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특례 빠진 정책대출 규제는 ‘앙꼬 없는 찐빵’?[경제뭔데]
바깥 바람이 부쩍 차가워졌습니다. 한동안 뜨거웠던 수도권 주택 시장도 마찬가지인데요. 지난 9월부터 시중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시작된 데 이어, 오는 2일부터는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정책대출인 디딤돌 대출 한도까지 줄어들게 됩니다. 역대 최대치를 갱신한 가계부채 문제를 잡으려면 정책대출 조이기도 병행돼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혹한기에도 나홀로 ‘무풍지대’에 있는 대출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신생아특례 디딤돌대출(신생아특례대출)입니다. 신생아특례대출은 곧 시행되는 디딤돌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소득 요건도 지금보다 늘어나게 됩니다. 부부합산 연 1억3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한도가 오히려 상향되는 것이죠.
신생아 특례대출은 빠진 대출규제,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오늘 경제뭔데에서는 신생아특례대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디딤돌의 22%는 신생아특례대출
먼저 현황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대출 신청일 기준으로 2년 내 출산·입양한 가구에게 최대 5억원의 주택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입니다. 연 이율은 1.6~3.3%로, 4~5%대인 시중은행 주담대는 물론 기존 디딤돌 대출(2.65~3.95%)보다도 훨씬 저렴합니다.
반면 소득 요건은 기존 디딤돌 대출보다 대폭 완화됐어요. 이날 기준 기존 디딤돌 대출은 부부합산 연 8500만원, 신생아특례대출은 1억3000만원 이내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주택 가액 역시 9억원으로, 기존 디딤돌(6억원)보다 높습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수도권 아파트는 물론이고, 서울 외곽지역 아파트까지도 노려볼 만한 가격이죠.
출시 직후부터 호응은 뜨거웠습니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신생아 특례대출 집행 실적’을 보면 신생아특례대출은 출시 9개월(2~10월) 만에 누적 집행액 5조545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올해 디딤돌 대출 집행액(24조7101억원)의 22%에 달합니다.
주택 가액별로는 4억~6억원대 주택(62.2%)이 가장 많지만, 7억~9억원 주택 비중도 26.5%로 높은 편입니다. 연 소득 8500만~1억3000만원 가구가 대출받은 비중도 36.8%로 높은 편이에요. 기존 디딤돌 대출은 받을 수 없었던 중산층 이상의 정책대출이 이 만큼이나 늘었다는 뜻입니다.
집값 상승의 ‘범인’은 신생아대출?
사실 정책대출 확대는 지난 2~3년간 이어진 정부 기조였습니다. 거래 절벽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초 특례보금자리론이 출시됐고, 이는 침체됐던 부동산 시장 회복의 단초로 작용했죠. 특례보금자리론 신청이 끝난 올해 초에는 바로 신생아특례대출을 출시됐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결혼 패널티를 해소하겠다’며 디딤돌 소득기준도 연 7000만원에서 8500만원으로 상향했고요.
국토교통부는 정책 대출, 특히 신생아특례대출 출시가 집 값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출산 여부나 주택 가액이나 소득 한도에 ‘조건’이 붙는 대출인 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죠. 최근의 수도권 집값 상승세가 서울 강남 등 선호지역 위주로 일어났다는 점도 이러한 정부 주장에 힘을 싣습니다. 이 지역 집값은 신생아특례대출 한도인 9억원을 까마득히 넘어서니까요.
그럼에도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합니다. 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갈아타기’가 활발해졌고, 이것이 거래량 증가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반박입니다. 실제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한 시점도 신생아특례대출 출시 시점과 맞물려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1월(-0.24%)부터 하락폭을 줄이기 시작해 3월 보합 전환(0.0%)된 뒤, 대출규제 직전인 8월(0.75%)까지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서울 중저가 주택 밀집 지역에선 신생아특례대출 한도에 맞춘 ‘키 맞추기’ 현상도 나타났어요. 양천구 신월동 ‘목동센트럴아이파크위브’ 전용면적 59㎡ 실거래가가 지난해 12월 8억7000만원에서 올해 9월 10억원으로 상승하는 등 9억원 이하 매물 ‘품귀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신생아 빠진 애매한 규제, 왜?
이런 정부 기조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비교적 최근입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세의 주범으로 부동산 대출 확대를 지목하며 본격적인 규제를 예고하면서부터인데요.
올해 3분기(7~9월) 가계대출은 역대 최고치인 1900조원을 경신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10월 가계 대출 동향에 따르면, 3분기에 늘어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30% 가까운 돈이 정책대출이었습니다. 부처간 ‘정책 엇박자’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국토부는 대출을 더 많이 해주겠다고 하고, 금융당국은 대출을 당장 줄이겠다고 나섰으니까요.
결국 손을 든 건 국토부입니다. 이달 초 ‘디딤돌 맞춤형 관리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규제 방안을 내놓은 것인데요. 수도권 아파트를 구입하는 경우 최대 5500만원에 이르는 최우선변제금 공제를 의무화하고, 준공 전 미등기 아파트를 담보로 한 ‘후취담보대출’을 금지해 대출한도를 대폭 줄이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이번 규제에서도 신생아 특례대출은 예외로 인정됐습니다. 국토부는 “인구 감소와 저출생 대응이 국가 생존의 문제임을 감안했다”는 입장입니다. “소득요건 완화로 인한 추가 수요는 약 2조원 정도로, 정부 재정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가계부채 관리와 기금 안정성을 이유로 디딤돌 대출을 규제하겠다면서, 디딤돌 집행액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신생아특례대출은 오히려 늘리다보니 ‘애매한 규제’가 됐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최근 집값 상승세를 이끈 수도권 선호지역보다는 외곽 지역, 중산층보다는 서민층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도 나올 수 밖에 없고요.
전문가들은 정부의 주거안정 대책이 지나치게 대출 의존적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 없는 서민들과 신혼부부의 주거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를 고려하더라도, 가계대출 증가분의 30%가 정책대출인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라며 “상환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리대출 대상을 중산층으로 확대하는 금융정책이 당장은 손쉬운 해결책일 수 있어도, 자기 소득 이상으로 대출을 받게 되면 개인들은 계속 피곤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며 “정공법은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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