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농협 장한섭 유영동. 30년 전 AG 결승 장소 히로시마 은퇴 투어
소프트테니스(정구)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때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소프트테니스의 종주국인 일본이 자국에 유리한 성적을 위해 포함을 시킨거죠.
당시 한국 대표팀은 남자 개인 복식 결승에 간판스타 장한섭-이석우 조와 이명구-유영동 조가 나란히 올라 금메달을 다퉜습니다. 누가 이겨도 좋을 집안싸움에서 애초 예상은 실력과 경험에서 한 수 위로 평가된 세계 랭킹 1위 장한섭-이석우 조의 승리가 점쳐졌습니다. 이명구와 유영동은 손발을 맞춘지 1년밖에 안 된 신예였습니다.
하지만 이명구-유영동 조가 5-2로 승리하는 이변을 일으킨 뒤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금, 은메달을 휩쓴 한국 소프트테니스의 빛나는 전통은 그후 후배들에게 전해져 코트 강국의 명성을 만방에 떨치는 실마리가 됐습니다.
<사진>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소프트테니스(정구) 남자복식 결승에서 맞붙은 장한섭 NH농협은행 단장과 유영동 NH농협은행 감독. 올 연말 퇴임을 앞둔 장 단장이 유 감독 등과 함께 히로시마를 방문해 뜻깊은 추억의 시간을 가졌다. 장한섭 단장 제공.
30년 전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한 장한섭 NH농협은행(행장 이석용) 스포츠단 단장(57)과 유영동 NH농협은행 소프트테니스부 감독(51)이 28일부터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일본 히로시마를 찾았습니다. 올 연말 농협은행을 퇴직하는 장 단장을 위한 은퇴 투어였습니다. 일본 전문가인 임교성 수원시청(시장 이재준) 소프트테니스 감독도 동행했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때 장한섭 단장은 27세의 광주 동구청 소속 선수였습니다. 유영동 감독은 순천대 3학년 재학 중이었던 스무 살 유망주였습니다. 장 단장과 유 감독 모두 뛰어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한 파워 플레이가 일품이었습니다.
<사진> 현역 시절 장한섭 단장의 플레이 모습. 히로시마 소프트테니스 관계자들은 장 단장의 선수 때 사진이 담긴 액자를 선물했다. 유영동 감독 제공.
전남 장흥이 고향으로 전남대 출신인 장 단장은 은퇴 후 농협은행에서만 코치, 감독, 단장 등으로 30년 넘게 근속했다. 지도자로 변신해서 장 단장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금메달 7개 싹쓸이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회장 정인선)에선 전무이사로 안팎살림을 책임졌지요. 장 단장은 외유내강 스타일로 선수들을 대할 때는 마치 가족처럼 살갑게 챙겨줘 덕장으로 유명합니다.
유영동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만 금메달 5개를 따내는 눈부신 성적을 거둔 뒤 농협은행에 합류해 장한섭 감독의 뒤를 착실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유 감독 역시 대표팀 감독을 맡아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문혜경의 여자 단식 금메달을 이끌었습니다. 유 감독의 둘째 아들 유기상은 용산고와 연세대 농구부를 거쳐 프로농구 LG에서 활약하며 국가대표로도 선발됐습니다.
<사진> 9월 세계소프트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수집한 NH농협은행 소프트테니스 선수단. 김종석 촬영.
장한섭 단장과 유영동 감독은 NH농협은행이 국내 소프트테니스의 정상을 질주하는 데 손을 맞잡았습니다. 9월 안성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이민선 등 NH농협은행 선수들이 금메달 4개를 합작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죠.
이번 일본 방문에 히로시마 소프트테니스협회 관계자들은 코트를 떠나는 장한섭 단장을 위해 아시안게임 당시 플레이 장면이 담긴 기념사진 액자 등을 전달하며 석별의 정을 나눴습니다. 이 기념품에는 장한섭 단장의 역동적인 포핸드 스윙 모습이 생생하게 나와 있습니다.
어느덧 60줄을 바라보는 장한섭 단장은 “30년 동안 인연을 맺은 히로시마의 운동 선배, 후배들이 이렇게 초청을 해주고 과분한 칙사 대접까지 받다 보니 고마울 따름이다. 세월이 참 빨리 지나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유영동 감독은 “1994년에 장한섭 단장님은 정말 멋지게 운동하셔서 모든 선수가 부러워하는 대상이었다. 이렇게 은퇴하신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히로시마 정구인들도 모두 장 단장님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한마음으로 은퇴를 축하해줬다”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유 감독은 또 “장한섭 단장님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라고 소감을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히로시마 멤버였던 이명구 씨는 자신이 선수로 뛰던 이천시청에서 감독을 지냈습니다. 장한섭 감독의 파트너였던 이석우 씨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정구인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사진> 제15회 세계선수권에서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여자부 모든 종목 석권을 이룬 장한섭 단장. 당시 선수였던 농협은행 소속 김애경, 주옥, 정인지. 농협 제공
장한섭 단장과 유영동 감독은 “소프트테니스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 인생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히로시마가 제2의 고향과도 같이 친숙하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두 사람은 한국 소프트테니스의 앞날에 대한 걱정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한국 소프트테니스의 실력은 일본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열세를 보여서입니다. 일본에서 소프트테니스 인구는 60만 명에 이를 정도로 관심이 높지만, 한국에선 비인기종목으로 분류됩니다. 히로시마현에만 고교 소프트테니스팀이 100개 넘게 있다고 하네요. 일본 실업팀은 남녀를 합해 100개 넘지만, 한국은 20개 정도일 뿐입니다. 지난달 세계 주니어 소프트테니스 선수권에서 한국은 노메달에 그쳤지만 일본은 4개의 금메달을 땄습니다.
장한섭 단장과 유영동 감독은 “일본 소프트테니스의 저변은 워낙 넓다. 학교 체육도 활성화돼 있다 보니 유망주들이 계속 나온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다양한 기술을 지닌 일본과 더욱 활발한 교류를 해야 한국 소프트테니스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사진> 장한섭 NH농협은행 단장과 유영동 감독. 유영동 감독 제공.
유영동 감독은 떠나는 장한섭 단장을 위한 특별한 행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12월 7일 소프트테니스부 숙소와 연습 코트가 있는 농협대에서 퇴임 기념식을 개최할 계획입니다. 이 자리에는 60년 넘는 역사를 지닌 NH농협은행 정구부 OB, 장 단장의 제자, 소프트테니스협회 관계자, 지인 등 150명 정도 참석할 것으로 보입니다.
30년 넘은 인연을 지닌 장한섭 단장과 유영동 감독의 남다른 동행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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