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막힌 임대차시장…월세 뛰고 전세 쌓여

황정일 2024. 11. 30.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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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택가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매물판. 정부의 대출 규제 등으로 월세 수요가 늘면서 월세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뉴스1]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사는 A씨는 최근 내년 1월 전세 만기를 앞두고 새 전셋집을 알아보다 그만뒀다. 만기에 맞춰 이사하려면 은행으로부터 전세대출 확답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전세대출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먼저 전세 계약을 할 수 없었다. A씨는 “정부 규제 때문에 은행들도 내년 대출과 관련해 확답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집주인에게 부탁해 (대출 문제가 정리되면) 4월에 이사를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방침에 따라 금융권이 매매는 물론 전세대출 문턱까지 높이면서 월세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받기가 까다로워지면서 매매 수요가 임대차시장에 그대로 눌러앉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대출마저 문턱이 높아지자 월세로 임대차 수요가 몰리고 있는 영향이다.

29일 KB부동산의 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11월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는 119.3(2022년 10월=100)으로, KB부동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가장 높았다. 서울 서대문구 e편한세상신촌 84㎡(이하 전용면적)는 지난달 보증금 1억원, 월세 330만원(8층)에 월세 계약이 이뤄졌는데, 연초 1억원에 월 300만원 수준에서 10%가량 뛴 것이다. 이달 들어선 같은 면적이 월 350만~360만원에 나온다.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84㎡도 지난달 보증금 1억원에 월 360만원에 계약됐다. 연초만 해도 1억원에 월 300만원 수준이었는데 1년여 만에 20%가량 뛰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경기도와 인천 역시 각각 121.4, 118.7로 역대 최고치다. 아파트뿐 아니라 연립·다세대주택이나 단독주택도 상황이 비슷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연립·다세대 월세지수는 104.78로 지난해 10월(102.33)보다 2.45포인트 올랐다. 단독주택도 102.96으로, 1년 전인 101.10보다 1.86포인트 상승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아파트나 빌라(연립·다세대주택) 할 것 없이 월세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연말 월세가격이 뛰는 건 금융권의 대출 규제 영향이 크다. 은행권이 8월부터 아파트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를 막겠다며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중단한 데 이어 최근에는 1주택 보유자의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대출을 규제하면서 불똥이 임대차시장으로까지 튀고 있는 셈이다. 9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적용에 따라 기존 대출이 있는 사람은 전세자금대출 한도도 크게 줄었다.

은행들은 연말까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은행 상당수가 목표치를 초과해 잔액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은행은 전세자금대출이나 예금담보대출, 비대면 대출까지 중단하며 초강수를 두고 있다.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연말이 되면서 은행마다 대출 한도가 거의 다 차 일반 전세자금대출도 거절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임차인을 더 혼란스럽게 하는 건 내년 초 전세자금대출 가능 여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연말이 되면서 내년 상반기 임대차 만기가 되는 임차인들이 새 전셋집을 구하고 있지만, 은행들은 확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은 최근 금융감독원에 내년도 가계대출 경영 계획 초안을 제출하고, 금융당국과 목표치를 조율 중이다. 금융당국은 월별·분기별에 따른 가계대출 목표치를 설정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하반기부터 가계대출이 몰리면서 연말에 추가 대출 여력이 급감했는데, 특정 시점에 대출이 쏠리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다음부동산중개업소 김은혜 실장은 “보통 연초에는 전세자금대출은 물론 주택담보대출도 수월한 편이어서 별다른 고민이 없었는데 올해는 사정이 좀 다르다”며 “내년 초 전세 만기가 끝나는 임차인 가운데 일부는 전세자금대출 확답을 못 받자 아예 월세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전세 물건은 계속 쌓이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인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3만1790건에 이른다. 8월 말까지만 해도 2만6000여 건 수준이었지만, 정부의 대출 규제가 본격화한 이후 증가세를 보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자금대출이 힘들어진 상황에서 집주인도 금리 인하 흐름 아래 월세를 선호하면서 월세화가 가속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내년에는 전세보증 가입 기준이 더 엄격해질 수도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최근 ‘전세보증 근본적 개선대책’을 통해 담보인정비율을 현행 90%에서 80%로 낮추는 방향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 비율이 줄어들면 연립·다세대주택과 같은 빌라 세입자의 전세보증 가입이 더욱 어렵게 된다.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보증 보험 가입 기준마저 까다로워지면 전세보단 월세로 수요가 몰릴 수 있다.

부동산R114가 6~18일 전국 13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상반기 주택시장 전망’ 조사에 따르면, 임대차 가격 상승 전망이 하락 전망을 2배 이상 압도했다. 특히 월세가격은 상승(45.94%) 응답이 하락(7.20%)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문제나 수요자 심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월세가격 상승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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