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원 조사관, 진실화해위 재조사 참여…“가해자가 조사한 셈”

고경태 기자 2024. 11. 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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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이옥남 상임위원과 차기환 위원이 대화하고 있다. 두 사람은 백락정 사건의 진실규명 취소와 신청 각하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여당 추천 위원들이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추가 증거물이 나왔다는 이유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에 대한 진실규명을 취소하려는 가운데, 이를 위한 재조사에 국가폭력 가해기관 조사관이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조사 자체가 논란인 상황에서 부적절한 인물까지 조사에 참여시켜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진실화해위 야당 추천 위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 백락정(1919년생) 진실규명 취소 건’의 참고인 진술조서에는 담당 조사관 외에도 국정원에서 파견된 4과 소속 ㄱ조사관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 진실해화위에는 이 진술조서에 담긴 ‘결정적 진술’과 ‘판결 이유조차 없는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을 근거로 내달 3일 ‘백락정의 진실규명 취소 건’을 전체위원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진실규명 취소의 명분이 된 ‘결정적 증거’는 ㄱ조사관이 참여한 2차 현장조사에서 확보됐다. 진술조서에는 백락정의 고향 마을(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 90살 주민의 발언이 담겨있는데, 해당 주민은 “백락정은 전쟁 이후 인민군 치안대 활동을 했고, 그 당시 인민군 치안대는 반동분자를 잡아 죽였다”며 백락정이 ‘부역자’(국가에 반역되는 일에 동조한 사람)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황인수 진실화해위 조사1국장이 지난 10월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신분확인을 위해 마스크를 벗어달라는 의원들의 요구를 거부하다 퇴장당해 국정감사장 밖 공무원 대기석에 앉아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진실화해위 내부에선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진실규명 사건에 국정원 파견 조사관이 참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정원 대공수사처장 출신인 황인수 조사1국장의 지휘를 받아 재조사가 이뤄지고, 재조사에 국정원에 원적을 둔 조사관까지 참여했으니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가해 집단 중 하나인 방첩대(CIC)는 국정원의 모태이기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조사1국의 한 조사관은 “국정원 파견 조사관은 주무팀장이자 보고서 검토 팀장이라 동행의 명분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충분히 오해 살 수 있고, 문제로 지적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진실화해위에는 별정직으로 채용한 조사관과 함께 행안위·국방부 등 정부부처 출신 및 국정원·방첩사·검찰·경찰 출신 조사관들이 포진해 있다. 그동안에도 정보·수사기관에서 파견 나온 조사관들이 자신의 원적 기관과 관련된 조사에 참여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 2년 전엔 국정원 파견 조사관이 대외비 문건인 국정원의 전교조 와해공작을 다룬 조사보고서를 소위원회 심의도 하기 전 국정원에 사전 유출해 파견 해제를 당하기도 했다.

이상훈 상임위원은 국정원 파견 조사관의 ‘백락정 조사’ 동행과 관련 “검찰비리를 검찰에서 공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며 “민감한 사건에서 국정원 출신 국장이 국정원 파견 팀장을 통해 얻은 일방적인 조서로 (진실규명이 취소된다면) 그동안 진화위 조사관들이 열심히 조사해서 얻은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진실규명 결정을 받고 국방경비법에 따른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이 나와 진실규명 결정 취소 안건이 상정된 백락정의 젊은 시절 사진. 유족 제공

지난해 11월 1950년 7월 국민보도연맹에 연루돼 대전 골령골에서 희생된 것으로 진실 규명됐던 백락정은 국방경비법에 따라 1951년 1월6일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받은 판결문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지난 9월 재조사 의결됐다. 하지만 사형판결의 근거가 미군정 시기 군인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국방경비법이고 판결 이유조차 없어, 재판을 거쳤어도 ‘사법적 학살에 다름아니다’라는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사형 선고 군법회의 판결문이 일부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주었으나 1년 전 진실규명의 부당성마저 입증한 것은 아니라는 거였다.

현재 미국 필라델피아에 거주해 사는 백락정의 아들 백남선(78)씨는 지난 9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버지가 1950년 7월 지서에서 피투성이가 돼 결박된 모습으로 목격된 뒤 행방불명됐다”고 말해왔다. “이후 한 무리의 남자들이 집으로 와 어머니를 끌고 가 마을 기둥에 묶어놓고 머리카락을 베는 등 행패를 부렸다”는 말도 했다. 이는 90살 주민의 참고인 진술 내용과 배치된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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