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산시장 활어회 ‘꿀팁’은 왜 ‘쓴 맛’을 불렀나

임재희 기자 2024. 11. 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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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한테 '광어 얼마입니다' 하고 나면, 가시면서 그래요. '역시 도둑놈들이야.' 하루에 8번까지 들었어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활어 회를 파는 소매상인 ㄱ씨가 허탈함을 털어놨다.

노량진수산시장을 찾는 손님은 소매 점포에서 회를 사서 손질한 뒤, 연계된 상차림 식당에 자리를 잡고 먹는다.

새벽이면 중도매인이 소매상인에게 활어를 팔고, 소매상인은 낮 동안 손님에게 손질해 회를 내는 수산 시장의 오랜 관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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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사건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에 붙은 안내문. 사진 ㄴ상우회 제공

“손님들한테 ‘광어 얼마입니다’ 하고 나면, 가시면서 그래요. ‘역시 도둑놈들이야.’ 하루에 8번까지 들었어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활어 회를 파는 소매상인 ㄱ씨가 허탈함을 털어놨다. “손님에게 말 걸기 무서울 정도”의 상황을 매일 같이 겪게 된 배경에 수산 시장을 둘러싼 도매상인과 중도매인의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ㄱ씨는 전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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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코로나19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노량진수산시장을 찾는 손님은 소매 점포에서 회를 사서 손질한 뒤, 연계된 상차림 식당에 자리를 잡고 먹는다. 이 익숙한 노량진의 풍경은, 세상 여느 곳처럼 감염병이 돌며 삽시간에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식당 영업이 제한되면서 회만 사서 집으로 가져가는 손님이 늘었다.

그러자 손님에게 직접 활어를 파는 중도매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도매인은 본래 어민이 잡은 수산물을 경매로 낙찰받아, 이를 다시 소매상인 등에게 대량으로 파는 도매상인이다. 새벽 1시부터 오전 8시 사이 열리는 도매시장에서 활동한다. 새벽이면 중도매인이 소매상인에게 활어를 팔고, 소매상인은 낮 동안 손님에게 손질해 회를 내는 수산 시장의 오랜 관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도매인에게도 사정은 있다. 식당 영업 제한으로 소매상인이 겪은 침체가, 이들에게 활어를 파는 중도매인에게도 번졌다. 시장 사람들은 연결돼 있다. 소매상인을 대상으로 한 매출 감소를 견디다 못해 중도매인들이 찾은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팬데믹은 지나갔다. 하지만 중도매인에게 활어를 직접 사는 손님은 외려 늘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를 싸게 먹는 ‘꿀팁’으로 소문이 번지며 일종의 체계까지 이룬 탓이다. 새벽 도매시장에서 활어를 사서가까운 점포에서 1㎏당 2000∼5000원 정도를 주고 손질을 맡기는 식이다. 날마다 활어 도매가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알려주는 이들까지 생겼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소매상인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중도매인이 활어를 소매상인에게만 파는 일이 관례인 반면, 소매상인은 법적으로 중도매인에게서만 활어를 사야 한다. 소매상인은 어떻게 해도 중도매인이 매긴 값보다 싼 값에 활어를 들여 오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ㄱ씨가 말했다. “가전회사에서 노트북을 원가 100만원에 판다고 해봐요. 지금 상황은 대리점에도 100만원에 주고, 소비자에게도 100만원에 주는 겁니다. 손님들이 새벽에 발품을 팔아 오시는 건 이해해요. 그런데 그게 퍼져나가면 소매상인들은 죽으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소매상인들이 모인 ㄴ상우회는 지난 8월 중하순께 250여개 소매점포 회원들에게 이행확약서를 돌렸다. ‘본인 물건 외 중매인·보관장 등에서 판매한 활어 및 기타 상품에 대한 가공 처리 금지’, ‘낱마리 판매 중개인·보관장과 거래 금지’ 같은 내용이었다. 중도매인에게서 사온 활어는 회를 떠주지 말고, 직접 손님을 상대하는 중도매인과 거래도 하지 말자는 얘기다.

이행확약서 효력은 오래 가지 못했다. 8월 말께 국민신문고에 ㄴ상우회 조처가 부당하다는 제보가 올라왔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섰다. 공정위는 조사를 거쳐 이달 5일 ㄴ상우회에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경고 처분을 내렸다. 회를 떠줄지 말지는 개별 상인들이 자율적으로 정할 일인데, 상우회가 강제한 건 사업활동 제한이라는 취지다.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소매상인을 비판하는 소비자 여론이 다시 비등했다.

ㄱ씨는 갑갑함을 호소했다. “정직하게 장사해왔는데 ‘도둑놈’ 소리 듣는 억울함이 가장 커요.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를 찾을 겁니다.” 수산시장을 지탱하는 소매상인, 도매상인, 손님은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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