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오늘만 네 번 이겼지만···일본 기업 사과는 아직
일본 기업, ‘소멸시효 완성’ ‘증거 부족’ 주장
실질적 배상 이뤄지지 않아 피해 회복 미진
약 80년 전 일본제철의 제철소로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한 최모씨와 김모씨. 1943년 일본 코크스 공업 주식회사에서 석탄 캐는 일을 하다 약 2년 뒤 탄광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박모씨. 같은 해 16세의 나이로 미쓰비시 중공업의 조선여자 근로정신대에 동원돼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 충남을 떠나야 했던 양모씨. 1945년 후지코시에서 양씨와 마찬가지로 근로정신대에 동원된 서모씨.
29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1940년대 일본 기업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4건에 대한 선고가 진행됐다. 재판부는 모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이들에게 각 8000만~1억원의 배상액을 인정했다.
그간 일본 기업들은 ‘소멸시효 완성’을 주요 근거로 내세우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저지른 지 10년이 지나면 소멸하지만, 강제동원 사건에서는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던 점이 인정돼 이 사유가 해소된 시점부터 3년까지 청구권이 인정된다. 일본 기업들은 대법원이 처음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2012년 5월로부터 3년이 이미 지났으므로 피해자들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했다. 당시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 판결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2012년 대법원의 ‘파기환송’이 아닌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확정판결’을 한 선고일을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따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2년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사건의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의 승소를 확정했다. 이후 각급 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법적 구제가 가능해진 2018년을 소멸시효의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약 80년의 세월이 흐른 이들 사건에서는 자료가 부족해 증거 입증도 쉽지 않다. 양씨의 경우 일본에서 일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남아 있었으나, 미쓰비시는 “사진 속 마크가 미쓰비시 문양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양씨의 대리인 민수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그나마 사진 같은 자료들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피해자의 진술 말고는 증거자료라고 할 게 없는 경우가 많다”며 “재판부가 더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입증하라고 하거나, 피고 측도 피해사실이 객관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법원의 배상 인정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은 배상을 미루고 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3월 일본 기업을 대신해 재단이 기부금 등을 모아 피해자들에게 변제하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김영환 민족역사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피해자 분들은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를 한다고 하면 일본 기업이 배상에 나서겠냐는 의문을 던진다”며 “원고들과 상의해 (배상) 강제집행 절차도 고민하려 한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opinion/editorial/article/202108112029035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8191729001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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