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질문이 좋으면 국가 정책의 모순이 밝혀진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4. 11. 2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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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11월7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동아일보가 13일 재미있는 단독을 하나 했다. <양극화 해소에 재정 적극 풀 것… 윤 대통령 내년 초 대책 발표>라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초 신년 국정브리핑 등을 통해 양극화 타개를 위한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한다고 한다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통화 내용을 전한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긴축재정을 펼쳐왔다. 양극화 해소 관련 재정 지출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그간의 정부 정책 기조가 바뀐다는 중요한 시그널이다.

그런데 문제는 방법론이다. 정부가 양극화 해소 등에 돈을 쓰고자 한다면, 미리 예산에 그 내용을 담아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정부는 국회의 예산심의를 통해 확정된 사업만 지출할 수 있다. 이것이 삼권 분립이라는 대한민국 헌법의 근본이다. 그런데 정부가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적극재정은 없다. 2025년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재량지출 증가율은 0.8%에 불과하다.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초긴축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본예산에 없는 사업을 대규모로 지출할 방안은 오로지 추경(추가경정예산)뿐이다. 본예산을 추가경정(수정하여 바꿈, 更正)하여 양극화 관련 지출을 추경으로 편성해야 양극화 관련 재정 지출을 할 수 있다.

관련해서 조선일보도 더 재미있는 단독을 했다. <민생위해, 윤 정부 내년초 추경>이라는 기사를 22일 1면 머리기사로 전한다. 역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를 인용한 기사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추경도 검토할 수 있다”고 조선일보에 말했다고 한다. 정부가 양극화에 재정을 지출하려면 본예산이나 추경에 반영해야 한다. 본예산안에는 양극화 해소 관련 적극적 지출이 담겨 있지 않으니, 추경 검토는 논리적으로는 당연한 귀결이다.

▲ 조선일보 11월22일 '“민생 위해” 尹정부 내년초 추경' 기사 갈무리

그러나 추경은 논리적으로는 당연하나 경제적,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기괴하다. 정부는 초긴축 기조를 담은 25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긴축적 본예산안 심의가 국회에서 진행 중인 상황에서 확장 기조를 담은 추경안을 동시에 고려한다? 이는 브레이크와 악셀을 동시에 밟는 행위다. 국회의 예산안 심의 중에 추경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국회의 예산안 심의를 무시하는 행위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22일 보도해명자료를 배포했다. “2025년 예산안은 국회 심사 중이며, 내년 추경예산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 11월22일 기획재정부 보도자료

정리해 보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양극화 대책으로 재정을 적극 지출하겠다”라는 발언을 했다. 기자가 질문한다. “추경 없이 재정지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나?” 그럼 '논리적 궁지'에 몰린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다. “추경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런데 기재부는 본예산이 작성도 안 된 상황에서 추경을 검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양극화, 민생을 위한 재정 지출 계획은 대통령실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아이디어 차원의 검토 의견일 뿐이라는 실체가 드러났다. 추경 등 절차와 방법론조차 고려하지 않은 설익은 아이디어일 뿐이다. 기자의 질문이 좋으면 정부의 모순된 정책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브레이크와 엑셀을 동시에 밟는 정책 혼선이 발생했을까? 국가의 정상적인 절차가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국가의 경제 정책이 만들어지고 추진되는 일련의 정상적인 절차가 있다. 기재부 등 관료와 대통령실의 합의에 따라 '경제정책 방향'이 일 년에 두 차례 발표되어 국가의 정책방향이 미리 알려진다. 당정합의가 이루어져 법률안과 예산안 형식으로 국회에 제출되고 국회의 논의 과정을 통해 확정된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에는 정상적 국가 운용의 프로세스가 자주 생략된다. 상속세 인하 등 경제정책 방향에 없는 '갑툭튀' 정책이 24년 정부 세법개정안의 핵심이 되고, 양극화, 민생 추경 방안이 '기재부 패싱'을 통해 발표된다. 여야가 합의해서 국회를 통과한 금투세 법안을 대통령이 뒤엎고, 야당 대표도 이를 수긍한다. 여야가 합의한 교부세 지출액을 행정부가 임의로 감액하고, 세수결손에 불용을 활용하겠다고 한다.

▲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결국, 대한민국 예산서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부도수표가 되었다. 여야가 논쟁하고 합의하여 확정한 예산 지출액을 행정부가 실제로는 얼마를 지출할지 아무도 모른다. 국회가 확정한 금액을 지출하지 않고 불용을 활용한다니 정부 예산서를 믿고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국정운영은 깜짝쇼가 아니다. 국가의 정상적인 절차를 통한 국정운영에서 벗어나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정책들간의 모순이 발생한다. 이러한 모순은 언론의 올바른 질문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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