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는 왜 ‘올드보이’ 수장에 올인했나 [김민지의 칩만사!]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삼성전자의 2025년도 정기 사장단 및 임원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폭풍 같은 한주가 지나갔습니다. 이번 인사로 내년 반도체 사업을 이끌어갈 리더들이 윤곽을 드냈습니다. 물론, 실적 부진에 따른 칼바람도 피할 수 없었죠. 누군가는 퇴임을, 누군가는 새로운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
지난 5월 반도체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무려 4개의 직책을 맡게 됐습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메모리사업부장을 동시에 맡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선 평가가 엇갈립니다. 삼성이 이렇게 ‘올인’ 전략을 펼친 이유는 무엇일까요? 새로운 리더들에겐 내년 어떤 과제들이 주어졌을까요? 오늘 칩만사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이번 정기 인사로 전영현 부회장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DS부문장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원장 등 총 4가지 직책을 맡게 됐습니다. 사실상 반도체 수장 한 사람에게 권한과 책임, 인력을 몰아주는 전례없는 방식의 인사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그는 이제 고대역폭메모리(HBM)으로 자존심을 구긴 메모리사업의 회복과 차세대 기술 개발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전 부회장은 삼성 내부에서 ‘기술통’으로 불립니다. LG반도체 출신으로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입사한 이후 지난 2014년 말~2017년 초 메모리사업부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이후 삼성SDI 대표이사로 갔다가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미래기획단장을 1년 동안 역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구원투수’로 DS부문에 깜짝 복귀했습니다.
삼성이 특정 단위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 체제로 두는 건 사실상 처음입니다. 그만큼 메모리사업 회복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대표가 직접 사업 관련 현안을 챙기고 보고를 받으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총괄하도록 하겠단 거죠. 다소 느슨해진 조직 분위기를 다잡는 효과도 있을 겁니다. 여기에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의 미래 기술 개발까지 아우르며 차세대 연구와 현업 비즈니스 사이의 간격을 줄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올인 전략의 장점은 하나의 구심점을 기반으로 한 일관성 있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는 취임 후 크고 작은 조직개편을 진행하며 근원적 기술력 강화를 주문해왔습니다. 하루빨리 5세대 HBM3E의 안정적인 엔비디아 대량 납품을 마무리 짓고 차세대 HBM4 경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AI 가속기 수요 확대에 따라 HBM 신제품 개발 및 출시 속도도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차세대 HBM4에서 시장에서는 지금까지 제기된 성능 및 수율 이슈를 불식시키고 기술력 회복을 증명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올드보이’로 불리는 전 부회장에 올인한 전략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파격적인 ‘새 인물’이 보이지 않다는 겁니다. 인사 전 업계에서는 삼성이 반도체 부문의 3개 사업부장을 전부 교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박용인 시스템LSI 사업부장은 유임됐고, 파운드리사업부만 수장으로 한진만 미주총괄 부사장이 승진 및 선임됐습니다. 새로운 리더를 선임하지 않고 기존 부문장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식을 택한 것도 반도체 사업 쇄신을 위한 업계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고객사 수주 부족과 첨단 공정 기술 미흡이라는 두가지 난관에 부딪힌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사업부에는 사장급을 2명 배치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쳤습니다.
파운드리사업부장으로 선임된 한진만 사장은 최우선 과제인 고객사 확대를 책임집니다. 그는 지금까지 삼성반도체미주총괄(DSA)로서 AI 반도체 시장의 최전선인 미국에서 사업을 지휘해왔습니다. D램 설계팀과 SSD 개발실장을 거쳐 전문성을 갖췄을 뿐 아니라 풍부한 글로벌 고객 대응 경험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엔비디아, 구글, AMD, 마이크로소프트 등 여러 글로벌 빅테크로부터 수주를 늘리는데 주력할 방침입니다.
기술 경쟁력 제고는 이번에 파운드리사업부에 신설된 사장급 CTO(최고기술책임자)가 맡습니다. 남석우 글로벌제조&인프라총괄 제조&기술담당 사장이 선임됐는데, 그는 공정개발 전문가입니다. 3나노 이하 최선단 공정의 수율을 높이고 성능을 개선하는데 것이 시급합니다.
투트랙 전략으로 파운드리 사업의 정상화를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파운드리는 이재용 회장이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핵심 사업입니다. 앞서 그는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려는 열망이 크다”며 “분사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업계 1위인 대만 TSMC와 시장점유율 격차가 50%포인트 이상 벌어진 상황에서, 내년에는 기술 경쟁력 제고를 통한 고객사 확대에 총력을 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인사에서는 그간의 실적 부진에 따른 인사 ‘칼바람’도 단행됐습니다. 올해 전체 DS부문에서 100여명의 임원이 퇴임할 것으로 전해졌고, 승진 임원 수도 51명으로 2년 연속 감소했습니다. HBM을 포함한 차세대 D램에서 불거진 성능 이슈와 파운드리 수율 저하 등과 관련한 문책성 인사가 이뤄졌다는 후문이 나옵니다.
전 부회장은 앞서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이 약화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부서 간 소통 부족과 안일해진 조직문화를 꼽았습니다. 그는 “부서 간 소통의 벽이 생기고 리더 간·리더와 구성원 간 공동의 목표를 위한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현재를 모면하기 위해 문제를 숨기거나 회피하고 희망치와 의지만 반영된 비현실적 계획을 보고하는 문화가 퍼져 문제를 더욱 키웠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관리자를 포함한 임원수가 지나치게 늘면서 소위 보고를 위한 보고, 도전 보다는 안정에 치우친 의사결정이 만연해졌다는 거죠.
임원 축소는 조직 효율성 향상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퇴임 임원들이 보유한 기술력과 지식이 자칫 다른 경쟁사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중국 메모리 회사가 대표적입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과 한국의 메모리 격차가 1~2년으로 대폭 줄어들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보급형 DDR4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절반 가격으로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고, 첨단 DDR5 제품 양산에도 성공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에 힘입어 중국 업체들은 생산량도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2020년 월 4만장에 불과했던 웨이퍼 생산 장수는 올 들어 20만장으로 무려 5배 확대됐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CXMT의 D램 생산량이 올해 처음 전 세계 점유율 1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2026년 미국 마이크론을 제치고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3위 자리를 꿰찰 것으로 내다봐 충격을 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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