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82] 불안의 해독제
중학생 때, 학교에서 아침마다 제논, 아우렐리우스, 세네카의 명상록을 틀어줬다. 문장 속에는 죽음을 늘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절제하라는 권고가 가득했다. 돌아서면 배고프고 공부하기도 바쁜데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이 당시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후, 당대의 거상이었던 제논이 난파한 배 때문에 한순간 재산을 잃었다는 걸 알게 됐다. 스토아 철학의 시작이 지독한 불행에 빠진 한 사람의 불안 다스리기였다는 것도.
번개로 부러진 거목은 숲지기에게 불운이지만 좋은 목재를 찾아 나선 목수에게는 행운이다. 결혼 생활 역시 지겨움으로 보면 고통이지만 익숙함으로 보면 안락함이다. 많은 일에는 관점과 해석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제논이 “배는 난파했지만 항해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한 힘이었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승진에서 밀리고 주식이 폭락할 때마다, 가족이 불치병에 걸리는 것보다 나쁠 게 없다는 생각으로 평정심을 찾는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그에게 스토아 철학은 불안 해독제인 셈이다. 말기 암 선고 후, 비로소 세상의 아름다움이 보였다는 환자처럼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게 들릴 때, 우리는 세상 많은 것에 감사할 수 있다. 메멘토 모리. 삶을 알기 위해 아침마다 죽음을 묵상한 지혜로운 중세의 성직자들처럼.
무엇을 얼마나 오래 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자주’ 하느냐이다. 반복이 곧 습관이기 때문이다. 천성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습관은 바꿀 수 있다. 스토아적 사고 역시 마음의 습관이다. 좋은 습관이 결국 좋은 삶이다. 폭우가 친다고, 먹구름이 꼈다고, 천둥과 번개를 지목하며 나쁜 것을 제거하려 드는 하늘은 없다. 하늘은 그저 하늘일 뿐, 날씨의 좋고 나쁨은 없다.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때, 마음은 날씨를 탓하지 않는 하늘의 평정심을 닮는다. 세네카의 말처럼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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