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정은 오세훈의 ‘후원자’ 인가, ‘정치 낭인’ 인가
오 시장 야인시절 든든한 지지자 “감동줬다”
정치입문 꿈꿨나, 선거국면 캠프와 갈등 빚어
명 씨와 만난 계기 등 밝혀야할 부문 많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2021년 3월. 오세훈 시장(당시 국민의힘 후보)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내일 아침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에 “시간이동 능력이 갖고 싶다. 그래서 2011년(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 논란으로) 서울시장 사퇴하기 직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무상급식 논란으로 뜨겁던 2011년 한여름은 오 시장 인생에서 가장 ‘추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장직을 물러난 뒤 보궐선거로 직을 회복하고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나 돌아갈래”라는 그의 대답엔 분명 깊은 회한이 담겨있다.
오 시장과 김한정 공정과상생학교(이하 ‘공생학교’) 이사장과의 본격적인 인연은 그때 시작됐다. 김 이사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명태균 씨가 작성한 오 시장 관련 여론조사 비용(3300만원)을 대납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인물이다.
“(2011년) 무상급식 때 포퓰리즘적 무상급식 옳지 않다는 플랜카드가 서울에 수십 수백장이 붙기 시작했다. 제가 서울시내 다니면서 플랜카드 계속 눈에 띄길래 며칠 지나 참모들한테 물어봤다. 누가 붙였냐. 수소문 끝에 찾아낸게 김한정 사장. 시민 중에 깨어있는 분이 계시구나 감동받았다. 차량 이동 중 전화통화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전화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오 시장이 지난 26일 밝힌 내용이다. 어려울 때 도와야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다. 김 이사장은 오 시장이 가장 추웠던 계절에 힘이 되고, 감동이 되어준 지지자임은 틀림없다.
오 시장 야인시절 ‘학교 동기’…출장 등 동행
야인(野人) 시절 오 시장과 김 이사장의 인연은 계속됐다. 2017년엔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에서 교양과정을 함께 수료한 것으로 확인된다. 통상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인맥’을 쌓기위해 수강하는 과정으로, 학비가 적지않게 든다. 정식 학위 과정은 아니지만 오 시장과 김 이사장은 ‘학교 동기’인 셈이다.
둘은 학교에서 러시아로 해외 세미나 출장도 같이가고, 동기 모임으로 주최된 골프·회식 등의 자리에도 종종 함께 했다. 훗날 공생학교의 이사 중 한명으로 등장하는 사업가 A씨도 이 과정을 수강했다. A씨의 경우 최근까지 오 시장 지지모임의 좌장을 맡는 등 인연을 이어오는 중이다.
둘의 관계는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시점에 요원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 시장이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강철원 전 정무부시장 등 오랜 측근들이 캠프 진용을 꾸렸다. 강 전 부시장과 가까운 국민의힘 서울시당 인사들이 캠프에 합류해 힘을 보탰다. 이들 중 일부는 공생학교 이사진으로도 합류한다.
“이 분(김한정)은 다른 여느 정치권 기웃거리는. 저하고 인연 맺어서 사실상의 이득을 염두에 두고 후원하는 분이 아니”라는 오 시장의 말과 달리 김 이사장은 정치 욕심이 있었다는 게 캠프 관계자의 전언이다.
“캠프에 와서 자꾸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려고 하니까...곤란하다고 여러번 얘기를 했는데...그래도 (오 시장과) 연이 있으니 캠프 출입을 막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김 이사장은 보궐선거든 2022년 지방선거든 오 시장 캠프에서 정식 직함을 가진 적이 한번도 없다. 본인이 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주지 않았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국힘 진영에서 중진으로 활동해온 오 시장의 경우 선거에 특화된 캠프와 조직이 있다. 오랜 정치적 동지들로, 일명 ‘정규군’으로 볼 수 있다.
이에반해 김 이사장 등 개인 지지자들은 ‘사병(비선)’에 해당한다. 김 이사장의 캠프 개입을 막은 이는 강 전 부시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강 전 부시장은 명태균 씨가 오 시장에게 접근할 때 “대판 싸워가며 이를 차단한 인물”(오 시장측 주장) 이기도 하다.
오 시장은 김 이사장이 비선으로 남길 바랬는지 모르지만 김 이사장은 많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월14일 김 이사장은 강혜경 씨와의 통화에서 “오세훈이고 강철원, 그 개XX들 그거 다 해주는지도 모르고 은혜도 몰라. 그것들 상종할 것도 없어”라고 말했다. 이미 오 시장과의 관계가 단절됐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 입문 꿈꿨나, 공생학교로 관계 틀어져
2022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선거 캠프에서 역할을 찾지 못하던 김한정 이사장은 2022년 4월 사단법인 공생학교를 설립한다. 지방선거를 약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법인 등기를 보면 김 이사장을 포함해 총 7명의 이사가 상생학교의 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중 4명이 캠프측 인사, 나머지 3명이 김 이사장측 인사(본인 포함)였다.
임원 면면만 보면 영락없는 오 시장 지지모임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선거가 임박한 시점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공정과 상생학교’라는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오 시장은 야인 시절이던 2016년 책을 한권 냈는데, 책 제목이 <공존과 상생>이다. 공생학교 출범식에는 오 시장도 참석했다.
공생학교는 오래가지 못했다. 캠프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이사장의 독단과 전횡”이 문제였다. 이사로 참여한 캠프측 인사 4명이 이에 반발했고, 오 시장도 활동 중단을 요청했다. 실제 공생학교는 출범 당시 블로그나 유튜브 등의 운영계획을 밝혔지만 실행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해 연말에는 법인 해산을 위해 이사회를 열려고 했지만 정족수 부족으로 성립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 이사장의 어떤 점이 문제가 됐을까. 공생학교의 면면을 보면 어느정도 짐작이 된다. 공생학교에는 이사진 외 여러 정치인내지는 ‘정치 낭인’들이 참여했다. 전직 국회의원이 총장을 맡았고, 국힘의 오랜 정치적 후원자로 알려진 B씨가 상임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공생학교는 ‘공정과 상생의 가치 연구 및 확산, 관련 인재발굴 및 육성’을 기치를 내걸고 여러 학자들을 교수진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출범식에선 “전국 10만 회원”이라며 세를 과시했다. 과거 2000년대 초반 등장했던 뉴라이트 단체들을 연상케한다. 뉴라이트는 이후 보수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김 이사장 역시 공생학교를 통해 독자적인 보수정치세력으로의 분화를 꿈꿨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주축세력인 오 시장측 인사들이 대거 반발하며 이탈하면서 활동이 좌절됐다. 김 이사장이 정치 입문에 관심이 컸다는 점은 그가 명 씨의 윤석열 대통령 관련 여론조사에도 비용을 지불했다는 사실, 강혜경 씨와의 전화통화에서 “강 실장, 국민의 힘은 살리자”라고 말한 부분 등에서도 확인된다.
<뉴스타파> 보도에 나온 김 이사장의 통화내용을 보면 명 씨는 김 이사장을 평소 “형님”이라고 부른 것으로 나온다. 강혜경 씨는 김 이사장이 명 씨에게 여러차례 생활비 등으로도 돈을 보냈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이 보궐선거 이후로도 명 씨와 관계를 유지한 배경이 오 시장을 위한 마음에서였는지, 본인의 정치적 욕망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명씨는 어떻게 만났나…김한정 ‘입’에 달려
김 이사장의 여론조사 대납의혹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다.
우선 김 이사장이 어떤 계기로 명 씨를 만나게 됐는가하는 부분이다. 캠프 관계자는 “명씨가 오 시장 측을 찾아왔다가 강 전 부시장과 크게 싸우는걸 보고 김 이사장이 접근해 둘이 알게됐을 것”이라고 보고있다.
반면 <뉴스타파>에 나온 김 이사장의 통화내용에서 그는 “만나보라길래 만났지. 그래서 (명 씨와) 엮이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통화에서 그는 ‘누가’ 만나보라고 했는지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는다. <뉴스타파> 보도대로 김 이사장이 오 시장측 지시나 요구로 명 씨를 만났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의혹의 핵심인 여론조사 내용이 오 시장 캠프에 전달됐는지 여부도 밝혀야 한다. 현재 김 이사장은 “오 시장을 위한 마음에 개인적으로 돈을 지불했다”며 캠프에 전달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오 시장측도 “전달했다면 정확히 누구한테 줬는지 밝혀달라”며 누차 밝히고 있다. 김 이사장이 윤 대통령 여론조사 등에 국힘을 대신해 비용을 댔는지도 확인해야할 문제다.
다만, 이 문제의 경우 대납 사실이 확인되면 김 이사장 역시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대납 사실을 인정하거나 밝힐 가능성이 높진 않아 보인다. 경향신문은 김 이사장에게 여러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오 시장과 명 씨 관련 취재 요청을 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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