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죄 엇갈린 ‘이재명 사법리스크’ [민경진의 판례 읽기]
선거법 위반 2심 등 남은 재판 변수
[법알못 판례 읽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차기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보전받은 선거 비용 434억원도 반납해야 한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공식선거법 위반 사건 선고 후 열흘 만에 나온 이른바 ‘위증교사’ 사건 1심에서 이 대표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
재판부는 고(故)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수행비서 김진성 씨에게 이 대표가 증언을 요구한 건 위증교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로써 이 대표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대선후보로서 허위 발언은 대의민주주의 본질 훼손”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한성진)는 11월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이던 2021년 대장동 사건 핵심 실무자인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의혹과 관련해 허위 발언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의 죄책과 범정이 상당히 무겁다고 할 것”이라며 “선거 과정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야 하지만 허위사실 공표로 인해 일반 선거인들이 잘못된 정보를 취득해 민의가 왜곡될 수 있는 위험성 등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동종 범행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도 있다”며 “다만 피고인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한 점, 피고인에게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2021년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는 취지로 허위 발언하고 2021년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 나와 성남 백현동 식품연구원 부지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협박해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했다”며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재판부는 김 전 처장과 관련된 발언 중 ‘해외 출장 중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부분을 허위사실 공표로 보고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허위사실을 표명 여부에 대해 그 표현이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일반 선거인의 입장에서는 해당 발언이 ‘김문기와 함께 간 해외 출장 기간에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해외 출장 중 김문기와 함께 골프를 쳤고 따라서 해당 발언은 허위”라며 “고의도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백현동 관련 발언에 대해 “피고인의 백현동 부지 용도지역 변경은 이 사건 의무조항에 근거한 국토부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검토해 변경한 것”이라며 허위 발언으로 판단하고 고의성 또한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 전 처장 관련 공소사실 중 ‘성남시장 재직 시 김문기의 존재를 몰랐다’, ‘도지사가 되고, 공직선거법위반으로 기소된 다음에 김문기를 알게 됐다’고 발언한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포괄일죄 관계에 있는 골프 관련 발언을 유죄로 인정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해 따로 무죄를 선고하진 않았다.
내년 상고심 선고 예상, 1심 확정 시 대선 출마 불가
민주당은 이 대표가 기소된 4개 사건(공직선거법 위반·위증교사·대장동 백현동 성남FC·쌍방울 대북송금) 가운데 혐의가 비교적 간단한 공직선거법 위반 1심에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봐왔다.
설령 유죄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벌금형 정도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오자 민주당은 사법부를 공격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판결 이후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김용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사법 개혁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 자신도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며 “국민 여러분도 상식과 정의에 입각해 판단해보면 충분히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정치 생명을 위협하는 사법리스크가 더 확산하면 대안 모색 움직임이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왔다. 항소심 판결은 1심 판결 이후 3개월 내에 내리도록 하는 강행 규정이 있어 26개월을 끌었던 1심보다 빠르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내년에는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에서 1심대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2027년 대선은 물론 향후 10년간 선거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벌금형으로 낮춰져도 100만원 이상이 나오면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위증교사’ 사건 1심은 무죄 판결…왜?
공직선거법 위반보다 형량이 무거운 위증교사 사건에서 재판부가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고조된 사법리스크가 다소 가라앉았다는 평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3부(김동현 부장판사)는 11월 25일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통화 내용, 표현의 의미 및 문맥 등을 고려할 때 이 대표의 행위를 위증교사로 보기 어렵다”며 “교사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증 혐의를 받은 김진성 씨의 유죄는 인정하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 대표가 구속되기 전 김병량 전 시장과 KBS 사이에서 협의가 있었다’고 하는 등 김진성 씨의 증언 상당수가 위증으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김진성 씨는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까지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증언임을 인정했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진성 씨에게 2018년 12월 22일과 24일 전화를 걸어 변론요지서를 전달한 행위가 위증을 교사한 행위는 아니라고 봤다. 교사란 범죄 의사가 없는 타인에게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행위인데 김진성 씨의 위증과 이 대표의 요구는 별개란 의미다.
법원은 통화 내용과 문맥을 고려했을 때 이 대표가 단순히 증언을 요구한 것이지 위증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필요로 하는 증언이 무엇이고, 김진성 씨가 기억하거나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는 방식의 통상적인 증언 요청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증언을 언급했다고 해서 위증을 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변론요지서를 제공한 것도 당시 재판 중인 이 대표의 상황을 고려하면 부적절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누명을 썼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한 이 대표가 김진성 씨에게 자신의 의문을 설명하고 변론요지서를 제공해 확인하게 만드는 게 상식에 반하거나 방어권 정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1심 법원의 판단은 2023년 9월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가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 것과 대비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위증의 정범(범죄를 실행함)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교사자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2심에서 판단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돋보기]
앞으로 남은 1심 판결만 3건
이 대표가 앞으로 받아야 할 1심 재판은 3건이다. 수원지검이 최근 이 대표를 기소하면서 그가 받아야 할 재판은 총 5건으로 늘었다.
수원지검은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에 관용차를 공무와 무관하게 사용하고 법인카드를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등 1억653만원을 배임한 것으로 보고 그를 기소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개발특혜 의혹 △위례 개발 비리 의혹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 여러 사건이 병합돼 있다. 수원지법에선 대북송금 사건을 심리 중이다.
경기도가 북한 측에 지급하기로 약속했던 스마트팜 사업 지원비 500만 달러를 비롯해 이 대표의 방북 비용 300만 달러를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북한 인사에게 대납했다는 의혹이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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