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플라스틱 협약 D-1... 3대 환경단체 "약한 협정은 더 큰 재앙 부를 것"
"약한 협정은 합의 무산보다 나빠" 한목소리
WWF "생산 규제 않으면 처리비용 고공행진"
"개최국 한국에 큰 권한 있어, 리더십 보여야"
"화장실 수도꼭지가 열려서 물이 흘러넘치는 상황에서, 대걸레로 바닥을 닦기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먹는 물고기에도, 우리 아기들의 몸속에도, 우리가 마시는 공기 속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인 생산을 규제하지 않고서는, 절대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할 수 없다."(30일, 리코 유리피두 지구의벗 남아프리카공화국 활동가)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30일로 공식 폐막을 하루 남겨두고 있다. 한국일보는 세계 3대 환경단체로 불리는 그린피스, 세계자연기금(WWF), 지구의벗 관계자를 부산에서 각각 만나 협상 진행 상황과 향후 전망에 대해 물었다.
'유엔 플라스틱 협약'은 전 지구에 만연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해 지난 2년여간 170여 개국에서 함께 논의해 온 국제 협약이다. 1950년대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150만 톤 수준이었지만, 2021년 기준 약 3억 9,000만 톤으로 70년 사이 260배 폭증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생산 추세가 유지된다면, 오는 2050년 생산량은 지금의 두세 배가 될 전망이다.
현재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절반가량은 일회용품이고, 재활용되는 것은 전체 9%에 불과하다. 그 결과 1분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폐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며, 환경오염과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미세플라스틱은 인간의 뇌, 모유, 혈액, 자궁 등 신체 곳곳에서 발견되는 실정이다. 이에 과학자들과 환경단체들, 100여 개국은 '플라스틱 생산 규제'가 오염 종식의 핵심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만난 NGO 관계자들은 공통된 목소리로 "부산에서 나쁜 협약을 만들 바에야 협약을 안 만드는 게 낫다(No deal is better than a bad deal)"고 강조했다. '생산 규제 없는 협약'은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식 폐막일을 하루 앞둔 지금, 한국 정부를 비롯한 각국 정부에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과의 일문일답을 주제별로 정리했다.
"대다수 국가는 생산 감축 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협상 진행 상황은 어떻게 보나.
△에이릭 린데뷔에르그 WWF 글로벌 플라스틱 정책 책임자= (협약 성사 확률이) 50 대 50인 것 같다. 긍정적인 건 지난 며칠 간 협상 과정에서 대다수 국가가 생산과 공급 문제를 포함한 강력한 협약을 원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폐막일인 일요일에 제시될 초안은 이 야심찬 국가들이 지지할 만큼 강력해야 할 것이다.
※협상에 참여 중인 177개 국가 중 28일 기준 100여 개 국가가 플라스틱 생산 감축 조치를 지지하는 결의안에 동참했다. 다만 이 결의안에서 한국 정부는 빠졌다.
-29일 늦은 오후에 INC 의장이 내놓은 협약 초안(4차 논페이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특히 생산 규제(6조)와 관련해 의장은 두 가지 선택지를 회원국들에게 제안했다. 하나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원재료)를 규제 및 보고하는 방안을 향후 정하자는 것이지만, 다른 선택지는 '조항 없음' 즉 폴리머 규제는 협약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레이엄 포브스 그린피스 글로벌 플라스틱 캠페인 리더= 이 초안은 효과적인 플라스틱 대응을 위한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의장은 단지 '쉬운 성공'을 얻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강한 협정을 원하는 국가들은 나서서 초안을 거부하고, 생산 감축을 포함하여 전주기 플라스틱 조치를 요구해야 하며, 산업의 단기적 이익 대신 사람들을 우선시해야 한다.
△샘 코사르 지구의벗 인터내셔널 활동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는 (플라스틱 원료인) 석유 생산 기업들을 위한 매우 약한 협정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절충안이다. 하지만 후자 역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높은 목표를 가진 국가들이 나서야 하며, 한국 정부도 회의 주최국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
"플라스틱 지금처럼 생산하면 기후재앙"
-산유국 중심으로 '폐기물 관리'에 방점을 둔 해법을 강조하는데, '생산 감축'이 협약에 꼭 포함돼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린데뷔에르그= 생산 감축 없이는 폐기물 처리 비용이 너무 비싸진다. 저품질에 값싼 플라스틱이 많아질수록 재활용할 유인도 낮아지게 된다. 예를 들면 플라스틱을 비롯해 여러 소재로 겹겹이 이뤄진 포장재는 재활용이 어렵고, 플라스틱 식기류나 빨대는 너무 값싸서 재활용을 할 유인이 떨어진다. 디자인 규제가 담긴 협약은 플라스틱 생산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국제 규제가 통일되고 순환경제 시스템이 마련되면, 재활용 소재를 얻는 게 더 쉬워지고 고품질 플라스틱을 만들기도 쉬워질 것이다. 이번 협약의 협상 전선은 플라스틱 생산국과 소비국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석유 생산국과 나머지 국가들 사이에 놓여 있다고 본다.
△포브스= 전체 플라스틱 중 재활용 비중은 10%도 안 된다. 현 수준의 생산을 계속 허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구를 영원히 오염시키겠다는 뜻이고, (화석연료 사용으로) 절대적 기후재앙으로 이어질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킨다는 의미다.
"지구와 미래 세대 지킬 협정 만들어야"
-하지만 산유국 중심으로 '생산 감축' '유해물질 규제' 등이 협약에 포함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데, 만약 필요하다면 만장일치(컨센서스) 방식이 아닌 다수결 투표제로 협약을 정해야 할까.
△포브스= 컨센서스 방식은 지난 2년 동안 우리를 실망시켰다. 대다수 국가는 효과적인 협정을 만들려는 의지를 보였고, 우리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에 진지한 자세를 가진 나라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일부 국가들이 빠진다면 아쉽겠지만 어쩔 수 없다. 소수의 국가들이 세계 나머지 국가들을 '인질' 삼아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나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린데뷔에르그= 한국 정부에게 이번 회의는 세계적인 '게임 체인저'가 될 협약을 만들 기회이다. 그렇게 되려면 높은 목표를 원하는 국가들이 동의할 수 있는, 생산 감축 등 필수 요소가 담긴 야심찬 협약 초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포브스= 우리가 만일 플라스틱 위기를 '해결하는 척'하는 약한 협정을 부산에서 성안시킬 경우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인류의 건강을 훼손하고, 생물다양성을 희생하는 더 심각한 재앙이 될 것이다. 회의 개최국으로서 한국 정부는 야심찬 국가들을 모아서 미래 세대와 우리 아이들, 지구를 지킬 수 있는 협정을 만들어야 한다.
△코사르= 회의 개최국에는 큰 권한이 있다. 한국 정부과 시민사회가 이런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부산에서 강력한 협약이 성안돼도 그게 끝이 아니다. 이후 각국에서 이어질 비준 절차에서도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해 끝까지 목소리 내는 게 중요하다.
부산=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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