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못생겼다, 한국車 결국 망했다”…현대차·기아, 욕먹어도 남몰래 웃은 사연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4. 12. 1.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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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렌토·싼타페, 메기효과로 성장
EV9·아이오닉9엔 ‘공진화 전략’
2025년 트렌드, 소비자와 공생
아이오닉9과 EV9 [사진출처=현대차, 기아]
“싼타페 못생겼다” “쏘나타 끝났다” “그랜저 누가 사냐” “현대차, 결국 망했다”

기아가 쏘렌토, K5, K8을 내놨을 때마다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누리꾼들의 반응입니다.

같은 현대차그룹 소속이지만 형님이자 경쟁상대인 현대차에 밀리는 동생인 기아에 대한 안타까움, 국산차 시장을 주도하는 현대차에 대한 얄미움과 서운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프로불편러’ 한국인의 남다른 불편·불평·불만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죠.

디자인 호불호 논란을 극복한 현대차 그랜저[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기아가 현대차보다 잘 나갈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일까요. 요즘에는 “확 달라진 싼타페 때문에 쏘렌토도 위태롭다” “K5·K8은 쏘나타·그랜저 못잡는다” 등 기아보다 현대차에 우호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의 반응처럼 현대차와 기아를 ‘적대적 관계’로 만들면 얘깃거리가 많아집니다.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죠.

뭐, 현대차와 기아 비교를 통해 한쪽을 욕하면서 싸움을 붙이는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약자를 향한 감정적 배설물인 욕은 금물이지만,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욕은 관심이 있다는 표현일 때가 있습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어야 욕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관심이 없다면 욕할 필요도 없습니다.

불편함, 부족함, 서운함을 느끼면 참지 못하는 한국인의 프로불편러 성향도 관심이 있을 때 표출됩니다.

메기, 기업과 제품 건강에 ‘특효’
메기 자료 사진 [사진출처=연합뉴스]
한국인들에게 욕(?) 많이 먹는 현대차와 기아의 관계를 잘 설명할 수 있는 경제학 용어가 있습니다. 메기 효과(catfish effect)입니다.

청어(또는 미꾸라지)가 있는 곳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청어들이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더 많이 먹고 더 열심히 헤엄치기 때문에 더 건강해지는 것처럼 강력한 경쟁자가 있을 때 자극을 받아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이론입니다.

메기 효과는 생물학 분야보다는 경영·경제 분야에서 더 자주 사용됩니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라고 강조한 20세기 대표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 덕분이죠.

토인비는 “좋은 환경보다 가혹한 환경이 오히려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며 메기 효과를 자주 인용했습니다. 가혹한 환경이 메기인 셈입니다.

국내에서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메기론’을 설파한 이후 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적절한 위협요인과 자극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메기 효과는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부작용도 있습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한 경쟁자들은 잡아먹히거나 자멸할 수 있습니다.

메기 효과를 통해 또 다른 메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메기에 잡아먹히기 않으려 기를 쓰며 살아남아 더 강력해진 청어가 메기로 ‘변태’(變態)합니다. (청어로 만든 ‘과메기’가 아닙니다.)

원조 메기와 변태 메기는 다른 청어들을 잡아먹습니다. 메기 두 마리가 남아있는 먹잇감들을 두고 경쟁하면서 몸집을 키웁니다.

서로에게 성장을 위한 자극을 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사진출처=연합뉴스]
‘메기 두 마리’는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대표적이죠. 애플과 삼성도 서로에 메기입니다.

‘원조 메기’ 애플이 아이폰을 내놨기에 삼성이 갤럭시 스마트폰을 선보일 수 있었죠.

삼성 갤럭시가 청어에서 메기로 거듭나자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폰은 더욱 진화했습니다. 아이폰의 진화는 갤럭시에 또다시 자극이 됐죠.

아이폰과 갤럭시를 앞세워 메기가 된 애플과 삼성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났지만 사실상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됐습니다.

두 브랜드 제품 간 도전과 응전으로 다른 브랜드 제품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애플과 삼성은 ‘적과의 동침’ 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입니다. 요즘에는 중국 스마트폰이 메기로 변태했죠.

메기가 없다면, 메기가 한 마리뿐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독점이나 독과점이 좋을까요.

독점과 독과점은 혁신보다는 소극적 개선, 최선보다는 차선, 차선보다는 차악을 선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매너리즘에 빠뜨리고 경쟁력도 약화시킵니다. 외부 경쟁자에 취약한 구조가 됩니다.

토인비는 찬란했던 고대 마야 문명이 멸망했던 이유도 오랫동안 외부의 적이 없어 갑작스럽게 닥친 시련에 취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죠.

먹잇감이 충분하고 천적도 없던 낙원에서 살아 날아다닐 필요성을 못 느낀 도도새가 멸종된 이유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포식자 때문입니다. ‘도도새의 법칙’입니다.

메기끼리 ‘담합’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메기 후보군이 있다면 소비자들에게도 이득입니다. 한 마리가 압승했다면 느끼지 못할 ‘애정공세’ 때문이죠.

BMW와 벤츠의 도전과 응전 [사진출처=BMW, 벤츠]
자동차 분야에서도 ‘메기 두 마리’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대표적입니다.

두 브랜드도 도전과 응전을 통해 메기가 됐습니다. ‘적과의 동침’인 셈입니다. 이제는 테슬라가 또 한 마리의 메기가 돼 벤츠와 BMW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피겨 여왕’ 한국의 김연아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는 서로의 최고의 라이벌이자 영감을 주는 메기같은 존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의 점프 기술,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의 예술성과 표현력에 자극받았습니다.

둘의 경쟁을 통해 피겨의 예술성과 기술력은 한 단계 더 진화했습니다. 피겨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성장했죠.

벤츠·BMW 닮은 현대차·기아
서로에게 힘이 된 쏘렌토와 싼타페 [사진출처=기아, 현대차]
국내 자동차 브랜드 중에서는 현대차와 기아가 서로에게 ‘도전과 응전’을 강제하는 메기입니다.

현대차가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부도난 기아를 인수했을 때 카니발라이제이션(시장잠식)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서자인 기아가 적통인 현대차를 도와주는 역할에 머물려 존재감을 잃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와 기아는 ‘따로 또 같이’ 전략으로 두 마리 메기가 돼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웠습니다.

기아는 현대차에 인수된 뒤 미꾸라지가 될 위기에 처했지만 결국 메기로 화려하게 변태했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취임한 뒤 진행한 ‘디자인 경영’ 전략이 통했기 때문이죠.

2000년대 초반까지 기아는 현대차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하면서 위기에 처했습니다. 당시 정의선 사장은 ‘체질 개선’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습나다.

정 사장은 현대차와 차급도 성능도 비슷하다면 ‘디자인’에서 차별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현재 ‘디자인 기아’는 현대차에 맞먹는, 때로는 현대차를 이기는 메기로 변태했습니다.

그랜저와 K8 [사진출처=현대차, 기아]
현대차 아반떼와 기아 K3, 현대차 쏘나타와 기아 K5, 현대차 그랜저와 기아 K8, 현대차 투싼과 기아 스포티지, 현대차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 등도 서로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계속 성장하게 강제하는 메기들입니다.

지난해 글로벌 판매 실적을 보면 두 브랜드의 존재가 현대차그룹에는 ‘행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차는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54% 증가하면서 15조원을 처음 돌파해 역대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렸습니다. 판매대수는 전년 대비 6.9% 늘어난 421만6898대로 집계됐죠.

기아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0.5% 늘어난 11조원을 넘어서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습니다. 판매대수도 전년보다 6.4% 증가한 308만7384대에 달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는 현대차가 앞에서 끌고 기아가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대수는 730만여대로 2년 연속 세계 3위를 기록했습니다. 세계 1위인 일본 토요타, 2위인 독일 폭스바겐그룹과 함께 3강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맏형이 된 제네시스가 벤츠, BMW, 포르쉐 등 글로벌 프리미엄 리딩 브랜드와 당당히 겨룰 수 있게 된 것도 두 동생의 고군분투 덕분입니다.

공진화 전략으로 ‘한국차 파이’ 키워
해외에서 극찬받은 EV9 [사진출처=기아]
메기 효과를 통해 한국이라는 우물을 벗어나 바다로 나간 현대차와 기아는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또 하나의 전략을 사용합니다.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 전략입니다. 공진화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둘 이상의 그룹 간에 상호 연관된 진화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꽃과 나비처럼 서로 다른 둘 이상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합니다. 먹고 먹히는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협력적이고 이타적이고 호혜적입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같은 업종은 물론 다른 업종과 단순히 협력이나 제휴하는 수준을 넘어 공생하고 공동 성장을 추구하는 현상을 공진화 전략이라고 표현합니다.

잠재력이 뛰어난 블루오션(blue ocean)을 개척하거나 공략하면서 파이를 키울 때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죠.

공진화 전략은 한달 앞으로 다가온 ‘2025년의 트렌드’라고도 하네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최근 발표한 ‘트렌드코리아 2025’에서도 소개됐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주도권을 가진 시장을 ‘사수’ 할 때는 메기 효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공략할 때는 공진화 전략을 적용한다고 볼 수 있죠.

EV9 고성능 모델인 EV9 GT [사진출처=기아]
현대차그룹 공진화 전략의 최신 사례는 기아 EV9과 현대차 아이오닉9입니다.

두 차종은 아직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대형 전기 SUV 시장을 ‘따로 또 같이’ 공략해 현대차그룹의 존재감을 더 향상하고 파이도 키우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선봉장은 EV9입니다. 기아의 지속가능성 비전을 앞당기고 이동에 대한 개념과 방식을 완전히 바꿔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는 플래그십 전동화 SUV입니다.

EV9은 해외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상복도 터졌죠.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의 격전지인 미국, 평가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출시 전부터 영국 ‘2023 왓카 올해의 차’, ‘2024 독일 올해의 차’, ‘2023 뉴스위크 오토 어워즈’ 등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서로 못줘서 안달이 났다고 여겨질 정도였죠.

올해에도 ‘2024 북미 올해의 차(NACTOY)’ SUV 부문 우승을 거머쥐며 북미시장에서 상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독일에서는 독일차보다 낫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독일 자동차 전문매체 ‘아우토 자이퉁’이 진행한 비교평가에서 ‘억’소리나는 벤츠 EQS 450, 아우디 Q8-e트론에 승리해서죠.

아이오닉9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EV9이 한국차 최초로 개척한 시장에 아이오닉9도 뛰어듭니다. 현대차는 지난 21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골드스테인 하우스에서 아이오닉9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현대차가 그동안 선보인 적 없는 파격적인 디자인, 세계 최초로 적용한 첨단 기술, 경쟁차종을 압도하는 디지털 편의성과 공간활용성 등을 총동원해 제작한 야심작입니다.

내년 상반기 한국 출시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뛰어듭니다.

기아도 맞불(?)을 놨습니다. 같은 날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24 LA 오토쇼(LA Auto Show)’에서 EV9의 고성능 버전인 EV9 GT를 공개했죠.

아이오닉9과 EV9 GT는 미국 유력 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가 선정한 ‘2025 가장 기대되는 신차’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아이오닉9 [사진출처=현대차]
공진화는 단순히 아이오닉9과 EV9, 현대차와 기아 등 상품과 기업 관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기업과 소비자도 공생해야 합니다.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제품이 기업 생존에도 큰 힘이 됩니다.

현대차그룹이 내년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자동차 한류’를 더 강화하는 동시에 한국인에게도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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