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경희대 시국선언문' 쓴 장문석 교수 "우린 취약하기에 함께해야 한다"

조태성 2024. 11. 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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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의 이슈메이커]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 요구하는
대학교수 시국선언 줄 잇는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경희대 시국선언문'
분노 대신 부끄러움과 성찰 담아
편집자주
한국의 당면한 핫이슈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화제가 된 경희대 시국선언문을 작성한 장문석(왼쪽) 국문과 교수와 김진해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지난 25일 시국선언문이 게시된 경희대 문과대 게시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하상윤 기자

"대자보요? 아뇨. 학창 시절엔 반성문 정도만 좀 써본 게 전부입니다. 하하하. 원래 시국선언문 같은 글은 전체 콘셉트와 구조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다 함께 얘기하고 방향을 정한 뒤 저는 그걸 정리한 것뿐입니다."

왕년에 대자보 좀 써봤느냐는 질문에 순한 얼굴을 한 장문석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연신 손사래를 쳤다. "군대에서 족구할 때 미대생이 줄 긋고, 수학과 학생이 점수를 센다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냐" 농담 삼아 물었더니 "제가 국문과니까 네가 써봐, 그렇게 된 것"이라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진해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돌아보며 피식 웃으며 놀렸다. "그렇게 말한다고 책임이 덜어지겠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인 11월 10일을 전후해 정부를 성토하는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가천대를 시작으로 한국외대, 한양대, 숙명여대, 국민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인천대, 충남대 등 전국 60여 개 대학 4,000여 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한다. 보수의 심장으로 꼽히는 대구·경북(TK) 지역의 안동대, 경북대, 대구대 교수들은 물론, 릴레이 시국선언 한 달 만에 윤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대 교수들도 시국선언문을 내놨다.

'부끄러움과 반성'으로 눈길 끈 경희대 시국선언문

냉소적 시각도 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 현 정치 여건상 결국 지루한 교착 상태가 오랜 기간 이어질 게 뻔하지 않으냐, 대학교수들이 목소리를 내면 사회가 경청하고 각성하고 반응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으냐 등. 하지만 교수들이라 해서 마냥 속 편하게 그냥 한 번 질러보는 건 아니다. 모두들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의 원재료는 각종 성명이나 선언의 서명자 리스트였다는 걸.

지난 23일 대구 경북대 북문 앞에서 경북대 교수, 연구자가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잇달아 나오는 시국선언문 중 경희대 ·경희사이버대 교수·연구자 226명이 서명해 지난 13일 공개한 '경희대 시국선언문'은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격한 어조로 분노하고 성토하는 기존의 선언문 문법에서 벗어나, 성찰하고 반성하는 글이어서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명문장이라는 찬사가 줄을 이었다.

경희대 선언문은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라는 낮은 고백의 문장으로 입을 연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절망적 상황에 대한 묘사와 반성의 문장을 17번 반복한다. 곧이어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 하고 싶다"라는 12가지 바람을 나열했다. 마지막은 "우리는"을 주어로 앞으로의 결심을 밝히는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현 정부에 한정적인 비판을 넘어 앞으로 우리 사회가 계속 되짚어봐야 할 질문 리스트를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전형성을 벗자" ... '1인칭 반성문' 시국선언문의 탄생

짜임새 있는 구성, 유려한 문장으로 "이런 선언문은 처음 봤다"는 호평을 이끌어낸 장 교수와 김 교수를 서울에 첫눈 내리기 전, 마지막 낙엽들이 어지러이 흩날리던 경희대 문과대학 앞에서 만났다.

-'나는' '당신과 함께' 그리고 '우리는'으로 점차 범주를 넓혀나가는, 담담한 반성과 결심의 문장이 화제다.

김진해="시국선언문 준비모임을 한 게 중간고사가 끝난 뒤인 11월 5일이었다.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씨 관련 이슈들이 쏟아지고, 다른 대학들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그때 10여 명의 교수들이 모여 3시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 자리에서 열심히 써봐야 잘 읽히지도 않을 글 말고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제대로 된 글을 써보자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용상으론 규탄과 분노 대신 우리들의 '부끄러움'과 '반성'을 담고, 형식상으론 '1인칭'을 적용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장문석="한때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수라면 비판적 지식인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교수 또한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이자 취약한 개인이다. 취약한 개인으로 제가 경험한 현실과 부끄러움을 담고 싶었다. 내가 취약하고 부족하다는 깨달음은 사실 우리 모두가 취약하다는 것, 그렇기에 서로 연결되고 기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주디스 버틀러가 말한 취약성에 대한 통찰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족한 내가 너와 함께 손을 잡고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낸다, 라는 구도를 만들게 됐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은 이렇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

이태원 참사, 채 상병 사건은 물론 '어쨌든 사과'로 요약되는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 등이 모두 들어 있다. 하지만 강한 힐난보다는 "나는 반성한다. 시민으로서,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라고 썼다. 이어 "취약하기 때문에 함께 목소리를 낸다"고 했다.

-대학 강단에서 20대 젊은이들을 수시로 접한 경험이 녹아든 느낌이다.

장문석="5일 모임 자리에서 나왔던, 교수들이 학생들을 대하면서 실제 느끼고 겪었다며 털어놓은 여러 이야기들을 녹였다. 첫 문장의 '폐허'도 거기서 나온 표현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폐허 같고, 그 속을 살아가는 마음 역시 폐허 같으며,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그런 기대 없음이 더 문제라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던 어느 분 말씀에 모두 다들 공감하셔서 그 표현을 첫 문장에 넣었다."

김진해="대학도 하나의 작은 사회인데 그 사회 하나 제대로 건강하게 못 만들면서 국민들에게 '식자층인 우리가 뭔가 길을 알려주겠다'라고 나서는 것 자체가 민망해진 시대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에게 말을 걸어보는 느낌으로 고백하는 글을 써보자고 한 것이다. 그런 부분에 문제 의식이 있는 장 교수가 두 가지 버전을 준비했고, 그중 하나로 초안을 삼았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 때문에 졸업이 두렵다는 제자들

장문석="4·19혁명 이후 대학 교수들이 지식인의 대명사로서 많은 대자보와 시국선언을 쓰면서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가 이번 선언문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식인의 고뇌와 충정' 같은 건 아니다. 그런 건 우리도 모르고 우리에겐 없다. 하하하. 그보다는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고민, 반성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학생들도 '가르치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우리 함께 얘기를 해보자'고 제안하는 태도가 아주 인상적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학가라면 예전과 다른, '보수화된 20대' 얘기가 거론된다.

김진해="확실히 예전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자기 앞가림 하기에 다들 바쁘다. 하지만 그걸 20대 탓으로 돌리는 건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든 기성세대로서는 무책임한 일이다. 대학은 그래도 뭔가 다른 생각과 행동을 실험해볼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부족하지 않았나라고, 강의하는 사람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별들의 집'이 지난 10일 서울 안국역 인근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문을 열었다. 이한호 기자

장문석="보수화됐단 말은 많지만 20대를 실제 직접 만나보면 서로 돌보고 연대하는 삶에 대한 관심이 살아 있다. 문제는 그런 학생들이 졸업하고 사회로 나갈 때쯤엔 '우리 사회에선 불가능한 것 아니냐' 혹은 '절망적이다, 암울하다, 기대가 되지 않는다, 걱정된다'고들 말한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현 정부는 단순히 대통령과 그 주변이 소란스러운 걸 넘어서서, 권력이 무책임하고 무례하게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로도 비판받아야 한다."

-인문사회 계열 외 이공계 의대 등 자연계열 교수들 반응도 뜨거웠다 들었다.

김진해="아무래도 예전부터 시국선언이라면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이 주도해왔다. 이공계열 분들은 상대적으로 신중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다. 많은 대학원생들과 함께 정부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입장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R&D 카르텔 발언, 의대 정원 확대 파문 같은 이슈 때문인지 이번엔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시국선언 소식을 듣고 구두로, 또 익명으로 지지의 뜻을 나타내신 분들도 상당히 많으셨다."

R&D 카르텔, 의대 사태로 시국선언 참가자 늘어

장문석="아마 정치적 상황에 대한, 현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기만 했다면 참여가 부담될 수 있었겠지만 선언문 자체가 대학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느끼신 것 같다. 의대는 두 학기 동안 강의실이 비어버린 채 공전하고 있고, 연구비 삭감으로 R&D 연구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란 뭔가'라는 고민이 인문사회 계열을 넘어 경영대, 이공대, 의학계, 예술체육계까지 번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최근래 경희대에서 낸 시국선언문 가운데 참여 인원이 가장 많았다."

-시국선언문 나온 뒤 호평이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아주 드문데.

장문석="글 써서 내곤 주변 반응을 그렇게 챙겨듣지 않았다. 전 공식적으로 '평소에 많은 도움을 주신 선배님들이 시켜서 초안을 쓴 사람'일 뿐이니까. 하하하. 물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한편으론 대학 교육자로서 부끄러움과 반성을 담은 글인데도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건, 우리 시민들에게 '새로운 언어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는 얘기와도 뜻이 통한다고 본다. 우리가 썼던 부끄러움과 성찰의 언어가 탁월했다는 게 아니라, 다른 언어의 필요함을 우리가 몰랐던 게 아닌가라는 고민도 하게 한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김진해(왼쪽)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와 장문석 국문과 교수가 시국선언문 작성 뒷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하상윤 기자

김진해="감사하게도 참 좋은 말씀 많이 들었다. 동료 교수들은 물론, 은퇴 교수님들이나 동문들에게서 '이렇게 잘 써줘서 고맙다' '주변 반응이 너무 좋아서 뿌듯하다' 같은 말씀을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친구는 전화해서 여전히 '너 이래도 괜찮냐'고도 하더라.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건 이번 선언문이, 지금 모두가 느끼고 있는 어떤 막막함을 참 잘 언어화했기 때문인 것 같다."

-시국선언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건가.

김진해="일단 작은 교내 모임을 하기로 했다. 시국선언만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일단 사람들이 모이기로 했다."

시국선언 이후의 행보 모색도 시작할 것

장문석="대학을 흔히 '학문 공동체'라 부르지만 사실 계량적 업적평가 때문에 모두가 다 따로 사는 사회처럼 되어버렸다. 우선은 그런 것부터 하나씩 바로잡아보고 싶다. 우리가 부끄러움과 성찰을 얘기한 건 우리가 지금 선 이 자리에서부터 뭔가를 해보자는,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뭔가를 하나씩 해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계속 길을 찾아보겠다."

고약한 질문도 해봤다. 채 상병 사건이 터졌을 때, 온라인상에서는 박정훈 대령의 출신 지역이 어디냐를 두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경북 포항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좀 더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차마 웃지 못할 한국적 풍경이다. 장 교수의 고향은 안동이었다.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안동은 시인 이육사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전문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생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번쩍 들려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파괴적 속도로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두 학기째 텅 비어있는 의과대학 강의실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 교육의 토대가 적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탱되기에 허망하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격노를 듣는다. 잘못을 해도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격노의 전언과 지리한 핑계만이 허공에 흩어진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잘못을 하면 사과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무너지며 공정의 최저선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듣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공정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보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신뢰와 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규범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유지의 첩경이라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거짓을 목도한다. 거짓이 거짓에 이어지고, 이전의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진실을 담은 생각으로 정직하게 소통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말의 타락을 보고 있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 나는 더 이상 강의실에서 한 번 더 고민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말에 경청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하루하루 부끄러움을 쌓는다. 부끄러움은 굳은살이 되고, 감각은 무디어진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하루하루 인간성을 상실한 절망을 보고 있고, 나 역시 그 절망을 닮아간다.

어느 시인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앞자락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리라는 미약한 소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두었다.

나는 반성한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나는 취약한 사람이다. 부족하고 결여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 역시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취약하기 때문에, 함께 목소리를 낸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인류가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지혜를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역사의 진실 앞에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갖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권리를 천명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우리가 공부하는 대학을 신뢰와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는 윤리를 쌓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신중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를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진실 앞에 겸허하며, 정직한 삶을 연습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존중과 신뢰의 말을 다시금 정련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만들어갈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일지 토론한다.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2024.11.13.

경희대학교 ·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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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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