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안세영 없는 안세영 잔치…모두 “죄송”

김종석 2024. 12.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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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이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딴 뒤 대표팀 운영 등에 날 선 비판 발언을 한 지도 몇 달 흘렀다. 새해에는 안세영이 코트 안팎에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세영 인스타그램.

한껏 웃고 떠들어도 시원찮을 잔치 분위기는 회색빛 겨울 하늘만큼이나 무겁고 썰렁했습니다. 세계를 제패한 제자를 대신해 상을 받은 스승의 표정도 어두웠습니다.

● 맥 빠진 파리올림픽 포상식

11월 30일 경남 밀양의 아리나호텔에서 열린 대한배드민턴협회(회장 김택규)가 주최한 2024 파리올림픽 포상식. 이날 최고 주인공이 돼야 했을 안세영(22·삼성생명)은 예상대로 행사에 불참했습니다.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안세영은 개인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아 삼성생명 길영아 감독이 자진사퇴 요구에 시달리고 있는 김택규 회장으로부터 포상금 1억 원을 대신 받았습니다.

길영아 감독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에서 김동문과 금메달을 합작한 셔틀콕 스타 출신이지요. 은퇴 후 교편을 잡은 김동문 원광대 교수는 내년 1월 열리는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혔습니다.


<사진> 파리올림픽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과 혼합복식 은메달리스트 김원호. 두 선수 모두 삼성생명 소속이다. 삼성생명 인스타그램.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은메달을 딴 김원호(삼성생명)와 정나은(화순군청)은 각각 5000만 원씩 상금을 받았습니다. 길영아 감독의 아들인 김원호 역시 올림픽 메달에 따른 병역 특례 혜택으로 군사훈련을 받느라 이날 무대에는 오를 수 없었습니다. 정나은만이 직접 포상금을 수령했습니다. 영광의 주역들이 빠지면서 맥 빠진 행사가 됐습니다.

김학균 대표팀 감독과 코칭스태프, 나머지 대표팀 선수들이 자리를 채웠지만 바늘방석에라도 앉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안세영이 대표팀 운영과 훈련 방식의 문제에 대해 날 선 직격탄을 날리면서 대표팀 사기도 뚝 떨어졌습니다.

더구나 김택규 회장이 28일 경찰 강제수사를 받았고 배드민턴협회 사무실 등이 압수수색을 받아 더욱 뒤숭숭한 상황이 됐죠. 경찰은 배드민턴협회가 보조금법을 위반해 셔틀콕 등 후원 물품을 부당하게 배부했다는 문체부 사무 검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김 회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포상식에 가지 않은 안세영은 비슷한 시각 용인체육관을 찾아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과 BNK  썸의 경기를 직관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이날 포상식을 지켜본 배드민턴인들이나 팬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커졌습니다. 한국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위업을 이룬 안세영이 대회 출전을 제외하면 외부 활동을 꺼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칩거를 거듭하는 안세영이 모처럼 공개석상에 나서기라도 하면 22세의 어린 나이로서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주위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져 부담스러워 보입니다.


<사진> 경기 후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안세영. 안세영 인스타그램.

● 아쉬운 타이밍...우울한 연말 

그를 아끼는 많은 지인은 그래서 안세영의 폭로 발언의 타이밍을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파리올림픽 금메달 직후가 아니라 귀국 후 적절한 시기와 장소를 택했더라며 명예와 실리의 두 토끼를 모두 잡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죠.

안세영은 최근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750 중국 마스터스 단식에서 우승하며 파리올림픽 이후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중국 대회를 마치고 귀국하는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는 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지만, 안세영은 “죄송합니다”라며 말을 아꼈습니다. 오히려 세인들의 관심은 큼지막하게 ‘NIKE’라고 적힌 안세영의 상의에 집중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대표팀 선수들과 다른 브랜드의 옷을 홀로 착용했기 때문이죠.

안세영은 1955년 이래 제정된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의 체육상 후보에서도 자신을 빼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배드민턴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대한체육회가 회원 가맹단체에 수상 후보를 올려달라는 공문을 전달했는데 안세영은 그 대상에 올리지 말아달라 했다는 것이죠. 본인이 요구한 대표팀 훈련 시스템, 스폰서십 등 산적한 현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상도 그에게는 속 빈 강정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안세영의 소속팀 삼성생명(사장 홍원학)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1억 원의 포상금을 책정해 뒀다고 합니다. 이 역시 이미 어떤 행사도 없이 조용히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처럼 부질없는 표현도 없겠지만 안세영이 파리올림픽 금메달 직후 격정 토로 없이 금의환향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신문 방송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고, 각종 행사 참가,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손님으로 등장했을 겁니다. 밀려드는 CF 요청에 일정 잡느라 바빴겠지요. 마치 파리올림픽 이후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국민 삐약이’ 신유빈(20·대한항공)처럼요. 


<사진> 파리올림픽 이후 우유, 치킨, 햄 등 다양한 식음료 광고 모델로 등장하고 있는 신유빈. 업체 제공

● 광고 모델 상한가 누리는 삐약이 신유빈

신유빈은 식품 광고업계의 ‘블루칩’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빙그레(대표 전창원) 바나나 우유와 bhc 치킨 모델로 발탁된 데 이어 동원 F&B의 냉장햄 브랜드 ‘그릴리’ 모델로도 나서고 있습니다. 동원 F&B는 신유빈이 파리 올림픽에서 보여준 열정적인 모습이 진한 육즙과 불향을 추구하는 그릴리의 브랜드 정체성과 부합했다며 선정 배경을 설명하더군요. 

열정 하면 단연 안세영 아니었을까요.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삐약이 신유빈의 간식타임'이라는 이름이 붙은 주먹밥 2종과 소용량 반찬인 컵델리 2종의 협업 상품도 출시했습니다. 업계에선 신유빈이 현재까지 우유와 치킨 메뉴, 햄 등 3개의 광고를 각각 최소 1억 원 이상에 계약한 것으로 파악하더군요. 

신유빈을 보면서 탁구 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꿈나무들도 늘고 있습니다. 스무 살에 이미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된 것이죠. 안세영 역시 과거 1996 애틀랜타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방수현이 그랬듯 ‘제2의 안세영’을 꿈꾸는 어린 선수층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안세영 열성 팬이 생겼다고 하네요.

한국 배드민턴은 국제무대 강세 종목인 복식에 치중됐으나 안세영을 계기로 단식에 대한 도전 의식도 커지게 됐습니다. 안세영은 또 끈질긴 수비, 화끈한 세리머니 등으로 생활 스포츠의 대명사였던 배드민턴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로 엘리트 스포츠의 국제경쟁력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신유빈, 안세영처럼 조기 발굴과 체계적인 투자를 통해 월드 클래스로 성장한 사례는 훌륭한 교과서가 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사진> 안세영의 역동적인 플레이 모습. BWF 홈페이지 캡처.

●20대 롤모델...엘리트 스포츠 육성 성공 사례

물론 안세영과 신유빈을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 겁니다. 운동선수가 ‘돈’만을 위해 뛰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정당한 보상의 중요성은 스포츠 현장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안세영이 던진 메시지는 이미 배드민턴을 넘어 한국 스포츠 전반에 걸쳐 관행이라는 미명으로 자행되던 악습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배드민턴협회의 공식 스폰서인 요넥스코리아도 적극적으로 선수들의 기량과 직결되는 라켓과 신발 선택의 자유를 주기 위해 일본 본사와 협의를 마쳤다고 합니다. 

안세영이 쏘아 올린 묵직한 돌직구가 소귀의 경 읽기가 돼 선 안될 일입니다. 차기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 선거도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저 마음 편히 즐겁게 운동하고 싶을 뿐이라는 안세영의 소박한 소망이 새해에는 이뤄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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