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록 없는 이주노동자 죽음 93.6%…“체계적 통계 전혀 없다”
한겨레, 죽음과 그 이후 추적한 후속 보도 예정

시민의 출생과 사망은 국가 공동체가 생산하는 가장 기초적인 통계다. 인권·존엄 같은 거대한 단어들에 앞서 시민의 ‘존재’를 셈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이주해 일하는 시민 144만여명 가운데 한해 사망자는 몇 명인가?
한국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 규모 추정을 최초로 시도한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맥이 빠지는 숫자이지만 동시에 충격적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보유한 행정 자료 중 이주노동자 사망의 정확한 숫자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최소한 ‘사망했다’는 사실 정도를 인지한 이주노동자 가운데서도 93.6%는 나이, 사망시점, 의료적 사인 등 최소한의 신원과 사망 정황을 밝힐 수 있는 정보가 적히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9일 공개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이하 연구,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를 보면,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출입국 본부)에 법에 따라 신고된 전체 이주노동자 사망자는 2022년 기준 3340명이다. 다만 출입국 본부 자료는 사망자의 국적과 체류 자격, 성별 외에 별다른 정보를 담고 있지 않아 사망자 신원과 죽음의 원인을 파악하기엔 역부족이다. 애초 신고하지 않으면 기록되지 않는 한계도 명확하다.
이 가운데 사망 이주노동자의 기초 신상 정보(국적, 성별, 나이, 직업, 사망 연도, 의료적 사인, 비자 형태 등)를 그나마 구체적으로 기록한 수는 214명(6.4%)에 그친다. 근로복지공단·농협·수협에 산재 사망 보상을 신청한 169명과, 고용허가제(등록) 이주노동자가 의무 가입하는 삼성화재 ‘외국인 상해보험’에 업무 외 사망 보험금을 청구한 45명이다.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경제적 보상 여부를 따질 때만 사망자 정보가 수집된 셈이다.
나머지 3126명(93.6%·중복제외)의 죽음은 보이지 않는 심연에 있다. 이 가운데 그래도 ‘주검’이라는 흔적이 수사기관에 의해 발견된 변사자(755명)는 경찰과 해경에서 기록하지만, 변사자 사인은 자살·타살·과실사·재해사 등 ‘형사 사건’의 관점에서만 기록될 뿐이며, 심지어 57.5%가 그조차 모르는 ‘기타 사망’으로 적힌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무연고 사망자(104명)의 경우 국적, 성별, 직업 등이 대부분 비어 있다.
이런 국내 행정자료에 더해 주요 송출국 대사관 자료, 건강보험 자료까지 두루 비교해 살펴본 뒤 연구는 결론을 낸다. “현재 한국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사망 현황과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통계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144만명에 이르는 노동자 집단의 죽음이 기록없이 ‘암장’된 것이 지닌 함의는 가볍지 않다. 누가, 어디서, 언제, 어떻게 일하다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모른다는 의미다. 그로부터 또다른 유사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의미다. 한 인간의 가장 중대한 순간마저 외면했다는 뜻으로, 이주노동자의 삶 전반을 대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태도를 짐작하게 한다.
연구는 짚는다. “한국 사회는 구조적으로 이주노동자를 존엄한 삶과 죽음이 가능한 제도 바깥으로 밀어내며 그들을 미등록-사인불명-무연고의 존재로 만들거나 혹은 방치하고 있었다. (…) 가장 위험한 노동을 저임금으로 감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얼굴 없는 존재로 만들고, 동료와 가족을 가졌던 한 인간의 역사를 삭제하고 그들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온전히 애도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폭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연구를 바탕으로 한겨레는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과 그 이후 장례, 남겨진 사람들, 송출국의 현실 등을 추적했다. 위험하고 폭력적인 일터, 열악한 삶과 사회안전망의 부재, 은폐와 사기, 애도의 부재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무신경 등 눈치채지 않으려 했던 이주 노동의 거대한 그림자가 타래처럼 끌려나왔다. 한겨레는그 첫 추적의 과정과 내용을 오는 12월2일부터 보도한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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