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타자를 살피는 존재, 그대 이름은 ‘소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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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기억에 남는 취재원이 있을 거다.
나에게는 '소농'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렇다.
일본 고베시의 농민 나카노 신고상도 나에게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남겨준 사람 중 하나다.
나이도 직업도 다양하지만 생태적인 방식으로 농사지으면서 삶의 전환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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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농민 신고상과 6년 만에 재회… ‘자연에 친절한 삶’ 변함없는 공명
인터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기억에 남는 취재원이 있을 거다. 나에게는 ‘소농’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렇다. 소농은 문자 그대로 규모의 개념이라기보다는 방식에 가깝다. 기계보다는 몸을 더 쓰려 하고, 모종을 사기보다는 씨앗을 뿌려 직접 기른다. 퇴비나 방제액을 직접 만들어 자급하고, 한 공간에 작물을 최대한 다양하고 밀도 있게 배치해 식물과의 관계성을 이용하기도 한다.
소농들의 이러한 농사는 그들의 삶과 똑 닮아 있다. 주변을 돌보고 일상에서도 자원이나 물건을 마구 쓰거나 버리지 않는다. 이들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는 일은 나를 다시 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의 일상과 언어를 되짚으며 끊임없이 나에게 묻고 답한다. 나는 일상에서 얼마나 다른 존재들을 살피고 배려하며 지내왔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일본 고베시의 농민 나카노 신고상도 나에게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남겨준 사람 중 하나다. 2018년 3월 취재로 만난 그는 상업 사진가로 활동하다가 고베 대지진(1995년 1월)을 겪고 며칠 동안 전기와 음식으로부터 고립되는 경험을 하며 농민이 되기로 결심한 이다. 신고상은 인간의 생존과 관련한 근원적인 일을 고민하다 ‘자연에 친절한 삶’을 살고 싶어 농사 중에서도 사람의 개입이 가장 적은 자연농을 선택한 뒤 고베의 농촌으로 이주해 올해로 20년 가까이 농사짓고 있다. 마침 서리가 내려 농한기가 시작된데다 남편과 함께 휴가를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취재 이후로도 온라인으로 꾸준히 안부를 나눠온 신고상의 밭을 다시 찾아가고 싶었다. 그는 흔쾌히 자신의 밭으로 우리를 다시 초대했다.
그렇게 2024년 11월21일, 우리는 6년 만에 상봉했다. 손님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신고상이 농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직업 교육을 해주는 날이라 20년 전의 신고상처럼 농민이 되기로 결심하고 농사를 배우는 이들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나이도 직업도 다양하지만 생태적인 방식으로 농사지으면서 삶의 전환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의 수업 주제는 채종과 양파 심기. 일본에 도착하기 전 이미 서리가 내려 가지과 작물이 모두 끝난 우리 밭과는 달리 11월 말의 고베는 한창 벼를 수확하고 말리는 늦가을이었다. 금빛 벼와 푸른 풀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농민 훈련생들과 함께 고추와 가지의 채종할 열매를 표시하고, 토마토를 갈무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흔히 자연농은 퇴비를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파밭에 풀과 생쓰레기(채소나 달걀 껍데기 등)를 조금 더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덮어주는 신고상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비법을 흔쾌히 내어주는 베테랑 농민의 마음과 낯선 방문객에게도 다정한 사람들의 온기가 더해져 함께 무르익어가는 가을날이었다.
다시 만난 신고상은 정말 그대로였다. 전처럼 상냥했고, 특히 예전에 만났을 때 썼던 모자가 이제는 많이 닳아 조금 구멍이 났지만 그걸 그대로 쓰고 나타난 것도 참 반가웠다. 오래전 자연에 친절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한 농민의 변함없는 삶과 태도는 마치 거울처럼 다시 나의 지금을 비춰내고 있었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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