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갈 곳 잃은 ‘가정폭력’ 피해자들, ‘입주우선권’에도 임대주택 입소율은 ‘1%’
보호시설 나온 피해자들 매년 1000여명인데, 자립지원금 지원율도 ‘10%대’ 그쳐
가정폭력·스토킹 피해자 지원 예산은 증가…올해 415억→내년 432억으로 17억 늘어
김남희 의원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주거지원·자립지원금은 생존권 문제…제도개선 필요”
(시사저널=강윤서·변문우 기자)
여성가족부가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각종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제도의 실적이 저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호시설을 퇴소한 피해자를 위한 임대주택 입주우선권은 입소율이 1%대, 자립지원금은 신청률이 10%대에 그쳤다. 해마다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피해자 지원 실효성을 높여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2024년 9월) '임대주택 입주우선권' 모집 호수는 676건이다. 이 중 가정폭력 피해자가 입주를 신청한 경우는 31건(5%)으로, 실제 계약까지 이어진 경우는 단 7건(1%)에 불과했다.
"말로만 우선권…임대주택 물량 정보 얻기도 어려워"
임대주택 입주우선권은 여가부가 가정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국민임대 및 통합 공공 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는 사업이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시행 중인 주거지원제도의 연장 개념이다.
입주권 신청자격은 △보호시설에서 6개월 이상 입소한 경우 △보호시설 퇴소일로부터 2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주거지원시설에 2년 이상 입주한 경우 △주거지원 퇴거일로부터 2년이 지나지 않는 가정폭력 피해자여야 한다. 신청자는 시·군·구에서 본인이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입주 우선 권한이 있다는 확인서를 받은 뒤 개별적으로 LH 혹은 국민임대주택 사업자에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보호시설을 퇴소한 가정폭력 피해자들 중 해당 사업을 신청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연도별 모집 호수 대비 피해자들의 입주우선권 신청 건수를 보면, △2020년 모집호수 181건(신청 10건) △2021년 319건(6건) △2022년 102건(10건) △2023년 14건(2건) △2024년(9월 기준) 60건(3건) 뿐이다.
신청자가 거의 없다보니 실제로 입주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입주 계약 건수는 △2020년 1건 △2021년 1건 △2022년 4건 △2023년 1건이다. 올해는 지난 9월 기준 아무도 계약하지 않았다.
이처럼 실제 입소율이 낮은 이유로는 피해자들이 실제로 '우선권'을 얻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운 점이 꼽힌다. 해당 현안을 집중 분석해온 한국여성의전화의 송란희 대표는 시사저널에 "말로는 우선권이지만, 실제론 해당 지역 거주기간이나 재산 등을 다 따져서 합산된 점수를 통해 선정한다"며 "가정폭력 피해자는 주로 가해자를 떠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주거하는 지역이란 게 사실상 없다.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피해자들이 임대주택 관련 정보를 얻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송 대표는 "언제 어느 지역에서 (임대주택) 몇 자리가 비었는지를 정보를 알 수가 없다"며 "미리 신청해놨더라도 개별적으로 안내해주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 스스로 계속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대주택의) 물량도 추가된 게 아니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서울 수도권은 아예 TO가 없는 경우도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여가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입주우선권은 가정폭력 피해자 뿐 아니라, 아동위탁가정, 납북 피해자, 장기복무제대 군인 등 다양한 사회적 배려계층을 대상으로 공급된다"면서 "게다가 매번 (임대주택) 물량도, 물량이 나오는 지역도 전부 다르고, 주로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분들에게 우선 배정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퇴소 피해자 '자립지원금' 지원율도 10%대
여가부가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지원하는 '자립지원금' 상황도 비슷했다. 여가부에 따르면, 매년 보호시설을 퇴소하는 1000여 명의 가정폭력 피해자들 중 자립지원금을 지원한 경우는 10%대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2020~2023년까지 보호시설을 퇴소한 피해자는 총 4411명인데, 이 가운데 16%(712명)만 자립지원금을 받았다.
자립지원금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보호시설을 나온 후에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제도다. 여가부는 해당 사업을 통해 피해자와 그 동반가족의 주거마련, 생활비, 직업교육 훈련, 의료비 및 양육비 등을 지원한다.
지원대상은 보호시설에 3개월 이상 입소한 사람 중 '자립의지'가 있는 피해자다. 이에 여가부 관계자는 "보호시설 입소자 중 3개월 이상 입소한 경우는 38%에 그쳤다"며 "이 중 퇴소한 사람의 40%는 자립계획이 없거나 여가부의 주거지원시설에 입소하기 때문에 자립지원금 지원율이 낮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업들에 앞서 여가부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일차적으로 주거지원제도를 운영한다. 그러나 가정폭력 피해자의 주거지원시설 입소율 또한 2022년 90%, 2023년 84%, 2024년 80%로 매년 100%를 채우지 못하고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여가부 관계자는 공실률에 대해 "(보호시설 입주기간이) 2년으로 정해져 있고 최대 6년까지인데, 열악한 보호시설의 환경이나, 자녀 교육 문제, 직장 접근성, 혹은 (가해자한테) 노출되는 문제가 생기면서 나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각 지원제도의 실적이 저조한 가운데 피해 현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021년 21만8680건 △2022년 22만5609건 △2023년 23만830건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한편 가정폭력 및 스토킹 피해자를 지원하는 내년도 총 예산은 늘어난 상황이다. 여가부가 '가정폭력·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사업 관련 편성받은 예산은 2023년 384억5800만원, 2024년 414억9700만원에서 내년엔 16억7000만원 늘어난 431억6700만원이다.
예산이 늘어난 만큼 제도를 보완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예산정책처는 2025년도 여가위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가정폭력 피해자 주거지원 사업을 상당수 공실이 발생한 스토킹피해자 임대주택 등 비슷한 사업과 통합 연계해 비용 절감 및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피해자 입장에서도 입소 가능 조건 확대 및 정주여건의 안정성 제고 등 지원이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남희 의원도 시사저널에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자립지원금과 주거지원은 생존권을 보장하는 문제일 정도로 중요하지만 아직 제도적으로 보완할 문제들이 상당한 상황"이라며 "실질적 지원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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