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억울한가

한겨레21 2024. 11. 28. 17:5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는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1794년 '경험의 노래'에 담은 시 '파리'는 짧지만 여운을 남긴다.

"어떤 눈먼 손이/ 내 날개를 쓸어버릴 때까지/ 나 또한 춤추고 마시고 노래할 게 아닌가// 만약 생각 있음이 삶이고 힘이고 숨결이라면/ 그리고 생각 없음이 죽음이라면// 나는야 한 마리 행복한 파리/ 살아 있든 혹은 죽든."

검정파리 구더기는 살인사건을 수사할 때 피해자의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순택의 풍경동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산등성이 풀밭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을 때, 너희는 그 등에 옹기종기 앉아 끊임없이 앞발을 비비고 날개를 쓰다듬더구나. 풀밭에서 소가 놀고, 털 밭에서 파리가 노는 모습이었지. 우리는 너희를 죽일 듯 미워한단다. ‘어떤 눈먼 손’ 앞에선 사람도, 소도, 파리도 한낱 먼지일 뿐인데. 2012년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산.

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는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신앙심이 깊었다지만, 엉뚱한 상상력과 기상천외한 형상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른바 성실한 괴짜였다. 존 밀턴이 쓴 타락과 구원의 대서사시 ‘실낙원’의 삽화를 그리는가 하면, 흡혈 곤충을 근육질 괴물인간으로 묘사한 ‘벼룩의 유령’을 그렸다. 미물에게서 인간을 보았고, 인간에게서 미물을 찾아냈다. 1794년 ‘경험의 노래’에 담은 시 ‘파리’는 짧지만 여운을 남긴다.

여름을 즐기던 파리를 무심코 쓸어내다가 블레이크는 “어쩌면 나는 너 같은 파리가 아닌지, 너 또한 나 같은 사람이 아닌지” 묻는다. “어떤 눈먼 손이/ 내 날개를 쓸어버릴 때까지/ 나 또한 춤추고 마시고 노래할 게 아닌가// 만약 생각 있음이 삶이고 힘이고 숨결이라면/ 그리고 생각 없음이 죽음이라면// 나는야 한 마리 행복한 파리/ 살아 있든 혹은 죽든.”

거대한 운명의 힘이 ‘눈먼 손’처럼 날아들 때 사람과 파리의 구별점은 사라진다. 지구의 관점에서 작은 차이가 날지라도 우주의 관점에서 사람과 파리는 한낱 먼지에 불과하지 않은가.

블레이크의 지적이 아니어도 사람과 파리는 닮았다. 특히 초파리는 인간 디엔에이(DNA)와 60% 닮았고, 인간 질병 유전자 중 75%가 초파리에게서도 발견된다. 다만 생애주기가 아주 짧고 돌연변이가 잘 일어난다. 바로 그 때문에! 초파리는 사람을 대신한 유전자 연구에 가장 적당한 실험동물로 낙점됐다. 파리 덕분에 노벨상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1933년 토머스 모건 이래 2017년 제프리 홀까지 초파리 연구로 노벨의학상을 받은 이들이 무려 여섯 팀이다. 파리 덕분에 암치료 길을 여는가 하면, 자폐증을 유발하는 화학물질도 발견했다. 파리는 벌·나비와 함께 꽃가루를 옮겨 열매 맺기를 돕는 1등 공로자다. 죽은 동식물이 잘 썩도록 돕고, 스스로 많은 동물의 먹이가 된다. 검정파리 구더기는 살인사건을 수사할 때 피해자의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항생제 내성균이 말썽 부릴 때 구더기는 썩어가는 상처의 고름을 먹어치우고 치유물질을 분비하는 ‘오래된 새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러 고대문화권에서는 용맹과 불굴의 의지로 죽은 자의 영혼을 품고 돌아온 친구로 환영했다. 그러면 뭣 하나.

파리는 우리가 혐오하는 동물 중 으뜸이다. 프랑스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흔해도, 날아다니는 파리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더럽게 귀찮고, 똥 위에 앉았던 발로 맛있는 음식 위를 기어다니는 녀석. 썩은 시체에 달려든 파리와 구더기는 상상만으로도 구토를 유발한다. 녀석이 부패와 질병과 죽음과 연루돼 있(다고 믿)는 한 파리와 친구 되기란 요원하다.

하지만, 파리는 억울하다! 파리 혐오는 학습의 결과이며, 확증편향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들은 묻는다. “소원대로 파리가 사라진다면 세상이 더 깨끗해질까?” 아무리 파리가 미워도 그 답은 명확하지 않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