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감독)가 보는 앞에서 우승을 결정하라…선수들이 만들어준 2025년 팀 슬로건, 이런 행복한 감독이 또 있을까[민창기의 일본야구]
"우리 감독님은 좋은 분이다. 감독님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다. 그러려면 팀 성적이 좋아야 한다. 내가 좀 더 야구를 잘해야 한다."
몇 년 전 지방 구단의 주축 선수가 한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비로 경기가 취소돼 더그아웃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두고 마주했을 때 일이다. 큰돈을 받고 FA 계약을 한 중견선수였다. 인터뷰 내용이 알려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감독을 의식한 발언일 수도 있다. 그래도 지도자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없다면 하기 어려운 말이다. 당사자인 감독에게 인터뷰 얘기를 했더니 말없이 웃으며 넘어갔다.
프로 세계에서 누군가 자신을 위해 더 잘 하겠다는 말을 듣어본 이가 몇 명이나 될까.
신조 쓰요시 감독(52)이 29일 내년 시즌 니혼햄 파이터스의 팀 슬로건(캐치프레이즈)을 발표했다. 연고지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열린 구단 송년회 자리에서 공개했다. 그런데 슬로건 내용이 매우 특이하다. '보스(BOSS)가 보는 앞에서 우승을 결정하라'이다. 보스는 신조 감독의 애칭 내지 별명이다. 2021년 말 프로팀 코치 경력 없이 사령탑에 올랐을 때, '빅 보스'로 불러달라고 했다. 니혼햄에서 '보스'는 신조 감독이다.
10월 24일 신인 드래프트 회의 이후 한 달여 만에 언론과 만났다. 그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 패한 뒤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11월 초 진행된 마무리 훈련도 코치진에 맡겼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팀들은 시즌에 앞서 슬로건을 공개한다. 팀의 방향성, 현 상황을 응축된 단어, 문장으로 발산한다. 올 시즌 지바 롯데 마린즈는 '자신을 넘어서라',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새바람',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는 '요코하마 진화',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VIVA'를 내세웠다.
지바 롯데는 퍼시픽리그 3위로 가을야구를 했다. 요미우리는 아베 신노스케 감독이 부임한 첫해 4년 만에 센트럴리그 1위를 했다. 센트럴리그 3위로 포스트 시즌을 시작한 요코하마는 재팬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하극상 시리즈를 연출했다. 소프트뱅크는 올 시즌 양 리그 12개팀 중 최고 승률을 기록했다.
TO GREATNESS'를 썼다. 우승 내지, 도약의 의지를 꾹꾹 눌러 담았다.
2024년 니혼햄은 팬 공모를 거쳐 팀 슬로건을 정했다. 8608건이 몰렸다. 이 중에서 '대항해(大航海'가 뽑혔다. 니혼햄은 2022~2023년,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2년 연속 퍼시픽리그 꼴찌를 했다. 니혼햄은 지난해 최신형 개폐식 돔구장 에스콘필드로 홈구장을 옮겼다. 새 구장에서 폼 나게 성적을 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구장 첫해부터 최하위를 했다. 올해 슬로건에 2년간 준비한 걸 마음껏 펼치자는 메시지를 넣었다.
신조 감독은 "내년 시즌 슬로건을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구단 프런트 분들이 미팅을 해 슬로건을 만들어 주셨다"고 설명했다. 감독이 의견을 낸 게 아니라 구단이 만든 캐치프레이즈다. 아무리 엔터테이너 기질이 남다른 '외계인' 신조 감독이라고 해도 파격을 넘어 파격적인 슬로건이다.
그는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무 나가는 것 같아 걱정이 됐다"라고 했다. 그런데 구단 설명을 듣고 마음이 바뀌었다. 구단이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 차원에서 결정한 게 아니었다. "보스 앞에서 내가 잘해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선수들의 말을 반영한 것이다. 한 선수는 "우승을 해 보스를 헹가래 쳐주고 싶다"고 했다.
2년 연속 꼴찌를 하고 2024년, 1년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2024년에 성적을 못 내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라고 공표했다.
올 시즌 젊은 선수들과 함께 반등에 성공했다. 퍼시픽리그 2위로 올라갔다. 3위 지바 롯데를 누르고 클라이맥스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그러나 재팬시리즈까지 이르지 못했다. 양 리그 최고 승률팀 소프트뱅크에 3연패로 무너졌다. 신조 감독은 "소프트뱅크가 너무 강했다"라고 했다.
구단은 가을야구에 앞서 재계약을 제안했다. 그런데 신조 감독이 구단에 확답을 안 줬다. 그가 미련 없이 떠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선수들이 오히려 퇴임을 걱정했다. 올 시즌 신나게 야구를 해 성적을 올린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내년 시즌에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가 충만했다.
만약 니혼햄이 소프트뱅크를 이기고 재팬시리즈에 진출했다면, 재팬시리즈 결과와 상관없이 지휘봉을 내려놓았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소프트뱅크에 패한 게 연임의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다. 지도자로서 자질을 확인한 셈이다.
그는 한신 타이거즈에서 선수로 뛰다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뉴욕 메츠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3년을 뛰었다. 일본으로 복귀하면서 옛 소속팀이 아닌 니혼햄을 선택했다. 니혼햄이 도쿄를 떠나 홋카이도로 이전한 2004년 일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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