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말고 자본시장법으로 충분? 주주보호 어떻게 다른가
핀셋 규제로 부작용 덜지만 땜질식 처방 효과 의문
소모적 논란 피하려 차선책 고려? "법 개정 왜하나"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정부·여당이 대안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들고 나왔다. 기본법으로 다양한 하위 법령과 판례에 적용될 수 있는 상법을 개정하기보단, 자본시장법에서 일부 사안에 한정된 절차적 주주보호 규정을 두자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재계의 우려와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주주보호도 도모할 수 있어 합리적인 방안임을 앞세우고 있지만, 원칙이 아닌 일부 절차적 권리만 개선하는 '땜질식 처방'은 유사한 문제만 키울 것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주주보호 적용 법인 103만개→2400여개, 적용 범위도 축소
우선 자본시장법 개정에 그쳤을 때 주주보호 관련 조항의 적용을 받게 될 법인은 코스피·코스닥 상장법인 2464개(2023년 말 기준)로 한정된다. 상법 개정이 진행된다면 비상장법인 102만8496개(2024년 6월 기준)도 대상이 되는 것과 적용대상에서 큰 차이가 난다.
주주보호가 적용되는 사안의 범위도 좁혀진다. 정부·여당이 준비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상장법인 합병이나 물적분할 등 지배주주의 판단으로 일반 주주의 이익이 침해되기 쉬운 주요 사안에서 '주주보호원칙'에 관한 사항을 특별규정으로 신설하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에 기업 물적분할이나 상장 시 '기존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거나 '자회사의 신주를 기존 모회사 주주들에게 일정 비율 배정'하도록 하는 특칙을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합병비율 산정 방식을 주식 시가가 아닌 기업 실질가치를 반영하는 공정가액으로 변경'하고, '외부 평가기관의 합병비율 평가 결과 공개' 등 정보비대칭 완화를 위한 조항을 특칙으로 삽입하는 것들이 거론된다.
반면 상법 개정은 제382조의3(이사 충실 의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조항에 회사만이 아니라 주주도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핀셋 규제'로 부작용 최소화 vs '사후약방문' 반복
또 자본시장법 개정은 절차적으로 주주 보호를 위한 장치를 두는 것이어서, 해당 절차적 조건을 충족하기만 하면 거래의 적법성이 확보되고 이사는 면책을 보장받는 효과가 있다. 소송 남발이나 경영권 위축을 우려하는 재계에서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다.
반면 상법상 이사가 주주에 대해 충실 의무를 지켰는지는 대원칙으로서 구체적 사안마다 금융당국의 유권해석이나 법원의 판단을 거쳐 최종 결론이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상법 개정 방식은 수범자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있지만, 반대로 대원칙을 확고히 하는 것이 점차 다변화되는 금융환경에서 규제의 정합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논문에서 사안별로 개별 규정(특칙)을 만들어 대응하는 방안에 대해 "스탠더드 자체를 부정하면서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특별히 무언가를 창설적·시혜적으로 베풀어준다는 관점은 집행과정에서 한계와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특히 M&A, 금융기법이 발달할수록 규정의 문구를 우회하거나 벗어나기 쉬울 것"이라며 "물적분할 상장과 같은 예상 못한 행위가 발견될 때마다 새로 규정을 만드는 사후약방문이 될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입법 진통 피하기 상책인가…법개정 의미 퇴색 우려
한편 상법 개정을 통해 실체법적 권리인 이사의 충실 의무가 확대되면 이에 근거하는 하위 법령이나 관련 판례에 줄줄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입법 시 진통이 예상된다.
지난 21일 주요 16개그룹 사장단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이사회의 정상적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공동성명을 냈다. 주요 그룹 사장단의 단체성명은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9년 만에 처음이다.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막아설 가능성까지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소모적인 논란보단 당장 최소한의 권리 보장을 우선하며 자본시장법 개정을 지지하는 입장도 있다.
기존에 상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해왔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8일 자본시장법 개정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제 개인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증상에 맞는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방법과 절차를 우선하기에 자본시장법 개정에 힘을 싣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절충은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하며, 오히려 주주 권리를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도 크다. 지난 20~30년간 주식 저가 발행과 일감 몰아주기, 부당합병 등의 사건이 생길 때마다 관련 조항을 일부 수정하는 식으로 대응해 왔지만, 법기술과 장기간의 소송에서 유리한 기업이 결국 주주권을 침탈하는 일이 반복돼왔다는 것이다.
이 원장이 발언한 날 "자본시장법 개정은 퇴행"이라며 기자회견을 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천준범 부회장(변호사)은 "그동안 기본 원칙 없이 땜질만 하다 물이 샜고, 이런 식이면 구멍이 또 생길 것"이라며 "자본거래에 대해서만 절차적 규정을 두는 건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를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개악"이라고 지적했다.
포럼의 이남우 회장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거버넌스가 좋지 않은 이유는 비상장사인 스타트업부터 나쁜 관례가 쌓여있기 때문"이라며 "(비상장사가 제외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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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정다운 기자 jd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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