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난 이재명의 정치 운명, ‘사법부’ 아닌 ‘지지율’에 달렸다

구민주 기자 2024. 11. 29. 1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 전까진 ‘단일대오’ 전망…與 압도할 ‘지지율’ 사수가 변수
野에 ‘김건희 리스크’는 꽃놀이패…검사 탄핵‧재판 지연엔 역풍 우려도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권력의 판도를 크게 뒤흔들 것으로 예상됐던 '운명의 11월', 그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1승1패였다. 15일과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위증교사 혐의 1심 재판에서 각각 유죄와 무죄가 선고되면서, 여야는 깊은 안도와 절망을 한 번씩 주고받았다. "유죄 더하기 무죄는 어쨌든 유죄" "무죄 선고 후 이미 분위기는 넘어왔다". 현 상황에 대한 여야의 해석도 두 개의 선고만큼이나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사법 리스크 족쇄를 매단 유력 차기 주자.' 열흘 안에 일퇴(一退)와 일진(一進)을 겪은 후 이 대표는 다시 같은 자리에 섰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 정치적 시간과 공간을 벌게 된 그는 보란 듯이 민생·경제를 강조하고 나섰다. 여기엔 숨은 전략이 있다. 민생 행보로 경제 실정에 대한 책임을 정부·여당에 묻고, 대안 제시 등으로 수권능력을 보여주고, 그렇게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거리를 둬 여론과 언론의 관심을 돌려놓겠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

실제 이 대표는 1심 재판 이후 상법 개정과 코인(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앞세우는 등 대권을 노린 듯한 '우클릭' 행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집권 후 국가 중장기 전략을 준비할 '미래거버넌스위원회'도 발족했다. 무죄 선고 직후 이 대표의 법원 앞 일성도 "죽이는 정치가 아닌 사람 살리는 정치를 하자"였다. 정부·여당을 겨냥한 메시지이자 자신의 정치는 차별화된다는 점을 은연중에 강조한 발언으로 읽힌다.

ⓒ사진공동취재단

대선이 먼저냐, 대법원이 먼저냐…치열해질 신경전

총 다섯 개의 재판 중 이제 두 개 재판의 '첫 관문'을 넘었을 뿐임에도 이 대표가 이처럼 자신감 있는 행보를 보이는 데는 당내 결집이 큰 몫을 한다. 당 지도부 등 친명(親이재명)계에선 '선고 정국'을 맞아 이 대표로의 '단일대오'를 더욱 공고히 하는 분위기다. 공직선거법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뒤에도 이들은 일제히 '이재명 플랜B'는 없다고 강조했다. 당 차원에서 변호인단을 강화하며 항소심 대비에 나섰고, 장외집회에 총출동해 사법부 규탄에 목소리를 모았다. 비명(非이재명)계의 등판 가능성에 대해선 단칼에 싹을 잘랐다. 이어 위증교사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비명계는 기지개도 펴보지 못한 채, 항소심 결과 이후로 복귀 시계를 재조정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이 대표가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실질적으로' 정치생명이 끊어지기 전까진 현재의 강력한 입지가 흔들리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나머지 재판에서 혹 1심 유죄 선고가 추가되더라도 민주당의 칼날은 어김없이 이 대표가 아닌 정부·검찰·사법부 등 바깥으로 향할 거란 얘기다. 실제로 민주당은 12월4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상원 4차장·최재훈 반부패수사2부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탄핵 사유는 '김건희 여사 사건' 불기소 처분 등이지만 그 후과는 서울중앙지검 지도부가 사실상 붕괴되는 것이다. '이재명 대장동 사건' 등 재판에 나서는 서울중앙지검의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 탄핵 의결과 함께 이창수 지검장 등은 헌법재판소 심판 선고가 날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반면 검찰의 반발과 민주당의 추가 공세가 여론을 악화시킬 경우 이재명 재판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이 대표 측을 비롯해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받고 있는 5개의 재판 가운데 차기 대선(2027년 3월) 전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날 가능성이 큰 건은 이번에 1심 선고가 나온 공직선거법과 위증교사 두 건 정도라고 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원칙상 1심 6개월, 2·3심은 각각 3개월 내에 끝내도록 규정돼 있는 공직선거법 판결 시점에 가장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장동·백현동·위례·성남FC 사건, 불법 대북 송금 사건,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사건 등 나머지 3건은 사건이 워낙 크고 복잡하거나 아직 정식 재판도 개시되지 않아 1심 선고가 언제 나올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선 벌써부터 1심 유죄를 받은 공직선거법의 대법원 판결을 대선 이후로 최대한 지연시키는 전략을 고심하는 기류다. 이번 유죄 선고의 근거가 된 선거법의 '허위사실 공표'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만일 항소심 재판부가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하면, 헌재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재판은 중단된다.

이러한 민주당의 움직임을 감지한 여권도 대응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 재판 지연을 막는 당 차원의 '재판 지연 방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갖은 '꼼수'를 감시·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차기 대선이 먼저냐, 이 대표 대법원 판결이 먼저냐를 두고 여야 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위증교사 혐의 무죄 선고를 받은 11월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축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지율이 李 생명줄?…"사법부도 민심 외면 어려워"

"결국 '지지율'이다. 지지율이 높고 민심이 이재명을 부르면 사법부도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에 대한 선고 후 통화에서 이재명을 살리고 이재명을 죽이는 건 결국 사법부가 아닌 지지율, 즉 '민심'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가 사법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휘청이는 듯 보이지만, 사법도 그 못지않게 결정적인 순간 정치의 바람을 온전히 피할 수 없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점에서 민주당은 이 대표가 숱한 사법 리스크에 휘말려 있음에도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보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갤럽 조사 기준 지난 정부 때부터 대선을 거쳐 지금까지 3년여간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선두자리를 거의 놓치지 않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선고 정국에도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 역시 큰 흔들림 없이 오히려 국민의힘 지지율을 웃돌았다.

이 대표가 지금의 입지를 유지·강화할 경우, 대선 기간이 다가올수록 대법원도 차기 유력 주자의 정치생명을 좌우할 판결을 내리는 데 부담이 가중될 거란 주장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도 통화에서 "대법원이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민심'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 대표의 힘이 쭉 빠져버리면 대법원도 부담 없이 판결을 내릴 텐데, 현재로선 이 대표 지지세가 한동안은 크게 꺾일 것 같진 않다"고 내다봤다.

그 이유에 대해 최 교수는 "밖에선 윤석열 정권의 변화와 쇄신, 안에선 비명계 경쟁 주자가 급부상해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재명 대표의 지지율은 유지될 것이기에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리는 데 부담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켜줄 '생명줄'로 중도 표심 공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끈끈한 집토끼를 넘어 중간지대의 산토끼까지 끌어와야 대권주자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심 선고 직후 속도를 붙인 민생·경제 행보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더 강하고 더 넓은 민심이 절실한 이 대표와 민주당으로서 '김건희 리스크'는 '꽃놀이패'와 같다. 우선 김 여사 문제의 경우 국민 여론이 대체로 부정적인 만큼, 강력한 문제제기에도 역풍이 불 가능성이 낮다. 특히 일부지만 이미 1심 선고를 받은 이 대표로서는 이제 자신과 김 여사 사이 '형평성' 문제를 꺼내들 명분도 얻은 셈이다. '김건희 특검법은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정부·여당의 반대 논리도 이 대표 선고로 어느 정도 희석됐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실제 민주당은 검찰과 사법부를 싸잡아 압박·규탄하는 기존 전략을 수정하고, 사법부를 존중하되 검찰을 향해선 김 여사 수사를 촉구하는 '분리 전략'을 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또한 '이재명 방탄' 기조에 반감이 큰 중도 민심을 노린 프레임 전환으로 읽힌다.

11월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4차 국민 행동의 날'집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너무 큰 불확실성…시간은 李의 편이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민주당의 전략엔 변수가 많다. 당장 민주당의 재판 지연 전략도, 사법부의 정치화도 모두 불확실성이 큰 '가정'이다. 더구나 조희대 대법원장이 재판의 '신속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공직선거법의 경우 내년 상반기 중 확정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또 이 대표의 재판 일정과 자신 및 측근들의 선고가 예정돼 있는 만큼 중도 민심을 공략하고 있는 그의 정책 행보에도 번번이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민주당이 대법원 판결을 지연시키기 위한 움직임에 나설 경우 이에 대한 역풍도 불 것으로 관측된다. 미래를 위한 대권 행보로 당장 눈앞의 사법 리스크를 가리긴 쉽지 않을 거란 지적이다. 이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에 대해 탄핵을 추진하는 민주당 행보에도 중도 여론은 부정적이다. 차기 대선까지 남은 2년여의 시간이 이 대표와 민주당에 유독 길게 느껴지는 이유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