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이재명 사법 리스크, 2년 반의 복기
입법권력 동원해 정치 생존투쟁
극단적 대결 정치 구도 고착화
1승1패 어정쩡한 1심 판결에
한국 정치의 사법 리스크 족쇄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듯
정치권 "민생" 외침 공허하기만
피고인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삶이 휘둘리고 있다
한국 정치가 이 모양인 원인의 큰 몫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미숙함이 못지않은 역할을 했지만 문제를 키운 요인에 해당할 것이다. 문제의 본질, 지긋지긋한 대결 정치의 구도는 이재명의 존재에서 비롯됐다.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압도적 의석의 제1야당 대표가 숱한 범죄 혐의를 짊어진 피고인이란 사실이 지금의 정치판을 만들었다.
그를 법정에 세운 열 몇 가지 혐의 중 정치적인 사건은 하나도 없다. 대부분 그가 시장이고 지사일 때, 또는 그 이전에 정치권 바깥에서 저지른 일이다. 대선 후보 시절의 선거법 위반 혐의도 대장동·백현동 비리와 관련된 허위사실 유포 문제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법 리스크를 그는 혼자 감당하지 않았다. 역대 대선 패자들이 좀처럼 하지 않던 대선 직후의 국회의원·당대표 출마를 강행했는데, 이는 자신의 리스크를 한국 정치의 짐으로 떠넘기는 행위였다.
범죄 혐의를 정치로 돌파하는 그의 방식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과 야당 대표직의 정치적 무게에 머물지 않았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축구의 격언을 떠올린 듯, 2022년 8월 당대표 취임 일성부터 “(윤 정부의) 퇴행과 독주에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을 향한 수사에 정권을 향한 공세로 맞선다는 전략을 세우는 순간, 정치는 정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기는 국회를 장악한 입법 권력이었다. 입법 폭주, 특검·탄핵, 정책 비토의 세 갈래 공세 속에서 상식 밖의 상황이 속출했다.
양곡법, 노란봉투법, 방송법,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 각종 특검법 등 일방적 법안 처리는 국회의 뉴노멀이 됐다. 민주화 이후 노무현정부에서 가장 많았던(6건) 거부권 행사는 이 정부에서 벌써 25건이나 이뤄지며 ‘도돌이표 정쟁’이란 조어를 낳았다. 초유의 장관·검사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것을 비롯해 12건 넘게 탄핵안을 발의했고 곧 4건 더 발의할 예정이다.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탄핵안은 모두 기각됐다. 나머지도 납득할 사유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민주당은 정치의 요건인 ‘명분’을 괘념치 않고 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 돌파가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런 공격과 방어가 일사불란하려면 민주당이 그와 한 몸이 돼야 했다. 정당 민주화란 이름의 당헌 정비와 지난 총선의 공천은 그것을 완성하는 과정이었다. 기소된 사람도 당대표를 할 수 있게 이재명을 위한 당헌 개정을 강행했고, 개딸 집단의 영향력을 키워 당내 의사결정을 좌우하게 했으며, 그 세력을 통해 온갖 잡음을 뚫고 ‘비명횡사’ 공천을 밀어붙인 결과 반대파가 사라진 일극체제를 구축했다. 이재명의 리스크는 이제 민주당의 리스크가 됐다.
‘이재명 당’이 된 민주당의 방탄 작업은 총선 압승 후 더욱 노골화했다. 수사기관 무고죄 처벌법, 검찰 수사 조작 방지법, 표적수사 금지법, 법 왜곡죄 도입법(형법) 등 방탄용 법안을 쏟아냈다. 그의 혐의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 전에 대선이 열리도록 대통령 탄핵과 임기 단축 개헌을 추진하고 나섰다.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의 1심 판결을 앞두고는 검찰 예산을 깎으면서 법원 예산은 늘려주는 예산심의권까지 동원했다. 선거법 1심에서 징역형이 나오자 2심의 감형을 겨냥해 선거법의 허위사실 공표죄 조항을 아예 삭제하는 법 개정에 착수했고,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들을 추가로 탄핵하려 하고 있다.
입법, 예산, 탄핵, 장외집회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한 그와 민주당은 1승 1패(선거법 유죄, 위증교사 무죄)의 1심 판결을 얻었다. 사법 리스크는 곪아터진 것도, 해소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계속 이어지게 됐다. 내년 2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아니 대법원에서 확정될 때까지도 한국 정치는 그의 리스크에서 비롯된 극단적 대결 구도의 족쇄를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지난 2년 반처럼 정치권에서 말하는 ‘민생’이 공허하게 들린 적은 없었다. 여야가 어쩌다 법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대서특필할 만큼 드문 뉴스였고, 도대체 내 삶과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없는 대결에 국회의 시간은 낭비돼 왔다. 정부는 입법 권력에 막혀서 못하고, 야당은 국정 권한이 없어서 못하니 서로 말만 할 뿐 아무도 민생을 챙기지 않는 불행한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피고인 한 사람의 정치적 생존 투쟁에 우리 삶이 너무 크게 휘둘리고 있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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