업해 수업을 개설하는 식이었다. 연세대를 비롯한 유명 대학이 입시에서 강조하는 것이 ‘다면사고’다. 1, 2학년 때는 전교생이 참여한 탐구 발표대회를 한다. 1학년은 교과 과목과 관련한 소주제를 선정해 연구 및 발표를 하고, 2학년은 진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식이다. 올해 학생들이 발표한 교과심화탐구 주제 중에는 ‘미얀마 쿠데타로 보는 유엔 보호 책임의 한계와 해결방안’, ‘세균배양을 통한 천연 항생물질 찾기’ 등이 있었다.

지난 7월 선사고에서 진행한 ‘교과심화탐구’ 결과 발표회 모습/선사고 제공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 및 활동은 모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 실제로 혁신학교의 이러한 수업방식을 입시에 반영하기 위해 개교 초 대학 측이 입학사정관을 파견하기도 했다. 선사고의 대학 합격 비중 역시 정시보다 수시가 높다. 그런데도 김 의원은 선사고를 두고 “공교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학교”, “학생들이 너무 안타깝고 희생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선사고는 학생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라고 반박했다.

책임 없는 한국식 정치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는 완벽한 학교는 있을 수 없다. 입시 구조상 학생들에게는 성적을 기초로 등급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친구, 학교를 향한 갈등이 생기고 자퇴나 전학을 선택할 수 있다. 또 졸업 후 학교에 대한 원망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두고 어떤 학교에는 정상적인 입시 과정으로, 또 다른 학교에는 존폐를 따져야 할 사례로 언급된다면 이는 발언자의 의도를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일부 정치권이 혁신학교를 바라보는 잣대가 공평한가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취재가 시작된 후 선사고 학생들은 주간경향에 이번 사태에 대한 생각, 하고 싶은 말 등을 자유롭게 적어 보냈다. “우리 학교가 진짜 어떤 모습인지 알고 말하면 좋겠다”, “공부를 안 해서 행복한 학교라고 하는 건 저희의 명예를 훼손하신 것과 같습니다”,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으로만 우리 학교를 판단하지 마세요”, “선사고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을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언급하신 문제들은 혁신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고교에서 발생합니다”, “입학 전에는 선사고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3인 저는 선사고의 시간이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대학 진학률만으로 ‘교육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사고 재학생으로서 우리 학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어야 하는 이런 상황이 바로잡힐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등이 그 내용이다. 정 교장은 “이번 일로 학교공동체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겼고, 학생들의 분노도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어른으로서, 그리고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죄송하다. 의원님의 진정어린 사과를 바란다”고 밝혔다. 학부모들 역시 입장문을 내고 “김 의원이 수백 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 달라”고 요구했다.

지난 11월 26일 서울 강동구 선사고 학생들이 연극 수업을 하고 있다./정지윤 선임기자

주간경향은 김 의원에게 연락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도, 문자에 답을 하지도 않았다. 김 의원은 선사고가 있는 강동구 제1선거구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선출됐다. 시민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임명하는 서울시의회 대변인이기도 하다. 교육감을 상대로 30여 분간 선사고 비판을 쏟아냈던 그는 정작 학생·학부모의 항의에는 침묵하는 중이다. “제발 정치적 목적으로 학교를 흔들지 말아달라”는 학생들의 바람을 들어줄 정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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